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펄어비스와 CCP 게임즈의 인수 시너지에 관심이 모인다. 펄어비스는 지난 2018년 9월 CCP 게임즈의 지분 100%를 인수하며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펄어비스가 CCP에 지급하는 확정 액수만 약 2500억원 수준에, CCP의 향후 성과에 따라 지불해야하는 금액이 약 4500억원까지 늘어나는 큰 계약인 데다가, ‘검은사막’ 단일 IP로 비약적 성장을 이룬 펄어비스가 진행한 M&A(인수합병) 행보였기 때문에 시장의 관심은 더욱 컸다. 

CCP는 1997년 아이슬란드에 설립한 글로벌 게임회사로 직원 수는 약 270명이며, 2003년 출시한 SF MMORPG ‘이브 온라인’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브 온라인은 16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펄어비스에 ‘검은사막’이 있다면 CCP엔 ‘이브’가 있는 셈이다. 펄어비스가 이 회사를 인수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펄어비스와 CCP게임즈는 7일 미디어토크 행사를 열고 양사가 함께 하게 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펄어비스의 정경인 대표, 함영철 전략기획실 실장과 CCP게임즈의 힐마 베이가 패터슨 대표가 참석했다.

▲ 펄어비스와 CCP 게임즈의 미디어 토크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CCP게임즈 힐마 베이가 패터슨 대표, 펄어비스 정경인 대표, 펄어비스 전략기획실 함영철 실장.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힐마 대표는 지난 2016년 검은사막을 접하며 펄어비스를 알게 됐다. 다음해인 2017년 12월엔 정경인 대표와 전화통화가 성사됐고 2018년 GDC에서 정 대표를 처음으로 만났다. 두 대표는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고 양사가 추구하는 바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판단을 내렸다. 양사는 MMO 게임 개발에 대한 열정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경인 대표는 이날 “펄어비스는 글로벌 메이저 게임회사가 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면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검은사막 같은 IP의 지속적 확보가 필수적이다. 자사가 새로운 IP를 만드는 것도 노력하겠지만, 이미 성장한 회사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CCP 인수 이유를 설명했다. CCP가 가지고 있는 유력 IP인 이브의 가능성을 높게 점친 것이다. 

힐마 대표는 “개인적으로 한국 게임산업에 관심이 많아 예전부터 관찰해왔다”면서 “한국 기업들과 튼튼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오고 싶었으며, 그중에서도 펄어비스는 MMORPG 개발에 대한 열정이 상당한 점이 우리 회사와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수 시너지? “아직 몇 개월 안 돼서…”

▲ 펄어비스 정경인 대표 모습.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그러나 인수 후 약 반년이 지난 현재, 양사의 인수 시너지에 대한 부분은 아직 미미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금 시점에서 양사가 언급하는 시너지 효과는 우선, 각 회사가 주력하고 있는 지역 노하우에 대한 공유가 있다. 정경인 대표는 검은사막을 글로벌 서비스하는 입장에서 CCP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 대표는 펄어비스의 경우 CCP가 아시아 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걸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사가 함께 워크숍을 열거나 사내 메신저를 같이 사용하는 점도 양사의 협업으로 볼 수 있다. 힐마 베이가 패터슨 대표는 “수개월 동안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하며 서로의 성공 사례를 주고받았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면서도 "아직은 양사의 협업이 지식을 공유하는 수준이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장에서 양사의 노하우를 주고받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협업은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에 펄어비스 정경인 대표는 “인수한 지 아직 몇 개월이 되지 않아 지금 단계에서 공개할 만한 건 없다”면서 “향후 계획이 나오는 데로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행사의 성격도 양사의 향후 시너지나 사업 계획 발표보다는 CCP게임즈의 이브온라인을 소개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양사의 시너지는 CCP의 모바일 게임이 국내외 서비스를 본격화 할 때 가시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펄어비스는 검은사막 모바일 서비스에서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브 온라인 최고!” 국내 서비스 문제? “일단 한글화부터…”

▲ CCP게임즈 힐마 베이가 패터슨 대표 모습.

이날 힐마 대표의 ‘이브 온라인’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은 충분히 드러났다. 그는 “우리는 이브온라인을 하나의 실제 도시로 여기고 플레이어들을 시민으로 여긴다”, “이브 온라인은 그 어떤 게임과도 같지 않다. 이는 다른 개발사가 이브 온라인을 따라잡을 생각도 하지 못한다는 평을 받는 이유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고 전세계 사람들이 하나의 서버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사회성이 강한 게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이런 개성 있는 게임성덕에 이브 온라인은 많은 마니아를 양산했고 장기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국내 서비스 준비에 대해서는 다소 아쉽다는 평이 나온다. 양사에 따르면 이브 온라인은 한글화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올해 안에 한글버전을 국내에 내놓을 예정이다. 기존에도 영어로 게임을 즐길 수는 있었지만, 언어의 장벽이 있고 게임 자체의 진입장벽이 높아 소수의 유저만이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이번 한글화 작업은 이브 온라인에 관심 있는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희소식인 셈이다. 그러나 서비스가 순탄할 것으로만은 보이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브 온라인은 전세계 유저들이 같은 서버에서 게임을 즐기기 때문에 플레이어 간 시차가 발생한다. 다수의 유저가 함께 모여 즐기는 콘텐츠가 핵심인 MMORPG 특성상, 상대적으로 유저 수가 적은 아시아권 게이머들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날 행사장에서도 이런 게임 특성에서 오는 문제점과 서양 지역과 다른 동양 지역 게이머들의 특성을 어떤 식으로 극복할 것인지 등에 대한 지적이 나왔지만, 힐마 대표는 “이브 온라인을 잘하기 위해서는 게임 스토리에 관한 책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라고 다소 질문을 벗어난 답변을 하는 등 아쉬움을 남겼다. 양사는 “아직은 한글화의 완성도에 집중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펄어비스, 차세대 엔진 개발로 한 단계 도약… CCP는 ‘모바일’ 진출에 방점

양사의 협업과 관련해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지만, 각 회사의 계획은 비교적 명확하고 신선한 변화가 감지됐다. 펄어비스는 9년째 사용하고 있는 자사의 자체 게임 엔진인 ‘검은사막 엔진’을 잇는 새로운 게임 엔진을 지난해 여름부터 개발하고 있으며 올해 여름 안에 개발을 완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개발할 게임들은 신규 엔진을 통해 개발하겠다는 방침이다. 

검은사막 엔진은 그간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온라인, 검은사막 모바일, 엑스박스원 버전 검은사막 등을 개발하는 데 사용됐다. 훌륭한 성과를 낸 게임 개발 엔진을 굳이 교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콘솔 버전을 준비하며 해외 트리플A 게임을 만드는 게임사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좀더 발전된 형태의 엔진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설명했다.

펄어비스는 이날 최초로 준비하고 있는 신작 게임인 ‘프로젝트V’의 포스터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 게임은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다. 또 다른 신작 ‘프로젝트K’는 카운터스트라이크의 개발자로 유명한 민 리를 중심으로 개발을 진행 중이다. 

▲ 프로젝트V의 포스터가 공개됐다.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CCP게임즈 측에서는 이브 온라인의 중국 지역 재출시를 앞두고 있다. 다만 아직 판호 발급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발급 신청은 지난해 초에 마쳤다. 이브 IP를 활용한 모바일 게임도 준비 중이다. CCP는 ‘이브 에코스’를 중국 넷이즈와 함께 개발하고 있다. 이는 넷이즈의 주도로 중국 지역 서비스가 펼쳐질 예정이다. 또 다른 이브 IP 모바일 게임 ‘이브 워오브어센션’은 올해 출시할 예정이다. MMORPG로 알려진 ‘이브 노바’도 개발 중이지만 게임과 출시 일정 등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 CCP게임즈 라인업. 위에 줄은 출시된 게임, 아랫줄은 출시 예정 게임.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