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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철학 찾기(12)]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도,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도 아닌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짧은 분량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는 폐지 압축공이다. 그는 35년째 버려진 책을 압축하고, 폐지로 만드는 일을 해왔다. 더럽고, 지저분하며,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해야 하는데다, 온종일 혼자 지내야 하지만 그는 행복하다. 바로 책 읽고 사색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평생 책과 가까운 삶을 살았지만, 그덕에 책과 책에 담긴 지혜에 잔뜩 빠져버린 상태다.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한 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기 일쑤. 자기 집의 저장실과 창고, 화장실, 찬장, 주방, 심지어는 침대 위에도 책이 가득한 바람에 그는 행여 책이 자신의 몸을 짓누를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그리고 여기 자신의 일에 빠진 사람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의 주인공 떠돌이가 그 인물이다. 그는 어느 공장의 노동자로 부품의 나사를 조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자리에 앉아 퍼즐 맞히기를 소일 삼는 사장은 그가 조금이나마 업무에 적응했다 싶으면 이내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높이고 만다. 조이고, 조이고, 또 조이고. 매일 조이기만 반복하던 그는 결국 미쳐버리고 만다. 소화전의 나사도, 비서의 옷에 달린 단추도, 뭐든 조이려고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얼핏 두 사람의 처지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 상황이나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 자신의 흥미나 기호와는 관계 없이 일을 맡게 되었다는 점. 둘, 분업화의 영향으로 일의 전체(가령 한탸라면 책을 압축하고, 재생시킨 뒤, 다시금 책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며, 떠돌이는 기계의 완성품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가 아닌 일부만을 맡게 되었다는 점. 셋, 결국 그 일에 푹 빠져버리게 되었다는 점이 이 두 사람 사이의 공통점. 다시 말해, 두 사람 모두 원하지도 않은 일을 맡아 그 일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야기의 요지이다.

높은 생산성을 토대로 끝없는 발전을 추구하는 산업 사회에서 분업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알려진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대표작 <국부론>을 통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한 사람이 옷핀을 만드는 것과 공장에서 분업을 통해 옷핀을 만드는 경우를 비교한 것인데, 한 사람이 모든 공정을 거치는 경우는 하루에 옷핀 20개를 만들기도 어렵지만 열 명이 분업을 통해 옷핀을 만들면 4만 8000개가 넘는 옷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 다시 말해, 분업을 통해 일하면 한 사람당 하루에 4800개의 옷핀을 만들 수 있으므로 혼자 옷핀을 만들 때보다 240배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업화의 폐해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애덤 스미스 또한 다음과 같은 우려를 제기한다.

‘일생을 몇 가지 단순한 작업의 수행에 바치고, 그 결과물이 항상 똑같거나 거의 똑같은 사람은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없애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해력을 발휘하거나 창조력을 행사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자연히 그러한 노력을 하는 습관을 잃게 되고, 일반적으로 인간으로서 최대한 어리석고 무지해진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과 <모던 타임즈>의 두 주인공들도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들이다. 떠돌이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사와 비슷한 모습이라면 모든 조이려 하는 ‘미친’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탸는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자 결국 압축기 속으로 자신의 몸을 밀어 넣는다.

기계나 다름 없는 삶을 살게 될 노동자들의 문제를 예견한 애덤 스미스는 그 해결책의 하나로 노동자 교육을 적극 주장했다.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 측면의 발전을 위해 국가 주도의 노동자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의 ‘교육’이 진정 노동자를 위한 것이었는지,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에는 이를 극복한 ‘진정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조금 더 생각해 볼 문제다.

*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progresses ad futurum)은 ‘미래로의 전진’,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regressus ad originem)은 ‘근원으로의 후퇴’라는 의미이다. 한탸가 각각 예수와 노자의 삶과 사상을 빗대 설명한 용어로 쓰였다.

이준형 토톨로지 대표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3.19  13: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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