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대법원은 서울시와 종로구가 상고한 ‘사직2정비구역 직권해제 고시 무효확인소송(이하 이 사건 소송)’에서 조합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는 지난해 7월 1심과 같은 해 11월 2심에 이어 3심에서도 서울시와 종로구가 내리 패소한 것으로서 특히 이번에는 ‘대법원이 본안을 심도 있게 심리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서울시와 종로구의 상고 주장은 그 자체로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는 의미의 ‘심리불속행기각’판결로 패소한 것으로 알려져 서울시와 종로구로서는 패소가 더욱 뼈아프다.

이 사건은 지난 2012년 사직2구역 주민들이 재개발을 통한 아파트 건설을 위해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던 중 2017년 3월 서울시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 사직2구역을 정비구역에서 직권해제하면서 시작되었다. 서울시의 주장에 따르면 해당 지역은 한양도성에 인접한 구릉지 형태의 주거지로 보존을 통해 미래 후손에게 물려줄 가치가 있어 역사·문화적 가치 보전이 필요하여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기에 부적절하므로 서울시와 종로구가 이미 지정했던 사직2구역에 대한 정비구역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시가 사직2정비구역에 대하여 직권해제를 한 근거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제21조와 그로부터 법률 위임을 받아 서울시가 개정한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였다. ‘정비구역 등의 직권해제’라는 제목의 도시정비법 제21조에 따르면 정비구역의 지정권자는 지방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토지등 소유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제1호), 정비구역 등의 추진 상황으로 보아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제2호)는 시·도가 정하는 조례에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정비구역을 해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데(제1항), 서울시는 도시정비법 제21조 제1항 제2호를 받아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구역지정 이후 여건변화에 따라 해당구역 및 주변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 보전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를 “정비구역 등의 추진 상황으로 보아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중 하나로 보아 시장이 직권으로 정비구역을 해제할 수 있도록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를 개정한 것이다(제4조의3 제3항 제6호).

그러나 이 같은 조례의 내용은 도시정비법 제21조가 시·도 조례에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현저히 벗어나 위법한 것이었다. 당초 도시정비법 제21조가 시·도 조례를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라고 한 취지는 재개발 사업이 이루어지는 정비구역에서 ‘토지등 소유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 ‘정비구역의 추진 상황으로 보아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된다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일 뿐 아니라 각 시·도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 주무관청에 어느 정도의 재량을 부여한다는 의미에 불과한 것이지, 각 시·도가 법률이 조례에 위임한 범위를 벗어나 정비구역을 직권 해제할 수 있는 사유를 제멋대로 창설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역사·문화적 가치보전이 필요한 경우’라는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 이 경우에도 시장이 직권으로 정비구역을 해제할 수 있다는 조례를 만들었던 것이다.

직권해제를 하면서 주민들로부터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청문절차를 만들지 않은 것도 위법의 소지가 높은 부분이었다. 직권해제는 그 이전부터 재개발 사업을 추진해 온 조합원들의 권리의무, 법적 지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이른바 ‘침익적 처분’으로서 행정청이 어떠한 처분을 하기에 앞서 당사자 등의 의견을 직접 듣고 증거를 조사하는 절차인 청분절차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울시가 개정한 조례 내용 어디에도 ‘역사·문화적 가치보전이 필요’하여 정비구역을 직권 해제하는 경우 사전에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단지 구청장 혹은 시장이 일방적으로 주민들에게 공고를 하는 것이 절차의 전부였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위법한 조례를 기초로 한 정비구역 직권해제 고시에 대하여 무효 판단이 내려진 것은 어쩌면 대법원까지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서울시의 잘못된 조례 개정과 그에 기초한 위법한 처분으로 재개발 사업을 중단했던 조합은 대법원에서 받은 최종적인 확정판결에 터 잡아 재개발 사업을 재개한다는 입장이지만 사업 추진은 그리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가 정비구역을 해제한 직후 정비구역 내에는 새로운 건축물들이 들어서 조합은 이들과 이해관계를 다투어야 하고, 그 사이 달라진 도시정비법 내용에 맞추어 재개발 추진 일정도 보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위법한 처분으로 입은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는 별도의 국가배상청구도 검토해 볼만 하지만, ‘어떠한 행정처분이 이후 소송에서 취소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곧바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것으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에 그 자체로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에 비추어 볼 때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승소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대법원 1999. 9. 17. 선고 96다53413 판결, 대법원 2000. 5. 12. 선고 99다70600 판결). 사직2정비구역을 위법하게 직권 해제한 것은 서울시지만, 결국 그에 따른 모든 손해는 조합의 몫으로 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