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한 수요로 인한 유가 상승은 대개 견실한 세계 경제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제한된 공급으로 인한 가격 상승은 전세계 경제에 부정적 충격을 미친다.    출처= Bloomberg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원유 수출를 '제로'로 만들겠다고 거듭 공언하는 가운데, 치솟는 원유가격이 세계 경제에 또 다른 역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4일 업계 등에 따르면 국제 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올 들어 30% 이상 오르면서 6개월 만에 최고치에 근접했다. 강한 수요로 인한 가격 상승은 대개 견실한 세계 경제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제한된 공급으로 인한 가격 상승은 전세계 경제에 부정적 충격을 미친다.

사우디가 연말까지 감산을 지속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의 증산과 사우디 설득’에 하락했던 유가는 하루 만에 반전으로 돌아섰다. 사우디의 발언은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8개국에 대한 이란 원유 수출 금지 면제를 종료한 미국이 중동 산유국들에게 공급 차질에 대응할 것을 주문한 데 대해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다.

이와 함께 베네수엘라의 정국 혼란도 수급 불균형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자극하며 유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증산에 소극적인 만큼 유가 상승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 힘을 얻는 가운데 유가 100달러 돌파 시 파장을 경고하는 의견이 쏟아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국제 유가의 상승이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고 보도했다. 수출국들은 기업과 정부 수입의 증가를 만끽하게 되겠지만, 소비국들은 그 비용을 고스란히 떠 안으며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결국에는 수요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유가가 계속 상승하면 어느 시점에서는 수출국 수입국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1. 글로벌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유가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다양하다. 유가 상승은 가계 소득과 지출에 타격을 줄 것이며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할 수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인 중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며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수입 에너지 의존도가 크다. 계절적 효과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반구 여름이 다가옴에 따라 소비자들은 에너지원을 바꾸고 석유 사용량을 줄일 것이다. 세계 경제가 침체를 맞으면 수요가 떨어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석유 가격도 억제될 것이다.

2. 세계 경제는 100달러의 석유를 어떻게 흡수할까?

유가가 100달러 이상을 유지하게 되면 세계 경제에 대한 타격도 지속될 것이다. 원유가 달러로 가격이 책정된 점을 감안할 때 달러화가 강세이냐 약세이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의 분석에 따르면, 브렌트유 가격이 2019년 말까지 배럴당 100달러에 이르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전망치보다 0.6% 낮아지고 물가상승률은 평균 0.7%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나타났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의 존 페인과 가브리엘 스턴 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급등할 위험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OPEC 이외의 국가에서의 생산량 증가로 공급 충격을 상쇄할 가능성이 높지만, 시장이 긴축되어 있어 공급에 한 번만 더 충격이 오면 유가는 금새 100달러 선에 도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3. 이란과 미국의 갈등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이란과 미국간의 갈등으로 인해 적어도 하루 80만 배럴의 글로벌 석유 거래량이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금융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석유 공급에 대한 불확실성은 이미 석유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지닌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다른 시장도 변동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와 협력해, 이란에서 다른 나라로 수입원을 옮겨야 하는 나라들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의 일일 생산량이 이란의 4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증산으로 손실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국의 주장은 애시 당초 지킬 수 없는 약속이다.

4. 유가 상승으로 누가 득보는 나라는?

산유국의 대부분은 신흥국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석유를 수입하는 선진국들보다는 유리할 것이다. 산유국들의 세입 증가는 예산과 경상수지 적자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정부의 투자 지출을 늘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노무라의 분석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노르웨이, 나이지리아, 에콰도르 등이 유가 상승으로 인해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5. 피해보는 나라는?

현재 경상수지 및 재정 적자를 겪고 있는 신흥국들은 대규모 자본 유출과 통화 약세의 위험을 안고 있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국가들의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성장이 둔화되면서 금리를 인상하겠지만 자본 도피의 위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노무라는 터키, 우크라이나, 인도 같은 나라들이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한다.

6.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의 석유 생산자들은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하지 못하는 나라들에게 더 많은 석유를 판매함으로써 반사 이익을 얻으려 하겠지만, 미국 경제 전체가 유가 100달러 상황에서 이익을 본다고 할 수는 없다.  

유가 상승은 꾸준한 경제 성장의 중추인 미국 소비자들을 압박할 것이다. 이달 들어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2.89달러로 이미 7% 이상 올랐다. 이는 지난 3월 2017년 이후 최고조에 오른 소매업 판매 호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세계 석유 시장에 잘못된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은 이란 제재에 대한 모든 비난을 통째로 뒤집어쓸 정치적 위험도 있다. 이것은 투자나 경제적 안정을 위협하는 다른 경로를 통한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

7.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유발할까?

소비자 물가 측정에서 에너지의 특성이 두드러지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책 입안자들은 변동성이 심한 요소를 제거한 핵심 지수를 찾는다. 유가 상승폭이 크거나 상승이 지속되면, 그 비용은 운송비와 공공 요금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8. 중앙은행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보다는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에 방점을 두면서 전세계 중앙은행들도 온건 노선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당분간 그런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달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세계가 '민묘한 시기’(delicate moment)'에 돌입했다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