[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유튜브의 존재감이 강해지며 다양한 국내 키즈 콘텐츠 전성시대도 열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성평등 부재가 심각한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자율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언론연대가 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키즈 콘텐츠..어찌할꼬?

언론개혁시민연대는 15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유튜브 키즈 콘텐츠, 이제 성평등 관점을 고민할 때’ 간담회를 열어 키즈 콘텐츠 업계의 성평등 부재 현상을 꼬집었다. 최성주 언론연대 공동대표는 이번 간담회가 가짜뉴스 논란에서 촉발된 정부의 강제적 규제 필요성과는 다르다며 선을 그으면서도 “키즈 콘텐츠 성평등에 대한 논의할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많은 사례가 공유됐다. 먼저 성역할 고정관념 조장에는 <보람튜브>의 사례가 회자됐다. 콘텐츠에 출연한 여아가 ‘돌봄노동’ 관련 놀이를 즐기지만 남아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청소와 빨래 등 가사노동도 무조건 여자가 해야 한다는 전제의 놀이만 보여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보람튜브> 외 <서은이야기>와 <리원세상>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 언론연대의 설명이다.

<제이제이튜브>도 마찬가지다. 주로 여아가 요리를 전담하고 남아는 앉아서 기다리는 패턴이 보인다. <캐리tv>에도 비슷한 장면이 노출되고 있다. <위드키즈>의 경우 남아가 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는 ‘특별한 날’에만 국한되어 역시 여성의 노동을 일상화하는 장면을 고착화시켰다는 평가다.

컬러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각 키즈 콘텐츠 채널의 경우 여아 시청자가 많으면 핑크, 남아 시청자가 많으면 블루가 많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핑크는 여성의 색으로 인식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도 문제라는 것이 언론연대의 주장이다. 실제로 <보람튜브>의 경우 아빠 출연자는 푸른색 옷, 여아는 핑크색 드레스를 입었다. <라임튜브>와 <리원세상> 모두 마찬가지다.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것도 지적됐다. <보람튜브>의 경우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콘텐츠를 통해 ‘화장=아름다움’에만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해당 콘텐츠에는 삼촌에게 예쁜 모습을 인정받으려는 여아가 등장하며, 이 자체로 문제가 있다는 설명이다. <서은이야기>에는 화장과 관련한 콘텐츠를 통해 여성성을 강제하고 있다는 주장이며 ‘여성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을 강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헤이지니>도 마찬가지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지니가 체험을 하며 “지니가 늙어보여요”라는 말을 한다. ‘늙은 것=슬픈 것’이라는 전제를 시사한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해당 콘텐츠는 공영방송 KBS 어린이프로그램 <TV유치원>에 노출되고 있다.

성별 주체성에 대한 논란도 나왔다. <라임튜브>의 경우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 화장을 하는 여아의 콘텐츠를 통해 ‘여자는 무조건 남자를 만나기 위해 화장을 통한 공주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는 설명이다. 특히 <라임튜브>는 여아가 성인에 필적하는 수준의 화장을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리원세상>도 비슷한 장면이 많다는 것이 언론연대의 지적이다.

성에 대한 폭력도 지적됐다. 방송사 <EBS 키즈>의 139화편에는 남성이 여성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묘사되는 장면이 나온다.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이 부적절한 내용을 콘텐츠로 제작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마리야와아이들>은 남성 출연자가 뽀로로 짜장면을 빼앗기 위해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도 연출된다.

성차별은 남성도 피해자다. <마리앤친구들>의 좀비 콘텐츠에는 남아가 공포에 질리자 ‘사내녀석이..뚝 그쳐!’라는 대사가 나온다. 또 운전에 익숙한 남자가 멋지다는 전제로 그렇지 못하는 남성을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보람튜브>는 ‘남성=힘이 세다’는 전제를 통해 남성성을 전형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핑크퐁>의 사례도 나왔다. 유아교육전문가들이 만든 콘텐츠가 대다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전래동화를 원작 그대로 풀어낸 것이 많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문 유아교육전문가들이 왜 이런 콘텐츠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나아가 언론연대는 유아 콘텐츠의 다양한 문제점으로 부적절한 광고도 지적했다. 주류와 담배는 없어도 성형, 다이어트 등 어울리지 않는 광고가 많다는 설명이다.

토론자들은 유튜브에 대한 강제적 규제가 아닌, 자율구제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도 키즈 콘텐츠의 성평등 관점에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모든 키즈 콘텐츠가 문제가 아니라, 일부 해결해야 할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며 문제도 커지고 있다”면서 “유튜브는 정보의 중개가 아니라 정보의 생산자며, 자율규제로 가면서 유튜브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부소장은 “유튜브가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면서 “이용자들도 건전한 생태계 조성에 힘을 더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키즈 콘텐츠를 통해 남아, 여아들이 내면화된 성역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내 욕구가 무엇인지 모르게 되는 상황이 되면 곤란하다. 이 부분은 문제제기가 필요하며 기본적인 인권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강미정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는 “아이들은 놀이를 위해 산다”면서 “유튜브의 도움을 많이 받고있는 상황에서 지나친 상업적 콘텐츠는 많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강 활동가는 “창작의 자유를 위해 유튜브 규제는 반대하지만, 키즈 콘텐츠의 경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보고서에 담긴 문제사례 중 한 장면. 출처=갈무리

규제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정부가 가짜뉴스를 단속하기 위해 유튜브 등 뉴미디어 플랫폼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시민단체들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반대하고 있다. 언론연대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문제는 키즈 콘텐츠다. 권순택 언론연대 활동가는 유튜브에 대한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닌, 이른바 자율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적극 강조했으나 키즈 콘텐츠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린다. 특히 강미정 활동가의 경우 키즈 콘텐츠의 시청자가 아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규제를 주문해 눈길을 끈다. 이와 관련된 당국과 유튜브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사회를 본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이 문제는 계속 논의되어야 하며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면서 "추후 다양한 공론의 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