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국내 대표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논란 관련 양사의 공방이 다소 잠잠해졌다. LG화학이 4월 30일 SK이노베이션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각각 제소했다고 밝힌 이후 양사는 두차례 공방을 주고받다가 현재는 진행 상황을 지켜보는 양상이다. ESS화재와 중국, 일본 배터리 업체의 거센 추격 등 대내외 환경이 녹록치 않은 한국 배터리 업계는 양사의 공방을 우려 섞인 눈길로 보고 있다.

▲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출처=LG화학

뜬 자와 뜨는 자의 대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이번 논란은 한마디로 뜬 자인 LG화학과 뜨는 자인 SK이노베이션의 신경전이 배경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배터리 기업 중 1위인 LG화학이 세계 시장에서 치고 올라오는 SK이노베이션에게 ‘확실한 경고’를 날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5월 7일 발표한 올해 3월까지 누적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에서 LG화학은 2467MWh(메가와트시)를 기록해 세계 4위에 올랐다. SK이노베이션은 447MWh로 세계 9위에 자리했다.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보다 5배 이상 사용량에서 앞서 있지만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을 압도한다. 2018년 1분기(1월~3월 누계)보다 LG화학은 83%의 성장률을 보였고, SK이노베이션 301.2%의 성장률을 보였기 때문이다. 점유율도 LG화학이 12.6%에서 10.6%로 줄어든 반면, SK이노베이션은 1%에서 1.9%로 늘었다.

▲ 올해 3월까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업체 순위. 출처=SNE리서치

양사 무엇이 꼬였나...인력·기술 빼가기 VS 정상적인 이직

LG화학은 4월 29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했다고 4월 30일 밝혔다. ITC에는 SK이노베이션의 셀, 팩, 샘플 등의 미국 내 수입 전면 금지를 요청했고,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는 영업비밀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델라웨어주는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법인인 SK배터리 아메리카(SK Battery America)가 있는 곳이다.

LG화학이 주장하는 영업비밀 침해의 핵심은 2017년부터 불과 2년만에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SK이노베이션이 데려갔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들이 LG화학의 선행기술, 핵심 공정기술 등을 유출했고, 개인당 400여건에서 1900여건의 핵심기술 관련 문서를 다운로드해 갔다는 것이 LG화학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4월 30일 “SK이노베이션은 투명한 공개채용 방식을 통해 국내외로부터 경력직원을 채용해 오고 있고, 경력직 이동은 처우 개선과 미래 발전 가능성 등을 고려한 당사자의 의지에 따라 진행됐다”면서 “여기에 더해 국내 이슈를 외국에서 제기함에 따른 국익 훼손 등의 우려에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이에 대해 5월 2일 다시 한 번 입장을 내놨다. LG화학은 “자동차 전지 사업은 미국 등 해외시장 비중이 월등이 높아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법적 대응을 미국서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면서 “이번 소송의 본질은 고유한 핵심기술 등에 대한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 명백히 밝혀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다음날인 5월 3일 이에 반박했다. 법적대응 카드를 들고 나왔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사의 배터리 개발기술과 생산방식은 LG화학과 다르고 이미 핵심 기술력 자체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어 경쟁사의 기술이나 영업비밀이 필요 없다”면서“비신사적이고 근거 없이 SK이노베이션을 깎아 내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법적 조치 등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강력하고 엄중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민규 변호사는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제소는 국내서는 상대적으로 입증이 까다로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LG화학이 미국 ITC와 연방법원의 디스커버리(Discovery)절차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에서의 소송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향후 국내에서도 영업비밀침해관련 민형사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왼쪽에서 2번째)이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공장 기공식에 참석하고 있다. 출처=SK이노베이션

업계 “우려스럽다”

이 같은 양사의 공방에 대해 국내 배터리 업계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가뜩이나 중국과 일본 배터리 업체의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한국의 메이저 배터리 회사들이 법적 소송까지 갔다는 점에서 해외 수주에서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익명을 요청한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국에서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공방을 보는 해외 완성차 업체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면서 “자칫 대외적으로 나쁜 이미지를 줘 중국이나 일본 업체들에게 어부지리의 수주 기회를 주는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업비밀 침해가 있다면 명백하게 시비를 가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면 큰 문제기 때문에 진행되는 상황을 차분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양사는 현재 소송 관련한 말은 최대한 아끼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10일 “현재 글로벌 로펌을 고용해 소송을 준비중인데 현재까지 알린 내용 이외에는 딱히 더 할 말이 없다”면서 “ITC와 미국 연방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도 “아직 ITC나 미국 연방법원으로부터 공문이 도착하지 않았지만 관련 문서가 도착한 후 이에 맞춰 회사 차원에서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LG화학이 인력유출에 대해 고민이 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현재 양사가 배터리 기술 관련해서는 어느 특정사가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만큼 보다 신중한 행동이 요구된다”면서 “현재 중국과 일본의 배터리 경쟁사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주요 배터리 회사끼리 싸우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기에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 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