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최근 '고어텍스'로 유명한 글로벌 기업 '고어'의 자회사 '고어메디칼'이 건강보험 수가가 너무 낮다는 이유로 독점하고 있는 선천성 소아심장수술에 사용하는 인공혈관 사업을 철수한 2017년 이후 해당 인공혈관 재고가 모자라면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고어는 최근 정부의 요청에 소아용 인공혈관 20개를 즉시 공급하고 향후 대화를 통해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해당 혈관은 1회 수술 시 1개가 사용된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 혈관을 활용하는 수술인 ‘폰탄 수술’이 필요한 소아 환자 수는 연간 약 30~40명 규모다.

의료기기를 제조 또는 수입을 하려는 기업은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인증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아야 한다. 식약처가 해당 행정규칙에 따라 의료기기를 제조하는 공장에 대한 서류를 검토하고 현장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 행정규칙에 따른 사실상 주권이라고 할 수 있다. 업계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 기업은 한국 정부와의 협상 요건 중 하나로 GMP 실사 면제를 내걸었다.

GMP 실사 면제와 관련, 한 전문가는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라면서 “로마법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제약‧바이오‧의료기기 기업들은 제품 수출 시 해당 국가 감독당국의 GMP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 관계자는 “희귀난치성 질환의 경우 수가가 낮으면 일부 사업을 철수 할 수도 있다. GMP 실사 면제는 아니고,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필요한 절차를 효율성 있게 바꿔달라는 요구였을 것”이라면서 “GMP 실사 면제는 의료기기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GMP 실사 등은 한국에 들어온 외국계 기업만 받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제약‧바이오‧의료기기 기업들도 해외에 진출할 시 해당 국가 감독당국의 GMP 심사를 받아야 한다. 관련업계에서는 GMP 인증을 받는 것은 상식이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게다가 한국 식약처의 GMP 인증 절차와 비용 등은 의약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미국의 식품의약국(FDA)이나 유럽의 의약품청(EMA)보다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EU에서는 1000만원이 필요하다면 한국에서는 200만원 정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당국은 해당 기업이 2017년 사업 철수 당시 의료기기에 대한 허가를 취소하고 떠났지만, 식약처는 해당 기업이 공급을 재개하기만 하면 즉시 제품을 받아 각 병원에 팔 수 있도록 허가를 살려뒀다. 고어는 인공혈관 재고부족 문제가 불거진 뒤 인공혈관 20개만 즉시 공급했지만, 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해당 인공혈관의 수가는 약 40만원이다. 미국에서는 약 80만원, 중국에서는 130여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한국의 의료 수가가 낮다고 할 수 있으나, 이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인공혈관을 사용해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소아들이 기다리는 등 사태가 심각해진 것을 활용해 한국 주권인 GMP 실사 등을 면제 받기를 요구하는 것은 정도가 과하다고 볼 수 있다.

한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협상 당사자인 보건복지부와 식약처 등은 이 기업과의 협상을 통해 수가를 올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지만 심각한 사태가 불거진 이 기회를 이용, 소아 목숨을 걸고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협상을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의가 의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