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쿠닝족 등 집꾸미기 수요층을 잡기 위해 열린 '2019 인테리어 디자인 코리아'.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서울시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연구원 박성준(29) 씨는 근래 들어 집 꾸미기에 재미를 붙였다. 박성준 씨는 “직업도 성격도 잡동사니가 많고 잘 버리지 못하는 ‘맥시멈리스트’이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수납할 것 인지를 항상 고민한다”면서 “나만의 공간에 있는 나만의 물건들은 나를 나타내고, 나는 이 공간에 거주하면서 안온함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박 씨는 안온함과 ‘와식생활’을 초점으로 실내 공간을 다시 꾸몄다.

이전에 그의 집은 연구실과 같은 입식 공간이었지만 좀 더 넓게 쓰고 집답게 꾸미고 싶은 마음에 등지고 누울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박성준 씨는 “내밀한 나의 공간이라는 기분에 집 안에 체류하는 시간이 체감상 2배는 늘어난 것 같다”면서 “시간도 그렇지만 공간을 직접 살아내고 소비하면서 느끼는 질적 향상이 커졌다”고 말했다. 간접조명, 캔들워머를 켜고 음악을 켜둔 채 벽면에 붙여둔 엽서와 그림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식이다.

#서울시 노원구에 거주하는 전성엽(26) 씨는 박 씨와는 반대로 최소한의 가구로 여유공간을 확보하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전성엽 씨는 “미적 측면과 편의적인 측면을 모두 중점으로 삼고 있다”면서 “인형과 무드등처럼 한두 가지 포인트가 되는 소품으로 취향을 담아내려고 하고, 방에 두는 소품의 개수를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편의적 측면에서 전 씨는 “침대에서는 무선인터넷으로 연결된 기기로 공간을 제어하고 있다”면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영상을 감상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전등을 제어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전성엽 씨는 “공간을 꾸미기 전까지는 집 안에서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나면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면서 “취향을 공간에 반영하고, 방 안에서도 원하는 활동 대부분이 가능하도록 꾸미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도 늘어났고 만족감도 높아졌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다가구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박 씨와 부모의 주택에서 함께 거주하는 전 씨처럼, 활용 방안이 제한적인 기존 공간을 주체적으로 다시 꾸미는 행위가 하나의 자기표현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만의 집을 고집하는 부동산시장의 인류 코쿠닝족 출현

이처럼 주거와 주택상품이 전도된 상황에서도 차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거주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이러한 ‘거주’의 본래 개념을 찾는 새로운 조류 중에 하나로 ‘코쿠닝’(Cocooning)이 뜨고 있다. 고치라는 뜻의 ‘코쿤’을 사회현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본래 미 국에서 1980년대에 등장했다. 그러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사회와 괴리돼 살아가는 ‘움츠린’ 인간상을 포착 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다만 한국에선 특히 거주와 관련해 이와 같은 현상은 조금은 다른 맥락이 있다. 경제적으로 가족 혹은 개인 단위의 단촐한 소비활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주거 문화의 맥락에선 직접 자신의 방을 꾸미거나 실용적으로 개조하는 의미로 ‘코쿠닝’을 일컫기도 한다.

모바일 환경의 혁신과 대중화로 온라인에 접속하는 데 이동제한이 사라진 것도 코쿠닝족이 부상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다. 집에 체류하면서도 업무, 취미는 물론 음식 배달·쇼핑 등 바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이 집 안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박성준 씨는 “집 안에서 디지털 환경으로 많은 문화생활을 향유한다”면서 “집을 새로이 꾸미게 된 이유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스팀링크, 넷플릭스, 구글 크롬캐스트 등을 향유하기 위함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화생활을 잘 누리기 위해서라도 랜선, 전선의 배치나 공간의 적절성, 화면을 감안했을 때 조명의 위치 등을 신경 써야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집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면서 “웹소설, 유튜브를 보는 것이 취미이고, 미러링을 통해 TV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체류시간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들 역시 공간을 통해 자기표현을 하는 선제 조건으로 가격과 입지가 만족돼야 한다고 말한다. 박성준 씨는 “현재 내 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직장을 구하면서 새로 집을 구한 경우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선결조건이 어느 정도 해결된 후엔 그 집의 노후화, 옵션 등 질적인 측면과 함께, 연구실이자 스튜디오라는 콘셉트를 구현하는 데 적합한가가 이 집을 선택하는 데 큰 기준이 됐다”고도 덧붙였다. 반면 전성엽 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공간 활용의 제약을 느끼는 대신 경제적인 여건에서 다소 자유로운 면이 외려 제약을 경감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트렌드모니터 업체 엠브레인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거주주택을 선택할 때 주요 결정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교통편’이 70.4%로 가장 높았고, 주택가격은 53.3%를 차지했다. 직주여건이 좋은 곳은 수요가 풍부하고, 수요가 풍부한 만큼 전세매물의 매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매매가 또한 높게 설정된다는 도식이 가능하다.

2011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집계된 이 조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주택의 편의성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1년 조사에서 31.2%의 비중을 차지한 ‘병원·관공서 등 사회서비스 시설 유무’ 항목은 2017년 조사에서 38.1%로 급등했다. 마찬가지로 2011년 26.4%를 차지한 ‘지역 보안 및 안전성’ 항목은 2017년 들어 36.6%로 약 10% 상승했다. 반면에 ‘쇼핑 편의시설 유무’ 항목은 같은 기간 32.3%에서 30.0%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면서, 유의미한 비율의 주택 거주자들이 점차 ‘내부 지향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동산가치 가격보다 편의성 거주라는 본래의 기능으로 회귀

부동산 가치에 있어서도 소비자들의 생각은 달라졌다. 주택을 선정하는 데 있어 가격의 중요성은 2011년 54.8%에서 2017년 53.3%로 소폭 하락했다. 또한 부동산 가격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역개발 계획 유무(뉴타운 조성 등)’ 항목은 10.3%에서 9.4%로 낮춰졌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1순위 해당 지역에서 모든 청약신청을 마감한 ‘홍제역 해링턴 플레이스’ 청약 결과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당 단지는 지하철 3호선과 다량의 버스노선으로 강북·강남 도심 접근성이 높은 편이고, 소형 평형은 비교적 저렴한 4억원대에 분양돼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전용면적 39㎡형은 최고 경쟁률인 57.14:1을 기록하면서 특히 젊은 층의 직주여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해당 단지의 청약 성공 배경엔 2018년 초미의 화두였던 9.13과 2017년의 8.2 대책이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9월 13일 발표한 해당 대책은 투기지역·투기과열지 역·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에서 2주택 이상 다주택자들의 주택담보대출을 원천 차단했다. 또한 규제지역 내 공시가격이 9억원을 초과하는 고가주택을 구입할 경우 실거주 목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다. 더불어 8.2 대책과 9.13 대책이 맞물리면서 중도 금 대출 상한 또한 낮춰졌다.

이 때문에 신축 아파트 시장은 무주택 기간을 유지해 온 현금 부자를 제외하고는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는 모양새다. 대책의 여파로 수요자들은 중도금 대출이 용이한 저분양가 단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종합하면 향후 투자가치를 기대하지 않는 경기도와 비인기지역에서 1군 브랜드가 아니어도 원하는 수요자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정부 규제로 인해 투자 수요가 실종된 시점에서 거주라는 집의 본래적 기능으로 회귀하는 흐름은 응당 당연해 보인다. 동시에 실제 거주 여건이 좋은 곳은 으레 투자 전망 또한 높게 평가된다는 점은 주거 트렌드와 가격 전망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격싸고 주거수준 높은 수도권 외곽 선호

‘부동산에도 가성비 바람’ 주택시장은 왜곡된 시장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서울의 주택 시장은 폭등기를 맞았다. 투기 행위를 막기 위해 정부가 여러 차례 정책을 내놓았지만, 정책이 나올 때마다 수요자들은 ‘이번이 부동산을 장만할 마지막 기회’라면서 더더욱 달려드는 모습이었다.

KB부동산 월간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에 따르면 매매가격지수는 2018년 6월 98에서 11월 100으로 뛰어올랐다. 6월부터의 변동률을 누적하면 약 2.1% 오른 수치다. 특히 서울 지역 매매가격은 높은 시세인 만큼 시장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였다.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가격은 2018년 6월 5억7240만원에서 2019년 2월 현재 6억4617만원으로 7300만원 가량 뛰었다. 특히 인기 지역, 인기 브랜드단지일수록 상승률은 가팔라져 잠실 등지의 아파트는 한 달 만에 2억원 상승이 예삿일이 되기도 했다. 같은 기간 경기도는 2억9968만원에서 3억2068만 원으로 약 2100만원 상승했다.

경기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아, 주택 가격이 높은 편인 성남시 분당구 등은 서울집값 상승률에 비례해 가격이 오르기도 했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주택보급률은 2017년 기준 103.3%로, 2010년 100%를 넘어섰다. 그러나 자신의 집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은 현실이다. 거주공간으로서 집의 의미는 우리에게 각별하게 다가오지만, ‘내 집’에 대한 의미는 더욱 각별한 법이다. 통상 아파트·주택이 여타 투자 수단에 비해 더욱 안정적인 수익률과 낮은 위험도를 갖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내용에 따르면 전국의 다주택자 수는 2012년 말 163만1000명에서 2017년 말 211만 9000명으로 약 50만명 늘어났다.

정부가 내놓은 세제 혜택 등 유도책에 따라 등록 임대 사업자 역시 같은 기간 5만4000명에서 24만9000명으로 5배 가까이 늘어났다. 특기할만한 점은 1인 가구가 점차 늘어나는 가운데,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경기도로 이동하는 인구 역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기도 전입 인구는 2016년 195만명에서 2017년 188만명으로 줄어들었지만, 2018년 들어 204만명으로 약 20만명 이상 늘어났다. 서울의 경우 전입해오는 인구가 같은 기간 151만명→147만 명→143만명으로 점차 줄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거꾸로 경기도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출해 나가는 인구 또한 많아졌다. 해당 기간 경기도의 전출인구는 182만 명→177만명→187만명으로, 약 10만명 단위의 등락을 보이고 있다.

 

이는 주택 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하락세를 그렸고, 매매가격의 고저를 표현하는 매매지수 역시 완만한 상승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은 특히 그 상승세가 심했는데, 2016년 2.21%, 2017 년 3.60% 오른 데 그친 서울 아파트 가격은 2018년 들어 6.16%로 전년도의 두 배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했다. 경기도는 이에 반해 미미한 상승을 보였다. 같은 기간 경기도의 아파트 가격은 0.82%→1.73%→1.80%에 불과했다. 즉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경기도로 전입해 오는 인구는 이때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기록적인 폭등을 보인 2018년, 서울의 전입 인구는 줄어들고 경기도 전입 인구는 20만명 이상 늘어났다. 특히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가장 가격이 많이 오른 10곳을 꼽았을 때 9곳은 서울이었고, 나머지 한 곳은 성남시 분당구로 집계됐다. 이를 감안했을 때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면 인구 유동과 1인가구 증감에도 직간접적인 동인이 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