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 미국 셰일혁명 중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됐다. 롯데케미칼이 합작사인 웨스트레이크 케미컬과 함께 총액 31억달러(약 3조4000억원)를 투자한 대규모 에탄크래커(ECC), 에탄글리콜(EG) 생산공장이 9일(현지시각) 상업 가동을 시작했다. 국내 화학기업 최초다.

롯데케미칼의 미국 공장이 있는 루이지애나 주 레이크찰스 등 휴스턴 지역은 세계 최대 정유공업지대 중 하나로 유럽의 ARA(암스테르담·로테르담·안트워프),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3대 오일허브로 일컬어진다. 미국 내 오일·가스 생산 및 물류거래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축하 메시지를 통해 "31억달러에 이르는 이번 투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대미 투자이자 한국기업이 미국의 화학공장에 투자한 것으로는 가장 큰 규모"라며 "미국과 한국에 서로 도움이 되는 투자이자 한미 양국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 9일(현지시각)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서 열린 롯데케미칼 ECC 준공식에 참여한 주요 관계자들. 좌측부터 존 벨 에드워즈 루이지애나 주지사/ 이낙연 국무총리 /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 해리 해리슨 주한미국대사 / 실비아메이데이비스 백악관 정책 조정관 부차관보/ 웨스트레이크 알버트 차오 사장. 사진=롯데케미칼

긴 우여곡절 속에 완성된 미국공장

미국공장 준공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014년 2월 미국 석유화학기업 액시올(Axiall)과 ECC에 대한 합작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2016년 6월 기공식을 열었고 동시에 합작사 액시올을 인수해 에틸렌 사업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었다. 실제 인수제안서까지 제출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롯데그룹이 비자금 조성 등으로 대대적인 검찰조사를 받게 됐고, 이 영향으로 국내 경영환경이 악화돼 인수를 포기하게 됐다. 결국 엑시올은 웨스트레이크 케미컬(Westlake Chemical)이 인수하게 됐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당시 원료대금 부풀리기로 비자금 조성에 앞장섰다는 의혹을 받았고, 이 때문에 당시 롯데케미칼 대표이사였던 허수영 사장은 출국금지 조처를 당해 미국공장 기공식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미국 내 셰일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유가가 급락했다. 겉잡을 수 없을 만큼 하락하는 중에 당시 OPEC 회원국들은 재정적자에 빠져있어 차라리 가격보다는 시장점유율을 방어하는 전략을 선택하며 감산합의를 하지 않았다. 이 영향으로 유가는 더욱 곤두박질 쳤다.

2016년 2월 말 미국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배럴 당 26.21달러를 기록하는 등 10년 최저가를 기록할 정도였다. 통상 미국산 셰일오일은 손익분기점(BEP)이 배럴 당 40~50달러로 알려져있는데, 유가는 BEP 대비 반토막 난 셈이다. 실제 유가 하락으로 글로벌 기업의 석유화학 프로젝트 7건이 취소되기도 했다.

▲ 9일(현지시각) 준공식 열린 롯데케미칼 미국 ECC, EG 공장 전경. 사진=롯데케미칼

이같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공사는 묵묵히 진행됐다. 축구장 152개 크기(약 102만m2, 약 31만평)의 대규모 공장임에도 공기 지연이나 건설비용 초과 없이 ‘온 버짓, 온 스케쥴(On Budget, On Schedule)’을 달성했다. 미국 거대 프로젝트 중 77%가 평균 20개월 일정이 지연되고, 80%가 약 30%의 예산초과를 기록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라는 평가다.

미국공장 지분구조는 ECC의 경우 롯데가 88%, 웨스트레이크 케미컬이 12%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 지분 중 60%는 롯데그룹이, 나머지 40%는 롯데케미칼 자회사 LC 타이탄이 보유 중이다. EG는 롯데가 단독 소유 중이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오늘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주신 롯데케미칼 임직원들과 협력사분들, 한-미 양국 정부와 관계자분들의 헌신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며 ”세계 수준의 석유화학 시설을 미국에 건설, 운영하는 최초의 한국 석유화학 회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한국 화학산업의 미래를 위해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셰일가스 앞세운 미국 전진기지... 원가 저렴해 이익률 높아

롯데케미칼은 미국 ECC 본격 가동을 통해 에틸렌 생산능력을 연 100만톤 이상 늘릴 수 있게 됐다. 여수공장, 대산공장, 말레이시아 LC타이탄 등 포함해 연간 총 450만톤 에틸렌 능력을 갖추게 된 셈이다. 국내 1위, 세계 7위 규모다.

ECC는 NCC 대비 생산비용이 낮다. ECC는 에탄을 주로 이용하는데, 에탄은 셰일가스 부산물로 생성되며 프로판 등 다른 부산물과 달리 사용처도 제한돼있어 가격이 NCC 주 원료인 나프타보다 낮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통상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이상일 경우 나프타를 이용하는 NCC보다 ECC 공정이 더 경제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나프타를 이용하지 않으므로, 유가 민감도도 적은 편이다.

함형도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에탄이 나프타 대비 저렴하게 거래되기 때문에 ECC 마진은 NCC 대비 톤 당 250달러 정도 높다"면서"국제유가 변동성이 확대된 상황에서 ECC설비 매력도는 더욱 부각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 국제유가와 나프타, ECC가격 추이. 출처=IBK투자증권

현재 에탄이 나오는 천연가스의 미국 내 생산량도 늘어나는 추세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천연가스 생산량은 친환경 기조 등의 영향으로 지난 2007년 이후 50% 이상 증가해 지난해 10월 기준 3267Bcf를 기록했다. 수압파쇄 등의 기술이 발전해 셰일자원 개발 경제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초과공급은 대체로 이어질 전망이다. 함형도 애널리스트는 "셰일가스 개발로 인한 천연가스 생산 증가로 에탄 초과공급은 지속될 것"이라며 "에탄가격은 지속적 공급 증가에 따라 지난 3월 수준 유지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상업가동으로 ECC와 더불어 70만톤의 에틸렌글리콜(EG) 공정도 갖추게 됐다.

에틸렌 등을 원료로 생산되며, 이는 자동차 부동액 등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페트병 등을 생산하는 재료로도 이용된다. 현재 롯데케미칼은 이미 글로벌 거래처와 약 80%이상의 구매 계약을 체결해 안정적인 판매망을 선제적으로 구축한 상태다. 이같은 제품은 중국 등 성장이 상대적으로 견조한 아시아 시장으로 수출된다.

이같은 사업구조에 힘입어 롯데케미칼은 미국 ECC, EG 공장의 영업이익률이 무려 3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매출액 6000억원, 영업이익 2000억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는 실적이 더욱 늘어나 매출액 9000억원에 영업이익 약 3000억원대를 달성될 것으로 전망한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미국 공장의 본격적인 가동을 통해 나프타에 대한 의존성을 줄여 유가변동에 따른 리스크 최소화와 안정적인 원가 경쟁력을 구축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에틸렌 공급과잉, 경제성장률 하락 등 우려도 있어

현재 에틸렌 시장 분위기가 마냥 좋은 것 만은 아니다. 곳곳에서 에틸렌 스프레드 하락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미국 주요 석유화학회사와 글로벌 기업도 각지에서 ECC 증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에틸렌 수요 증분은 약 550만톤인데 반해 늘어나는 생산능력은 800만톤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북미 ECC 증설 물량이 400만톤에 이른다. 공급이 수요보다 높으면 스프레드가 하락될 수 밖에 없다. 

에틸렌 등의 수요는 글로벌 경제성장률과 직결되며 통상 에틸렌 수요율은 경제성장률을 소폭 상회하는 데, IMF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10월 전망보다 0.4%포인트 하락한 3.3%로 예측하고 있다.

▲ 세계 에틸렌 수요 증가율과 GDP 성장률 상관관계. 출처=IBK투자증권

특히 ECC의 경우 에틸렌 생산이 70% 이상에 이르는 등 NCC에 비해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어려워 시황 악화시 실적 하락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 ECC와 달리 NCC는 에틸렌 등 올레핀계열 외에도 벤젠과 같은 방향족 제품도 생산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스프레드 하락이 극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준위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올해 에틸렌 계열 제품 공급과잉 심화가 전망된다”면서 “다만 예상되는 공급과잉률을 고려하면 ‘스프레드 하락폭’은 급격하지 않으며 지난 2014~2015년 수준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 에틸렌 공급과잉률 및 스프레드 추이. 출처=한국기업평가

실적 개선은 당장 극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응주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미국 공장 가동에도 2분기 실적 개선 폭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라며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유가 강세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봤다. 이 애널리스트는 2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23% 증가한 3636억원으로 전망했다.

미국 공장 생산능력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부문 사장은 "미국 에탄크래커 공장은 최초 설계때부터 생산량을 최대 140만t까지 늘릴 수 있도록 반반영돼있다"며 "현재 40만t 증설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사장은 "이 경우 에틸렌 40만t을 활용할 폴리에틸렌(PE), EG 공장을 추가로 짓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며 "총 투자비는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정도로 예상한다"고 했다. 증설이 확정될 경우 주정부의 환경영향평가를 거친 뒤 이르면 내년쯤 착공될 전망이다.

한편, 9일(현지시각) 오전 10시에 시작된 롯데케미칼 ECC 공장 준공식에는 이낙연 대한민국 국무총리, 존 벨 에드워드(John Bel Edwards) 루이지애나주 주지사, 제임스 차오(James Chao) 웨스트레이크 케미컬(Westlake Chemical) 회장 및 알버트 차오(Albert Chao) CEO,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화학BU장 김교현 사장, 롯데케미칼 임병연 대표이사, LCUSA 황진구 대표 등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31억 달러가 투입된 이 공장과 협력기업들은 레이크찰스와 인근 지역에 2500 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게 될 것”이라며 “롯데케미칼은 이곳에서 셰일가스를 원료로 에틸렌을 생산하면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종합화학기업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라고 축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