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호황 가도를 달리고 있는 벤처캐피탈 업계 이면에는 긴장의 모습도 역력하다. 투자 환경이 제도 변화와 맞물리면서 각 VC들은 상장 등 자금조달 관련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업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인 만큼 ‘인력 전쟁’도 불가피한 것으로 관측된다. 그만큼 VC 판도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해석이다. 승기를 잡기 위한 VC들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VC(벤처캐피탈)의 투자 규모는 3조424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014년(1조6091억원) 대비 두 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VC투자는 크게 고유계정과 조합으로 나뉜다. 고유계정은 VC가 자기자본을 활용하는 방식이며 조합은 LP(유한책임사원)와 함께 투자를 집행한다.

고유계정 투자는 2014년 346억원에서 2015년 613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2016년 560억원, 2017년 409억원으로 점차 감소했다. 지난해는 469억원으로 재차 늘었다.

VC업계는 향후 고유계정을 통한 투자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 정책 등 벤처투자를 둘러싼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익성 제고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자기자본을 태우는 만큼 투자 위험도 높지만 ‘모험 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VC의 진면목은 고유계정 투자를 통해 드러난다.

이에 대해 시장은 긍정적 평가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고유계정을 적극 활용하는 곳은 미래에셋벤처투자다. 최근 기업공개(IPO)를 위한 수요예측에서 44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해 흥행에 성공했다. 공모가는 희망밴드(3700~4500원) 최상단인 4500원으로 결정됐다.

통상 VC가 운용하는 투자조합(LP출자)이 있다면 고유계정 투자는 확대하지 않는다. LP와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량기업은 고유계정으로 투자하고 위험기업은 조합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다.

미래에셋벤처투자는 상장 후에도 고유계정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아울러 LP와의 이해상충 문제 방지를 위해 ‘LP사전동의’, ‘LP출자 펀드 수익률 제고’ 노력도 지속할 방침이다. 지난해 미래에셋벤처투자의 고유계정 투자규모는 40억원으로 총 23곳에 투자했다. 이번 IPO를 통해 조달하는 자금(200억원)의 대부분이 고유계정 투자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벤처투자의 수요예측 흥행으로 VC들의 추가 상장 러시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주목을 받는 곳은 KTB네트워크와 네오플럭스다. 그러나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VC관계자는 “KTB네트워크와 네오플럭스는 조합형태 투자가 주를 이룬다”며 “투자자 입장에선 고유계정 투자보다 덜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합형태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낮은 밸류를 받을 수 있는 요인”이라며 “상장을 앞둔 VC들이 가장 꺼리는 부분은 ‘저평가’”라고 진단했다.

지난 1월 말 기준 KTB네트웍스의 운용자산(AUM: VC부문) 규모는 8435억원으로 국내 VC 중 3위다. 네오플럭스는 4570억원으로 13위에 랭크됐다. 미래에셋벤처투자는 3388억원으로 20위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미래에셋벤처투자가 상장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벤처캐피탈 업계는 경쟁심화 등으로 상장을 위한 비우호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미래에셋벤처투자가 IPO를 강행한 이유는 신규 투자재원 확보다. VC투자 건당 규모가 확대되고 심지어 글로벌 시장에서는 1조원에 달하는 딜(Deal)도 속속 나오고 있다. 결국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격이다.

반면, 고유계정 투자가 활발하지 않고 운용자산 규모가 큰 곳은 상장을 서두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선제적 조달’과 정부 정책 등을 고려하면 VC의 IPO 러시를 배제하긴 어렵다.

BDC 참여 안도… 인력 이탈은 우려

지난 3월 6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2벤처 붐 확산 전략’을 내놨다. 벤처·창업을 혁신 성장의 과제로 정해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상장 VC들의 주가는 일제히 급등했다. 지난해 상장된 이후 줄곧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였던 린드먼아시아, SV인베스트먼트, 아주IB투자 등도 강한 반등에 나섰다.

최근 VC들의 주가를 짓누른 요인 중 하나로는 비상장기업투자전문회사(BDC) 제도 도입이 꼽힌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회사만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VC들이 소외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특히 비상장사 투자에 전문성을 가진 벤처캐피탈을 제외한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도 거론됐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정부 발표 내용에는 VC가 BDC에 운영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담겼다. VC들은 창투조합, 신기술조합 등에 준하는 요건으로 투자하면 세제혜택을 받는다. 다만, 펀드의 40% 이상을 창업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당국은 향후 BDC 민간TF를 운영해 최종 제도 운영 방안을 확정하고 상반기 내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 발표할 계획이다.

BDC의 핵심은 투자대상을 정하지 않고 공모나 거래소 상장 후 비상장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자금조달 통로가 확대된다는 점에서 VC들의 LP의존도가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BDC는 스펙(SPAC)과 유사하지만 비상장기업의 M&A가 아닌 자금공급과 경영지원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가 목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VC가 BDC운용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업계는 숨을 돌릴 것으로 전망된다. 경쟁심화로 LP로부터 자금유치가 어려워진 부분도 일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한 VC 대표는 “BDC운용에 VC가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라면서도 “LP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심사역의 독립 등 인력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규모와 업력을 떠나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지만 문제는 임금”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VC업계에서는 심사역 부족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당국 주도의 긍정적 변화가 심사역들의 몸값을 급격히 높일 수 있다는 우려다. VC 전반 관리·성과보수 비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는 만큼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VC 호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핵심 키워드 ‘글로벌·성장’, 판 커지는 VC

올해 1월 말 기준 국내 VC 투자심사역은 총 1042명으로 전년 동기(949명) 대비 93명 늘었다. 약 10%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총 운용자산 규모는 2조3563억원에서 3조4249억원으로 약 45% 확대됐다. 단일 딜(Deal) 규모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인력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기간 동안 신규 등록된 VC만도 16곳이다.

VC별로 보면 한국벤처투자는 14명의 심사역을 충원했다. 미래에셋벤처투자(6명), 스톤브릿지벤처스(6명), KB인베스트먼트(5명) 등도 추가 인력을 확보했다. 반면, 소프트뱅크벤처스는 4명이 감소했다. 지난해 상장한 SV인베스트먼트도 2명이 줄었다. 인력 충원과 이탈은 LP들이 주시하는 사안으로 향후 각 VC별 투자규모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편, 각 VC들은 다양한 환경 변화들을 인식하고 일부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이승훈 전 모건스탠리 상무이사를 영입했다. 이 상무는 모건스탠리 홍콩, 서울사무소 등에서 15년 이상 근무하며 주요 기업들의 M&A와 상장업무를 담당했다. 해외펀드와 국내외 LP 관리 업무를 전담하며 각국에 위치한 소프트뱅크벤처스 해외사무소 재무 업무도 총괄한다. VC 해외진출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글로벌 시장을 향한 판단으로 보인다.

스톤브릿지벤처스는 ‘스톤브릿지 한국형 유니콘 투자조합’의 세컨클로징을 추진한다. 펀드 규모를 10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성장 단계에 들어선 기업에 자금공급을 목표로 한다. 기업가치 1조원, 즉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그간 스톤브릿지벤처스는 창업 초기 기업 투자에 주력했다. 이번 펀드는 투자 영역을 ‘성장’으로 넓힌다는 의미다. 이미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 옐로모바일, 크래프톤(옛 블루홀), 펄어비스 등 다수 스타기업에 투자한 이력이 있어 시장의 기대도 크다.

SV인베스트먼트는 PE투자본부 인력 재구성에 나서 임원급 심사역을 중심으로 인력 확충에 나섰다. 대형 벤처캐피탈을 중심으로 PF 투자 확대 추세에 대응하려는 목적도 포함돼 있다.

KB인베스트먼트는 올해 첫 투자처로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을 점찍었다. 바이오 부문 글로벌 투자에 힘써왔던 만큼 그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경쟁력도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VC관계자는 “아웃바운드에 치중돼 있는 투자 스타일을 인바운드와 균형을 맞추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결국 초기에는 인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VC 성장을 위해서는 심사역의 투자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며 “인력의 무분별한 이동 또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