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대한 전원합의체판결을 통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지만, 근로자들이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이 발생하여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경우에는 정의와 형평관념에 비추어 ‘신의칙’에 위배되므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의 판시를 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판결 참조). 통상임금은 연장·야간근로 수당 등 법정수당의 산정 근거가 되는 까닭에 근로자 측의 통상임금 청구를 법원이 받아줄지 여부는 노사 양측에 매우 민감하고도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법원은 ‘신의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따라 근로자들이 이를 청구할 수 있을지 여부가 달라진다는 모호한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통상임금 청구와 관련한 하급심 판결은 일대 혼란에 빠져 들었습니다.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고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하여야 하며, 이는 형평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의 ‘신의칙’은 하급심 재판부가 일관성 있고 통일성 있는 재판을 함에 있어 아무런 실제적 도움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달 14일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던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기사 22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청구 사건’은 선고 전부터 꽤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 소송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이 내려진 사건과 유사하게 근로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노사 간 단체협약에서 정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므로 이에 따라 연장근로수당을 다시 계산해 차액만큼 추가 지급할 것’을 청구하였고, 회사는 이러한 근로자들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됨을 항변해 이번에야말로 대법원이 통상임금 청구 소송과 관련해 ‘신의칙’을 적용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법원은 ‘신의칙’ 적용에 관한 기존 대법원의 입장만 고수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우에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습니다. 다만, 지난 판결과 달라진 점은 “근로자들의 주장이 신의칙 위반에 해당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며 근로자들에게 다소 우호적인 코멘트를 덧붙였다는 것뿐입니다(대법원 2019. 2. 14. 판결 2015다217287 판결 참조).

대법원이 언제쯤 ‘신의칙’ 적용과 관련한 기준을 판결을 통해 제시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번 판결로 당분간 대법원 이하 하급심은 통상임금 청구 소송에 있어 회사 측의 ‘신의칙’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실제로 이번 판결이 있은 후 불과 1주일 만에 선고된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항소심 소송에서도 법원은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도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기아자동차의 당기순이익, 매출액, 동원 가능한 자금의 규모, 보유하는 현금과 금융상품의 정도, 기업의 계속성과 수익성에 비추어 볼 때 근로자들의 임금 추가 지급 요구로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하여 지난 14일 통상임금 청구 소송과 관련한 대법원의 입장을 그대로 답습한 바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9. 2. 22. 선고 2017나28858 판결 참조).

현재 각급 법원에 계류 중인 통상임금 청구 관련 소송은 1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중에는 기아자동차, 아시아나 항공, 현대중공업 등 사건의 승패가 우리 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기업 사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사건까지도 대법원은 통상임금 청구 소송에서 ‘신의칙’을 적용할지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만큼 이것이 이들 소송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