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가장 낮은 자리에서부터 꽃이 핀다.
키가 작은 식물의 입장에서는 경쟁이 없는
블루오션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키가 큰 식물들의 입장에서 보면
생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이다.

Profile / 충북 괴산 출생으로 국내 유명 금융회사와 이동통신 회사에서 인사와 경영전략을 담당했다. 사단법인 ‘숲 연구소’에서 공부했고, 2006년부터 ‘행복한 삶을 배우는 숲 학교’와 창작과 문화와 교육이 어우러진 ‘행복숲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행복숲’에 지은 ‘백오산방’이란 오두막에 살며 공동체 추진 대표를 맡고 있다. 앞으로 ‘생태’와 ‘자기경영’이 결합된 생태경영 콘텐츠를 생산하여 오늘과는 다른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숲은 역동적이다. 뿌리내린 자리에서 한평생을 살아야 하는 식물들의 삶이 역동적이라니,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숲으로 간 CEO, 숲생태 전문가 김용규는 “숲의 천이(遷移) 과정을 보면 숲 생태가 얼마나 역동적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천이는 초목들이 숲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의 공간을 점유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숲이 울창해지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령, 빛이 많이 드는 토양을 좋아하는 소나무는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바늘잎이라는 무기를 사용한다. 바늘잎이 떨어진 자리에는 그 어떤 식물도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소나무는 자신의 아래로 바늘잎을 떨어뜨려 경쟁자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1위 기업의 수성전략과 닮았다. 그렇게 비옥한 토양을 독점한 소나무의 번성은 한동안 계속된다.

하지만 영원한 1등은 경영 현장에도, 생태계에도 없는 법. 시간이 흘러 반그늘의 상태를 뚫고 팥배나무나 층층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그 곁에 신갈나무도 한자리를 차지한다. 1등 기업의 자리가 위태해지고 후발주자들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숲 생태계가 경영 현장과 다른 것은 그 다음부터다. 경영 현장에서는 소나무를 대체할 새로운 1위 기업이 탄생하고 다른 기업들은 문을 닫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나 숲 생태계에서는 다양한 음수(陰樹)들이 함께 어울려 울창한 숲을 완성한다. 무한경쟁이 아닌 상생의 삶으로 나가는 것이다.

30대 중반에 벤처기업 CEO 맡아
김용규 대표가 잘나가는 벤처기업 CEO 자리를 버리고 충북 괴산군의 숲 속으로 떠날 수 있었던 키워드도 바로 상생이다.

벤처붐이 일었던 1990년대 말,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대기업에서 분리된 벤처기업의 CEO 자리에 올랐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삶이었지만 그에게는 경영자의 자리가 늘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취임 초기에는 열정적으로 일했다. 경영에만 전념하기 위해 아내와 어린 딸을 외국에 보냈을 정도다. 하지만 그에겐 일에 대한 성취감보다 업무 스트레스가 더 크게 다가왔다. 벤처기업은 말 그대로 모험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에 불안감도 커져갔다.

무한경쟁의 삶 속에서 그는 점점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간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그가 찾은 곳은 남산이었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8개월 정도 남산을 오르내렸다. 그는 숲에서 스스로가 가장 편안해진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숲에서 마음의 안정, 자기경영법을 찾은 후에는 자신의 주변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험난한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바위 틈의 소나무를 보며 ‘나도 주어진 자리를 불평하지 않고 내 꽃을 피워야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 자리가 기업 CEO가 아니라 숲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김용규 대표는 결국 7년 만에 CEO 자리를 내주고 사단법인 ‘숲 연구소’를 찾았다. 본래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터라 기왕이면 숲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이미 광릉 숲에서 독학을 꾸준히 해오던 터였다. 활엽수 아래서 듣는 빗소리가 그 어떤 음악보다 감미롭다는 사실을 알게 될 무렵, 그는 서울 집도 정리하고 자신이 태어난 충청북도 괴산군으로 향했다. 가족들을 설득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3년 가족 설득해 고향 숲으로 낙향
김용규 대표에게 숲의 생태를 공부하는 일은 단순한 안빈낙도나 유유자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경영의 한 방법이었다.

그는 조용한 숲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들의 방식처럼 경쟁을 가속화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내주며 상생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김용규 대표는 “봄이 오면 가장 낮은 자리에서부터 꽃이 피지요. 복수초나 냉이가 시작입니다. 그들이 곤충들을 불러모을 동안 키가 더 크고 향기가 더 강한 꽃들은 자리를 양보합니다.

키가 작은 식물의 입장에서는 경쟁이 없는 블루오션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키가 큰 식물들의 입장에서 보면 생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죠”라고 말한다.

승자 독식의 경영 현장에서는 배우지 못한 상생의 깨달음이 숲 속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종의 소멸을 무시하고 빠름과 편리만을 추구하는 방식은 숲에서는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숲을 들여다봐야한다고 강조한다.

김용규 대표는 숲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무작정 떠나기 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귀농을 했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농·산·어촌의 삶이 생각한 것만큼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또한 막연히 ‘농사나 짓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김 대표 스스로도 농사로 승부를 볼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아무리 공부하고 노력해도 평생 농촌에서 자란 농부들의 노하우를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숲 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자신이 숲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고 김용규 대표는 말한다.

그는 독학이 힘들면 ‘전국귀농운동본부’와 같은 기관의 교육을 받는 것도 좋다고 조언하다. 비용도 비싸지 않고 무엇보다 전국의 귀농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그 과정에서 실제 숲 생활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변화경영연구소의 구본형 대표는 숲에서 자기경영법을 찾은 김용규 대표를 생태경영자라 칭했다. 숲 속의 자연학교 ‘행복숲 공동체’를 경영하는 그이니 생태경영자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다.

재생지로 만들어진 그의 명함에는 ‘숲생태 전문가’, ‘행복숲 공동체 대표’, ‘농부’라는 세 개의 직함이 적혀 있다.

지난해에는 행복숲에 ‘백오산방(白烏山房)’이라는 오두막을 손수 짓고 생태와 자기경영이 결합된 생태경영 콘텐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얼마 전 출간된 《숲에게 길을 묻다》라는 책. 이 책은 서점의 ‘자기계발’ 코너에 진열돼 있다. 다른 자기계발 서적들에 비한다면 메시지가 약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 성공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한 성공법을 일러준다는 점에서 그 어떤 책보다 자기계발 코너에 어울리는 책이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