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뜻의 이 고사성어는 아무리 막강한 권세와 부귀영화도 오래 가지 못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재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이 고사성어는 애플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애플은 2007년 최초의 아이폰을 출시한 후 10년 동안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군림했으나 지금은 5G와 트리플 카메라, 폴더블 등 거의 모든 트렌드 경쟁에서 탈락하고 있다.

애플이 주춤하는 사이 삼성전자를 위시한 새로운 강자들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 사업자인 삼성전자도 최근 어려움에 직면했으나 여전한 기술 선도 본능을 보여주고 있으며, LG전자도 몸을 잔뜩 낮춘 상태에서 일발역전을 꿈꾸고 있다. 여기에 화웨이와 샤오미 등 중국 제조사들의 존재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 폴더블과 5G 등 스마트폰 역사를 새롭게 규정하는 다양한 이정표들이 올해 상반기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시장은 새로운 전장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흐름에서 길을 찾아라”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역성장에 돌입한 배경을 세밀하게 분석하면, 중저가 라인업의 존재감 확보와 프리미엄 라인업의 쇠퇴라는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제조사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스마트폰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심지어 교체 주기도 길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사들은 기본적인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으려 조금씩 중저가 라인업의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중저가 라인업의 마진이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사실상 수익을 거두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제조사들은 마진이 높은 프리미엄 라인업을 포기할 수 없는 패턴이 반복된다.

제조사 입장에서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매출 비중이 높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만, 시장은 가성비가 좋은 중저가 라인업을 택하는 추세가 이어지며 선택은 두 개로 압축된다. 아예 중저가 라인업에만 집중해 새로운 꿈을 꾸거나, 중저가 라인업과 프리미엄 라인업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전자의 대표주자는 샤오미다. 샤오미는 퀄컴 스냅드래곤 상위 모델을 차용하고 베젤리스를 비롯한 기본적인 폼팩터를 사실상 프리미엄 라인업에 맞추면서도 중저가 시장에만 집중하고 있다. 왕 시앙 샤오미 부사장은 MWC 2019에서 “우리의 저가 정책은 계속된다”면서 “5G 스마트폰도 수익률 5%에 맞추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레이쥔 회장은 아예 “순이익률이 5%를 넘으면 고객에게 차액을 돌려줄 것”이라는 폭탄선언을 하기도 했다.

샤오미가 우직할 정도로 가성비에 방점을 찍는 이유는 스마트폰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최대한 배포해 샤오미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것에 있다. 현재 샤오미는 안드로이드를 자체적으로 커스터마이징한 미유아이라는 독자 운영체제를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스마트폰은 물론 다양한 기기의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연결하고 있다. 미유아이가 깔린 샤오미 스마트폰과 샤오미 공기청정기가 일반 가정에서 사용될수록 관련 데이터는 샤오미로 집중되고, 샤오미는 이를 바탕으로 모바일 시대를 넘어 초연결 플랫폼 전략을 그리는 셈이다.

후자의 경우 삼성전자가 대표주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중저가 라인업 갤럭시A7에 최초로 트리플 카메라를 탑재하는 등, 프리미엄과 중저가의 경계를 조금씩 무너트리고 있다. 프리미엄과 중저가 스마트폰을 모두 판매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샤오미 방식과 비슷한 전략은 생활가전의 영역으로 번진다. 인공지능 빅스비를 두뇌로, 타이젠을 심장으로 삼아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초연결 생태계를 삼성전자가 보유한 생활가전 오프라인 기기로 연결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제작하고 반도체를 만들며, 생활가전 사업도 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세계를 돌며 인공지능 거점 확보에 나서는 한편 유명 석학들을 연이어 영입한 상태다. 하드웨어의 강점을 살려 ‘그릇’을 채울 소프트웨어라는 ‘음식’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샤오미와 삼성전자의 전략은 큰 틀에서 보면 일맥상통한다. 결국 스마트폰의 폼팩터 경쟁이 치열해지며 폴더블 스마트폰까지 이른 가운데, 프리미엄 라인업은 최신식 사용자 경험으로 기술을 선도하고 중저가 라인업은 소프트웨어를 담고 연결하는 일상의 플랫폼이 되는 전략이다. 이러한 로드맵은 당연히 방대한 고속도로의 등장인 5G 상용화로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 디자인 대체
▲ 디자인 대체

문제는 생존 확률… 누가 이길까

글로벌 운영체제 시장은 안드로이드와 iOS로 나눠졌으나, 모바일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과 클라우드의 시대가 오면 새로운 플레이어도 견고한 ‘이강체제’의 균열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인공지능을 운영체제처럼 사용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아마존 알렉사도 추후 눈여겨볼 관전 포인트다. 운영체제 시장의 패권 경쟁이 새롭게 시작된 이유다.

각 제조사들도 비슷한 꿈을 꾸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이 가진 그릇을 통해 새로운 소프트웨어 정체성을 담아내는 한편, 그 자체로 자기만의 제국 건설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결국 시장의 선택은 안드로이드와 iOS처럼 많아야 3개 수준의 운영체제로 결판날 가능성이 높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하드웨어 폼팩터 경쟁 등을 동원해 끝까지 생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ICT 플랫폼 랩의 안영구 부소장은 “이제는 제조사들도 자체 운영체제에서 비롯된 다양한 꿈을 꾸는 시대가 오고 있다”면서 “폴더블 등 하드웨어 폼팩터의 변화와 5G로 대표되는 네트워크 혁명이 올해 상반기에 벌어지는 상황에서 애플이 한 발 물러난 점이 중요하다. 올해 상반기가 향후 스마트홈, 스마트시티의 패권 향배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