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는 바지인가, 운동복인가?

레깅스를 입는 여성은 성적 도구화의 희생양인가, 아니면 레깅스를 입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여성을 성적 도구로 보는 것인가?

요가나 운동을 할 때 거추장스러움을 막기 위해 몸에 딱 달라붙도록 입는 레깅스, 혹은 쫄바지 같은 복장이 일상복이 되면서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미국에서 한창이다.

보통 옷에 대한 논란이 일어날 때는 주로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의견을 제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레깅스 논란은 패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나 그저 옷은 깨끗이 입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까지 뛰어들어 불꽃튀는 논쟁을 벌이고 있다.

레깅스가 일상복이 된 것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이런 저런 이견이 많았다. 이번 논란의 불씨를 지핀 것은 지난 3월 카톨릭 계열의 인디애나 노트르담 대학 신문에, 자신을 카톨릭 신자이며 4명의 아들은 둔 엄마라고 밝힌 여성이 노트르담 대학 여학생들에게 레깅스를 입지 말 것을 당부하는 글을 기고하면서 크게 가열됐다.

이 학부모는 아들들과 함께 노트르담 대학 교정을 방문했다가 사방에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여학생들이 가득해서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당황했다면서, 자신이 이럴 정도니 자신의 아들들을 포함해 젊은 남성들은 이런 옷차림에서 눈을 돌리기가 정말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엄마는 아들을 둔 엄마들을 생각해서 여학생들이 레깅스 대신에 청바지를 입어달라고 호소했다.

엄마의 간곡한 바람과 달리 이 글을 읽은 노트르담 학생들은 오히려 반발하면서 ‘레깅스 시위’를 벌였다.

단순히 레깅스는 바지가 될 수 없다거나 특정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적절한 복장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면 큰 파장이 없었겠으나, 여성의 복장이 남성을 유혹해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책임을 여성의 잘못이라고 암시하면서 큰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학생들은 레깅스를 입고 시위를 벌였으며 소셜미디어에는 해시태그 ‘노트르담 레깅스데이’라고 달아서 자신들의 레깅스를 입은 사진을 게시했다.

이들은 여성들은 자유롭게 의상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남성 때문에 특정 의상을 입지 못한다거나 행동의 제약을 받는 것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만 국한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깅스를 입지 말자라거나 특정 장소에서는 금지시키자는 주장은 여러 번 나온 바 있는데,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인 선택권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한다.

미국은 개인의 선택 자유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총기 보유 등의 문제도 개인의 선택권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더구나 자신의 옷차림에 대한 규제라는 것을 미국인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레깅스를 즐기는 많은 여성들은 레깅스가 정말로 편안하고 움직임에 제약이 없기 때문에 입는 것이라고 예찬론을 편다.

장소와 격식을 따져서 옷을 보수적으로 입는 한국과 달리 편안함이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미국에서는 청바지에 티셔츠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많고, 양복을 입거나 넥타이를 하는 사람들은 특정 직종에서만 볼 수 있다는 점도 이런 주장에 설득력을 갖게 한다.

그러나 여성들이 레깅스를 일상복으로 입는 것 자체가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동조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곤 한다.

노트르담 대학 사건이 불거지기 얼마 전 뉴욕타임즈의 기고에서는 운동을 할 때 몸에 편하고 활동성이 좋으려면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모든 여성들이 비싼 요가복이나 레깅스를 입는다고 지적했다.

몸을 예쁘게 보이게 한다면서 착 달라붙는 레깅스를 팔아 몸에 땀이 나게 하던 회사가 이제는 몸을 숨 쉬게 한다며 메쉬 소재를 여기저기 덧대놓고 한 장에 100달러가 넘는 가격에 물건을 판다면서 애초에 통기가 되는 헐렁한 바지를 입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자신이 헐렁한 바지를 입고 요가를 하러 갔더니 오히려 다른 여성들이 불쌍히 쳐다보더라면서 결국 운동을 하면서도 여성은 섹시하고 멋져 보여야만 하는 사회적인 억압에 굴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싼 레깅스를 팔려는 스포츠 의류업체들의 마케팅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뉘앙스도 풍겼다. 미국 여성들이 2007년에는 레깅스보다 정장을 구입하는 데 21억달러를 더 사용했던 것과 달리 2017년에는 그 차이가 1억5800만달러로 줄었다는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같은 현상을 놓고 상반된 주장이 나오고 있으니 레깅스를 둘러싼 논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