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세대 간 설전이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5060 낀 세대’가 조기퇴직으로 제일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면 2030 청년이 취업이 안 돼서 제일 힘들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40대는 부양책임 때문에 제일 힘들다고들 한다.

 

‘5060’ 세대의 항변

우선 자칭 낀 세대라는 ‘5060’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들은 자녀교육비, 부모 부양비 등 위아래로 돈 들어갈 일이 많은데 50세도 안 돼서 퇴직해야 하고, 이후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다는 취지다. 기대여명이 82.7세(2017년 기준)인 점을 고려했을 때, 이들의 여명은 30여년이 남았지만 가진 게 없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평생직장 개념은 이미 날아가고 기술기반 비즈니스 모델들이 선도하는 작금의 세계에서 이들이 근속할 환경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야 할 자녀 결혼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2030’ 세대가 힘든 이유

그렇다면 ‘2030’은 어떤가? 과거보다 생활비는 많이 들고 취업은 어렵다. 소위 일류라는 SKY를 나와도 50%도 안 되는 취업률뿐이다. 그렇다고 과거 세대처럼 무작정 부모에게 손 벌리는 일도 쉽지 않다. 성년이 되면 분가해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이 그렇거니와 자존감이 높아진 탓도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실제로 정규직 취업은 쉽지 않고, 비정규직은 생활비 쓰기도 빠듯하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일부 지원해 준다고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그렇다고 생활비를 주는 것은 아니니까. 더군다나 20대의 거주지 이동이 거의 필연적이라 들어가야 할 돈도 많다.

 

40대의 실상

그렇다면 40대는 어떨까? 이들 역시 자녀 교육비가 지출되고 ‘아직 복지혜택을 못 받는’ 부모를 모셔야 한다. 생애 평균 임금이 가장 높은 세대라고는 하지만 자녀교육비가 좀 많이 드는가? 예전 세대처럼 풀어 놓으면 스스로 크는 요즘 아이들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직장은 어디 만만한가? 치고 올라오는 젊은 세대에 치이고, 상사 눈치를 봐야 하는 낀 입장이 아닌가.

일리 있는 말이다. 더군다나 청년 지원혜택은 최대 39세에 끊기고, 실버 일자리도 50세를 넘어야 가능하니, 각자도생해야 하는 입장이 아닌가. 서울시의 장년 일자리 지원기관도 명칭이 ‘50플러스’ 아닌가? 도대체 40대는 어디다 대고 도움을 요청하란 말인가.

사실 우리가 간과한 세대가 있다. 1997년 IMF 경제위기 때 대학을 졸업한 지금의 40대다. 이들은 지금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빈부격차가 커졌다. 최저임금도 불과 1500원 수준이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90년에는 9.8%의 고도성장을 구가했고, 2인 이상 도시가구 기준 ‘소득 5분위 배율’은 3.72배였다. 그런데 2018년에 4분기에는 5.47배로 나타났다. 소득 최상위 20%의 처분가능소득이 하위 20%의 약 5.5배에 달했다는 의미다. 소득 5분위 배율은 최상위 20%의 평균 소득을 최하위 20%의 평균 소득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이들이 바로 40대다. 이들은 이후 좀 나아질 듯싶다가도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두 번을 더 두들겨 맞았다. 한두 번이면 기력이라도 남아서 재도전해볼 텐데 세 번을 연달아 맞으면 누구라도 포기하게 된다. 신용카드 빅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소상공업 200여 업종 중 132개 업종에서 40대가 가장 많이 지출한다. 어느 세대보다 지출이 많은 세대다. 어쩌면 지금의 40대가 낀 세대일지 모른다.

‘5060’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단군 이래 최고 호황기에 청춘을 보냈고 저축만 해도 이자가 많았으며, 부동산은 사면 무조건 오르던 세대 아닌가? ‘2030’은 또 어떤가? 정말 일자리가 없어서 취업을 못하는가? 혹시 일을 고르고 성격이 까칠해져서 배척당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듯 세대마다 할 말이 무척 많다. 어디 세대뿐인가? 남녀, 장애인, 탈북자, 다문화 등 집단 간 이해관계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모두의 입장은 일리 있는 말이다. 예전에 장년 일자리를 위한 교육기관에 갔다가 교육담당 연구원이 한 말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다.

40대 : “내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니까 잘 좀 돌봐 달라.”

50대 : “이제 갓 퇴직한 사람이라 세상 물정을 모르니 잘 지도해 달라.”

60대 :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으니 잘 좀 지원해 달라.”

70대 :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피우게 해 달라.”

세대가 다르다고 이유가 없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고 아무리 대들어봐야 나올 수 있는 것은 뻔하다. 정부는 약간의 훈련비를 지원해 줄 것이고, 나이 들면 죽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복지비용을 줄 것이다. 안 되는 걸 들춰내봐야 서로의 간격만 벌어질 뿐이고 그럴수록 사회는 혼란해지고 경제는 더욱 악화될 뿐이다.

나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으며 오직 나 자신만이 질 수 있다. 나는 오늘 어떻게 해야 여생을 남의 도움 없이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공격의 나팔을 안으로 돌려보자. 바로 거기에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