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국내 ESS시장이 9개월여 정지상태다. 글로벌 시장의 우등생으로 잘나가던 ESS한국의 전원이 꺼졌다. ESS 시장은 세계적으로 매년 40%씩 고속성장이 예상되는 미래 유망산업군이다. 그래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분명 한국 ESS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술력으로 눈부시게 시장 확장을 해왔다. 이 같은 폭발적 성장에는 독보적인 기술력이 뒷받침됐다. 그렇지만 화재로 인해 모든 동작이 멈췄다. 정지 상태인 한국 ESS산업은 결과 발표와 함께 후속조치에 따라 정지된 생태계가 더 공고하게 작동할 수도, 아니면 괴멸할 수도 있는 기로에 섰다. 글로벌 유망주 한국ESS산업을 살려낼 솔로몬의 지혜는 무엇일까.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신재생에너지 확대 기조에서 ESS는 신재생에너지와는 ‘실과 바늘’처럼 필연적으로 함께 갈 수밖에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발전량 중 신재생 발전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기준 세계 신재생 발전량은 전체 발전 중 25% 수준이고, 2023년까지 비중이 30%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발전원별로 보면 2018년 기준 수력발전이 69%로 높았지만 꾸준히 하락 추세고, 풍력, 태양광은 각각 18%, 8%로 비중을 높아지는 추세다. 신재생 에너지 확대 기조로 함께 커질 ESS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의 재도약 조건은 무엇일까.

정부 ESS 발표가 첫 단계

올스톱된 국내 ESS시장이 다시 활성화되기 위한 첫 단추는 정부가 쥐고 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ESS 화재의 원인을 분석해 발표 준비 중이다. 5월에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산자부는 정확한 시기는 특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ESS 화재 원인 조사는 산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 제품안전정책과가 담당하고 있다. 이귀현 국표원 제품안전정책과 과장은 “현재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ESS 화재 원인 규명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결과 발표를 위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면서 “최종 원인 발표가 5월일 수도 있지만 더 빨라지거나 늦어질 수도 있는 만큼 공식 발표 시기는 현재 언급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산자부는 ESS원인 발표와 함께 ESS산업 관련 정책도 함께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진광 산자부 전자전기과 과장은 “원인 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ESS시장 정책도 준비 중인데 이것 역시 화재 조사 발표와 동시에 내놓을지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내놓을지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산자부의 ESS 화재 조사 결과와 정책 발표는 ESS업계에 매우 중요하다. 빠르면 빠를수록 올해 하반기 사업 계획을 조기에 수립할 수 있고, 중소 ESS업체는 사업 존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ESS업계 관계자는 “우선 화재 원인 발표라도 앞당겨 했으면 좋겠다”면서 “꼼꼼하게 조사를 하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하기 힘들지만 정부 발표가 있어야 ESS시장이 다시 열릴 수 있는 만큼 5월보다는 이른 발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ESS 화재를 외국도 주목하고 있다”면서 “삼성SDI와 LG화학의 배터리를 사용한 한국 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중국 배터리를 사용하겠다고 말하는 해외 바이어들도 있는 만큼, 수출시장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정부의 빠른 발표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확하고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정부의 원인 발표와 후속 대책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ESS 설치 규정을 너무 엄격하게 만들어 버리면 오히려 ESS시장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서 “정확한 원인을 기반으로 관련 회사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ESS 개념도. 자료=LG화학

ESS 화재, 산업 재도약 기회 돼야

ESS 전문가들은 이번 ESS 화재를 한국 ESS산업 재도약의 기회로 삼고 보다 철저한 전략을 만들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화재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 ESS 시장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한국 업체들이 보다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정윤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연구위원은 “현재 ESS 화재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ESS업체들의 신뢰성 회복”이라면서 “국내 ESS시장보다 향후 더 큰 성장세가 전망되는 해외 ESS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명확한 원인 규명과 더불어 ESS산업 진흥을 위한 대책도 함께 정부가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모 연구위원은 “특히 ESS를 시공할 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규정이 없었던 만큼 정부는 원인 규명과 동시에 ESS 설치 관련 세부 기준 등도 함께 보여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해외로 수출된 ESS용 배터리에서는 현재까지 화재사고가 접수되고 있지 않은데 이는 반대로 해석하면 한국에 설치된 ESS에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면서 “산자부는 ESS 설치 관련해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 안전성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ESS 시공사들 중 배터리 공급사와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고 보급에만 치중해 안전성을 등한시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면서 “보급 위주에서 안전성이 담보된 보급이 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조원일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도 “정부 발표를 통해 ESS 화재 원인이 규명되겠지만 단순히 특정 업체만의 책임으로 몰아가기보다는 생산적인 논의가 돼 한국 ESS업체들의 경쟁력이 더 높아졌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화재 이슈로 국내 ESS시장이 멈춰 섰지만 ESS의 전망은 밝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한병화 연구원은 “정부 발표가 나면 올해 하반기부터는 준비됐던 프로젝트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ESS산업은 재생에너지산업이 발전하면 필연적으로 함께 발전하는 만큼 산업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현대일렉트릭이 건설한 고려아연 ESS 전경. 출처=현대일렉트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