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집이 집으로 돌아온다. 집이 가진 본래의 기능인 ‘거주’에 초점을 맞추는 수요자들이 늘어나고, 건설사들 역시 이들을 겨냥한 구성으로 이목을 끈다. 보다 잘 살 고 싶은 욕망, 보다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찾을 수 있는 ‘집’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부동산시장의 장기적인 하향세가 가시화되고 거래 묶임 현상이 지속되는 등 실거주자를 위한 환경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동산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다 정부의 이중삼중 각종 규제로 체포되다시피 얼어붙으면서, 부동산시장을 투자, 투기라고만 인식하던 수요자들이 본래 삶의 질이 출발하는 소우주로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원초적인 부동산으로의 개념 전환이 발생하고 있다. 건설업계도 얼어붙은 부동산시장 앞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본래의 주거공간의 기능에 충실한 주택들을 기획하고 선보이고 있다. 얼어붙은 부동산시장이 삶의 질을 생각하는 신흥부동산족을 재발견시키고 주택은 그에 맞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3월 2주 기준으로 0.10% 하락했다. 이는 연속 18주 동안 하락한 수치로, 아직 지난해 폭등하기 이전 시점으로 회귀하기엔 이르지만 유의미한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감정원은 대출규제와 세제강화 등 각종 하방요인에 따라 수요자들의 매수심리가 위축되고 관망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상승 피로감이 높은 단지와 신규 입주단지 주변 아파트들, 또한 대단지 등을 중심으로 급매물이 누적됐다고 감정원은 설명했다.

경기도 역시 3월 1주 변동률인 -0.07%에서 하락폭이 늘어나 3월 2주엔 0.10%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광명시의 재건축 단지 급매물, 의왕·화성·평택 등의 신규공급 영향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국토교통부는 2018년 일어난 아파트 시장 이상 급등현상의 대책으로 9.13 대책과 여러 후속 조치들을 내놓은 상태다. 특히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시행된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에 의해 신규 청약단지의 청약 경쟁률과 신청률은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다. 무주택자의 신축 아파트 당첨률을 높이기 위해 규제 지역의 가점제 비율을 조정하면서 1주택자 등 다주택자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타당성을 얻고 있다. 더불어 시장 가치가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곳과 아닌 곳의 시장성 격차는 극심해지고 있다.

 

‘집’이 가진 본래 의미는?

부동산, 특히 아파트의 금전적인 미래가치가 불투명해지면서 집의 본래 가치인 ‘거주’를 되돌아보려는 흐름도 차츰 고개를 들고 있다. 아파트 가격의 추세적인 하락, 신규 청약단지의 경쟁률 하락 등 주택시장의 변화는 뒤 집어 설명하면 수요자들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첫째로 기존에 강세를 보이는 단지들의 높은 가격대는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망이 두터운 신축 단지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둘째로 소유 개념에 함몰되지 않고 작은 규모의 주택에서 전월세의 형태로 거주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경향성이다. 즉 상품이 아닌 거주를 위한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집으로 돌아가자.’ 안도감을 주는 말이다. 우릴 반겨줄 가족이 있고, 배를 채워줄 양식이 있고, 우리 생활의 전 반을 구성하는 생명력이 그곳에 있다. 긴 여행에서 돌아와 현관을 들어설 때 본래 자신의 자리가 어디였는지 비로소 깨닫는 공간이다.

집은 우리에게 충전소이자 안식처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집은 우리가 우리이게끔 하는 공간이다. 집 나가면 고생이란 말은 사람이 집 없이는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일면을 보여준다.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의 한 기둥이자, 다른 두 요소인 ‘의’와 ‘식’을 위한 가능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한 가지는 인간이 인간임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인식, 인간이라는 정의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상을 따라 함께 바뀌어왔다. 집이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면, 현재 어떤 집이 사람을 근거 짓는가? 집은 변화하는 인간상을 어떻게 반영했고 어떻게 진화했는가? 거꾸로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이고 앞으로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을 것인가? 사전적으로 ‘집’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더위·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해 지은 건물로 정의된다. 당초 집이란 편리를 취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것이 집의 시작이고, 또한 집에서 ‘거주’하는 인간의 본질을 가리킨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에 따르면 집은 짐승떼, 폭풍우에 방어하는 저항(Résistance)의 상징에서 시작해, 인간적인 가치와 인간의 위대함으로 거듭난다. 안팎의 전혀 다른 세계로 구별되는 집의 경계선 사이에서 인간은 쾌적함뿐만 아니라 바깥 세계에 대항해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확신의 힘을 얻는다. ‘밖이 추울수록 집은 더 따뜻하다’는 말은 자신의 존재를 집과 밀접하게 결부시킨 인간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생각에서 나아가 바슐라르는 집을 두고 “그의 방, 그의 집은 곧 그의 세계다. 왜냐하면 집은 하나의 세계 전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바슐라르에게 있어 집의 가장 큰 이점은 인간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집은 몽상을 보호하고, 꿈꾸는 사람을 돌보며, 평화롭게 꿈꿀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 이를 드러낸다. 미국의 심리학자 클레이튼 앨더퍼의 E·R·G 요구 이론을 접목하면 이러한 측면은 확연해진다. 생존과 존재를 뜻하는 ‘E’(Existence)의 영역에서 거주자는 안전과 쾌적, 독립성 등을 요구한다. 관계를 의미하는 ‘R’ (Relatedness) 영역에선 가족 간의 상호작용 또는 개인 내면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을 요구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성장 영역인 ‘G’(Growth)와 관련해 거주자는 유희거리 또는 취향을 표현할 수 있는 집을 원한다고 볼 수 있다.

박은아 대구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현대인이 집을 무엇으로 인식하고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지에 관한 면접을 진행했다. 30대부터 50대까지의 기혼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한 ‘초점집단면접’ 결과 집이 갖는 의미는 크게 9가지로 구분됐다. ① 자신과 타인을 구분해주는 존재의 기반 ② 가족과 교류하는 장소 ③ 몸과 마음의 ‘휴식처’ ④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곳 ⑤ 또 다른 일터 ⑥ 자신을 표현하는 장소 ⑦ 타인에게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표시하는 수단 ⑧ 성취 정도를 평가하는 도구 ⑨ 재산적 가치가 그것이다.

이 대목에서 집은 거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거주자의 상상력이 커지고, 집을 향한 욕구가 반영될수록 집은 거주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특히 현대 한국 사회의 맥락 안에서 상기한 9가지 의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측면은 ⑨ 재산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뉴스 섹션에서 더 이목을 차지하는 것은 ‘웰빙’이나 주택에 관한 철학이 아닌 아파트 가격의 등락 소식이다. ‘집’이 라는 추상적인 단어의 본질에 속하는 ① 자신과 타인을 구분해주는 존재의 기반 ② 가족과 교류하는 장소 등은 생활하는 한 가운데에서 실감하기 어려운 것도 한 이유다.

더욱 눈에 와 닿고 손에 잡히는 이야기는 가격만 한 것이 없다. 우리 동네가 얼마만큼 부촌이고, 우리 아파트의 브랜드 가치가 타 브랜드에 비해 어느 정도 위상인지 파악하는 것은 주택 보유자로서 큰 즐거움이자, 그들의 자기실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⑦ 타인에게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표시하는 수단 ⑧ 성취 정도를 평가하는 도구가 이 같은 사회상을 드러낸다. “나는 OO아파트에 산다”라는 발언은 수억원에 이르는 주택을 구입한 성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동시에 ‘휴거’(임대주택인 휴먼시아에 사는 저소득층을 속되게 이르는 말)라는 속어가 보여주듯 은연중에 자리 잡은 경제 계층 간 격차와 그로부터 발생한 권력·지위를 보여주기도 한다. 요컨대 ‘사는 곳’이라는 집의 기능을, ‘사는 것’이라는 재화·자산의 가치가 전도하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고유한 ‘공간’을 지닌 인간 현존재를 조명한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의 본질 가운데 하나를 거주로 규정한다. 하이데거는 건축한다는 뜻의 독일어 ‘바우언(Bauen)’의 어원이 되는 ‘부안(Buan)’의 의미를 보호하고 돌보는 것, 건립, 익숙함 등으로 분석한다. 거주의 본질적 특징 중 하나로 돌본다는 의미가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간단히 말해 하이데거의 시각에서 인간은 본래 존재의 특성인 거주를 하고 있지 않다. 하이데거의 개념인 ‘세계-내-존재’라는 표현처럼 인간은 단순히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의 다른 존재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세계 내 다른 존재와의 관련에 대해 사유하길 잊었고, 이 때문에 인간의 공간적인 특성 또한 잊혀지는 ‘탈공간화’의 곤경을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주공간으로서의 집이 인간에게 무슨 의미인지에 관해 숙고해야 하고, 또한 돌봄을 실현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이데거의 이러한 비판은 비록 환유에 가까운 추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내용은 적지 않다. 하이데거가 2018년 대한민국의 아파트 광풍을 예견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거주와 투자가 전도된 환경은 하이데거의 철학과 얼추 들어맞는 부분 이 있다. 또한 ‘돌봄’으로 대변되듯, 개인 스스로든 혹은 가족 구성원이든 관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 견 주택문화의 흐름을 짚어주고 있다.

 

‘사는 곳’의 변화 전망은?

특히 개인 차원에서 집에 투영하는 표현욕구나 자기실현 욕구가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트렌드모니터 업체 ‘엠브레인’에 따르면 개인적 공간의 의미가 점차 커짐에 따라 ‘홈인테리어’에 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을 나만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2015년 41.6%에서 2016년 47.1%, 2017년 51.8%로 과반을 넘어섰다.

셀프 홈인테리어 경험이 있는지 묻는 항목에서 설문 응답자의 49.4%는 ‘있다’고 대답한 것이 단적인 예다. 또한 그들 중 54.3%가 가장 개인적인 공간인 ‘침실’을 꾸몄다고 답했고, 가족과의 교류 혹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거실’을 꾸몄다고 답한 비중도 49.8%에 이르렀다. 셀프 홈인테리어를 시공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는 2016년 63.8%에서 2017년 74.0%로 급증하기도 했다. 거주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공간에 취향과 기호를 반영한 반면, 그 이면에 부모님, 배우자,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러한 과정에서 집이 가진 존재의 기반을 찾고, 아늑한 집에서 만족을 찾으려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매해 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의 2019년 판에 따르면 주택과 관련한 두 가지 키워드가 눈에 띈다. ‘카멜레존’과 ‘밀레니얼가족’이 그것이다. 카멜레존은 다채로운 성격을 동시에 갖고 때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의 면모를 포착한 단어다. 가령 을지로 인쇄골목이 소위 ‘힙한’ 카페 골목으로 거듭나듯이, 독특한 모습의 인테리어가 집으로 스며들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밀레니얼가족의 경우, 가족의 형태가 해체되고 기존의 역할 구도에서 탈피하면서 이를 반영하는 집의 모습 또한 변화하는 트렌드를 상상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거실보다 방이 강조되고, 직접 요리하기보다 외식이 활성화되면 주방의 위상도 작아지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