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저지주 밀번에 새로 오픈한 인디고 매장에는 책 뿐 아니라 핸드백, 문구, 잡화 등을 판매한다. 책을 읽는다는 개념을 물리적으로 확장시킴으로서, 책을 사는 경험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분위기(aura)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출처= Indigo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약 10년 전, 캐나다의 최대 서점 체인 인디고(Indigo)의 최고경영자(CEO) 헤더 레이즈먼은 소설가 마가렛 애트우드와 차를 마시며 대화하던 중 애트우드가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로 새로운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애트우드가 집에 가서 따뜻한 양말을 신고 엎드려 책이나 봐야겠다고 말했을 때, 레이즈먼은 그 말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들렸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인디고는 편안한 ‘독서 양말’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개발했고, 이 상품은 금방 인디고의 대표적인 선물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허프포스트(HuffPost)의 공동 창업자이자 레이즈먼의 친구인 아리안나 허핑턴은 "작년에 내 친구들은 모두 독서 양말을 샀다"고 말했다. 허핑턴은 또 자신이 2016년 창업한 건강 및 웰빙 앱 개발회사 드라이브 글로벌(Thrive Global) 직원들에게 이 양말을 한 켤레씩 선물로 사주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서 양말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요.”

지난 몇 년 동안 인디고는 비치 매트, 향초, 영감을 주는 벽화, 유리병, 크리스탈 기둥, 도시락,  허브 재배용 키트, 구리 치즈나이프 세트, 목 없는 샴페인 잔, 소형 쿠션, 스카프 등 수십 개의 다른 제품들을 개발했다.

서점 체인이 수프 그릇 같은 공예품이나 유기농 면 유아복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디고의 이런 접근 방법은 참신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성공과 장수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온라인 소매 시대에 10만권의 장서를 갖출 만큼의 거대한 공간을 요하는 대형 서점의 개념이 창고에 방대한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아마존과의 경쟁을 지속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인디고가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인디고는, 처음엔 책을 고르기 위해 매장 이곳 저곳을 헤매던 고객들이 충동적으로 캐시미어 슬리퍼나 크리스탈 페이스 롤러(facial rollers)를 구입하거나, 새 요리책을 사면서 그 요리에 어울리는 칼을 구입하게 하는, 이른 바 ‘문화 백화점’(cultural department store)으로서 자리매김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년에 걸쳐 레이즈먼은 인디고를 기네스 팰트로가 운영하는 홈리빙샵 구프(Goop) 같은 큐레이트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재창조했으며, 매장에 음식, 건강, 웰빙, 홈 데코 전문용품 코너를 배치했다.

레이즈먼은 이제 인디고의 접근 방식을 미국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인디고는 뉴저지주 밀번(Millburn)에 고급 쇼핑몰을 열고 이곳을 미국 진출의 전초기지로 삼아 북동부 지역에 여러 개의 인디고 매장을 열 계획이다.

과거 대형 서점 체인들이 미국에서 고전했던 것을 고려할 때, 인디고의 이같은 도전은 더욱 두드러진다. 한때 650여개의 매장을 자랑하던 보더스(Borders)는 지난 2011년 파산신청을 했고, 반즈앤노블(Barnes & Noble)은 2010년 720개 매장에서 현재 627개 매장으로 축소했으며, 지난해에는 회사를 시장에 매물로 내놓기도 했다. 최근에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Fairfax County)에 8300 평방피트(230여평) 규모의 아울렛을 여는 등 비교적 소형 매장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책 산업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코덱스 그룹(Codex Group)의 피터 힐딕-스미스 대표는 "크로스 머천다이징(Cross-merchandising, 종류가 다른 것을 서로 섞어서 구색을 갖춰 매장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정책)은 <리테일 101>(소매 사업 전략 가이드 교본)에 나오는 것이지만, 일반적인 서점에서는 따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디고는 책을 읽는다는 개념을 물리적으로 확장시킴으로서, 책을 사는 경험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분위기(aura)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 레이즈먼은 "우리는 전반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큰 아이디어들을 큐레이션한다"고 말한다. 인디고는 ‘문화 백화점’(cultural department store)으로서 자리매김을 시도하고 있다.    출처= Indigo

뉴저지 매장을 둘러보는 동안, 적절한 수면과 수화 작용(hydration), 가공하지 않은 음식, 전화기에서 멀리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레이즈먼은 책을 파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마치 자기관리 전문가나 웰니스 전도사처럼 보였다.

레이즈먼은 "우리는 전반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큰 아이디어들을 큐레이션한다"고 말한다.

뉴저지 매장의 분위기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친밀하고, 아늑하며, 여성적이다. 여성이 책 구매자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업적으로도 충분히 합당한 미적 선택이다.

‘테이블의 즐거움’(The Joy of the Table)이라는 코너에는 인디고 브랜드의 도자기, 유리용기, 그리고 요리책과 함께 접시들이 달린 아카시아 나무가 있다. 홈 데코(Home Décor) 코너에는 베개와 쿠션, 직물로 짠 바구니, 꽃병, 향초 등이 있다. '그녀의 말 속에'(In Her Words)라는 코너에는 여성이 추구하는 아이디어 관련 책이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있다. ‘그녀만의 방’(A Room of Her Own)이라는 방은 멋진 드레싱 룸처럼 보이는데, 채식주의자의 가죽 지갑, 부드러운 회색 숄(shawl), 벨벳 의자, 스카프, 그리고 미술, 디자인, 패션 잡지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그러나 책은 여전히 인디고 매출의 50%를 상회하는 주력 상품으로 중앙의 가장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뉴저지 매장에는 약 5만 5000권의 장서가 진열되어 있다. 그러나 책들은 고객의 관심사, 취미, 욕구, 근심에 대한 창 같아서 모든 관련 상품을 함께 팔기 쉽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사실 이 개념은 수십 년 전에 아마존이 개척한 것이다. 아마존은 그 이후 ‘모든 것을 파는 가게’가 되는 것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인디고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레이즈먼은 말한다.

"우리가 종사하는 카테고리에서, 큐레이트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모든 것을 파는 가게가 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건 다른 누군가가 이미 하고 있으니까요.”

반스앤노블이 고전하는 모습을 우려의 눈초리로 지켜봐 온 출판사 사람들은, 레이즈먼의 전략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펭귄 랜덤 하우스의 마커스 도흘 CEO는 "레이즈먼은 책과 책이 아닌 상품을 통합하는 기술을 개척하고 완성했다."라고 극찬했다.

레이즈먼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취향 및 관심사를 브랜드의 중심축으로 삼았다. 뉴저지 매장의 앞쪽에 있는 '헤더의 추천 코너'에는 수십 개의 책이 진열되어 있다. 진열대 표지판에는 그녀를 "이 서점의 창업자이자 CEO인 엄청난 책 애호가 헤더, ‘헤더의 추천 코너’를 만든 바로 그 헤더”라고 적혀 있다.

그녀는 작가 사인회와 매장 행사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말콤 글래드웰, 제임스 코미, 샐리 필드, 빌 클린턴, 노라 에프론 같은 저명한 작가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 책은 여전히 인디고 매출의 50%를 상회하는 주력 상품이다. 그러나 책은 고객의 관심사, 취미, 욕구, 근심에 대한 창 같아서 모든 관련 상품을 함께 팔기 쉽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출처= Indigo.

레이즈먼은 자신의 컨설팅 회사를 운영했다가 이후 청량음료 회사인 코트(Cott)의 대표를 지낸 후, 1997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벌링턴(Burlington)에 인디고 1호점을 열었다.

당시에도 책 판매는 흔치 않은 산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디고가 캐나다의 최대 서점 챕터스(Chapters)와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한 회의적 시각은 몇 년 후 인디고가 챕터스를 인수 합병하며 전국적인 서점으로 발돋움하면서 겨우 사라졌다. 이 회사는 현재 89개의 ‘대형 서점’을 포함해 캐나다 전역에 2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가 지난 2016년에 처음으로 새로운 컨셉의 매장을 열기 시작했다.

새로운 접근방식은 수익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2017 회계연도에 이 회사의 매출은 처음으로 10억 캐나다 달러(CAD, 8700억원)를 넘어섰고, 2018 회계연도에는 전년에 비해 거의 6천만 CAD(520억원)의 매출 증가를 보이며 회사 역사상 최고의 수익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해서 인디고가 다른 대형 오프라인 소매점들이 직면했던 어려움을 전혀 겪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가장 최근의 실적보고서인 2019 회계연도(2018.7~2019.6)의 3분기(1~3월)에서 인디고는 7백만 CAD 이상의 매출 감소와 전년 대비 1600만 CAD의 총수익 감소를 보였다. 물론 여기에는 캐나다 우편 파업, 최저임금 인상, 매장 개조 비용 등 여러 원인이 포함되어 있다.

이 회사가 캐나다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아마존과 반스앤노블뿐만 아니라 최근 다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독립 서점들과 경쟁해야 하는 미국에서도 번창할 것이라는 것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미국서점협회(American Booksellers Association)에 따르면, 수년간 하락세를 보였던 독립 서점들은 지난 해 2470개로 10년 전의 1651개에서 다시 증가 추세에 있다. 게다가 온라인 서점의 대명사인 아마존 조차도 미국 전역에 약 20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열며 오프라인 소매 시장까지 손을 대고 있다.

레이즈먼은 회사를 미국까지 확장하는 것이 도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낙관적이며 뉴욕 근처에 두 번째 매장을 물색 중이다.

"우리는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우리만의 접근법을 조각해 오고 있답니다. 우리는 업계의 신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