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가 26일 삼성전자 경기 화성 반도체 사업장과 수원 5G 사업장에서 만나는 장면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부회장과 알 나흐얀 왕세제는 지난 11일 아부다비에서 만난 후 2주 만에 다시 회동, 반도체 사업을 중심으로 협력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회동이 UAE가 대주주인 글로벌 파운드리(GF)의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삼성전자 GF 인수?
삼성전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1위 사업자지만, 최근 업황 악화 우려가 번지며 플랜B를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반도체 매출은 18조7500억원, 영업이익은 7조7700억원을 기록해 전 분기 대비 각각 43%, 24% 폭락했다.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은 준수하지만 4분기에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둔화의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위기는 연속으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현실이 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최근 정치적인 이유로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불화수소(불산 플루오르화수소)' 등 핵심 물자의 한국 수출 금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플랜B는 파운드리가 유력하다. 삼성전자는 2005년 파운드리 사업을 처음 시작해 2009년 로직 공정 연구소를 신설하고 2012년 미국 오스틴 S2 라인 가동으로 파운드리 생산을 크게 확대했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14나노 핀펫, 2016년에는 10나노 핀펫으로 진격했고 2017년 10나노를 거쳐 지난해 2월 7나노 공정시대를 선언했다. 그 여세를 몰아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한 후 일종의 전격전을 펼치겠다는 각오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장 정은승 사장은 지난해 12월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반도체소자학회(IEDM, International Electronic Devices Meeting)'에 참석해 '4차 산업혁명과 파운드리 (4th Industrial Revolution and Foundry: Challenges and Opportunities)'를 주제로 기조 연설에서 GAA(Gate-All-Around) 트랜지스터 구조를 적용한 3나노 공정 등 삼성전자의 최근 연구 성과를 공개하는 등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한 바 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전략은 일부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기준 대만의 TSMC가 여전히 50.8%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으나 삼성전자는 14.9%로 단숨에 2위 자리를 꿰찼다. GF가 8.4%로 3위, UMC가 7.5%로 4위, SMIC가 5.1%로 5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속도를 내고 있으나, TSMC와의 격차가 여전한 점은 문제다. 디지타임즈, 테크스팟 등 외신에 따르면 글로벌 파운드리의 강자 TSMC는 3월말 7나노 EUV 노광장비를 사용한 칩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테크스팟은 "TSMC는 첨단 제조 공정에 대한 혁신 목표를 명확한 궤도에 올렸다"면서 "7나노 EUV에 이어 5나노, 3나노의 명확한 로드맵을 설정했다"고 보도했다. 올해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생산하는 EUV 노광장비 30대 중 무려 18대를 확보했다는 말도 나왔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실력을 키우고 있으나 아직 시장의 과반을 가진 TSMC와 맞대결을 펼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한 방은 인수합병이다. 자연스럽게 GF가 부상하고 있다.

GF는 지난해 7나노 공정을 포기하며 사실상 신기술 경쟁에서 탈락했다. 그 연장선에서 GF가 매물로 나와 눈길을 끈다. 실제로 GF의 최대주주인 UAE의 국영기업인 ATIC는 GF를 2018년 상반기까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2위 사업자로 키우는데 성공했으나, 최근 심각하게 지분 매각을 고민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다.

IT매체 테크익스트림은 지난 14일 “ATIC는 GF를 통해 다양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으나 최근 기류가 변했다”면서 “GF는 수익성이 떨어졌고, ATIC는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GF가 싱가포르에 소재한 200나노 팹 생산이 가능한 팹3E를 2억3600만달러에 대만의 뱅가드인터내셔널세미컨덕터(VIS)에 매각한 것도 사실상 ATIC의 ‘엑시트 전략’이라는 말이 나온다.

GF가 매물로 나온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과 알 나흐얀 왕세제가 2주 연속 만남을 가진 이유에 시선이 집중된다. GF 지분을 정리하고 싶어하는 알 냐흐얀 왕세제와 파운드리 역량을 키우려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도가 서로 일치하기 때문에, 이번 회담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GF 인수합병이 타진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인수합병을 통해 강력한 경영 드라이브를 걸었던 사례도 조명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주도로 2014년 스마트싱스와 미국의 공조회사 콰이어드사이드, 서버용 SSD 소프트업체인 프록시멀데이터를 인수했고 이후 심프레스, 루프페이, 조이언트, 비브랩스, 하만 등을 연이어 품었다. 강력한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 장악력을 키우는 한편 글로벌 전략을 전개했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어 삼성전자의 인수합병 전략은 멈췄으나, 지난해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며 빅딜 가능성은 다시 커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인공지능 석학을 영입하는 한편 거점 인프라 구축에 시동을 걸며 대형 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GF를 인수하면 단숨에 20% 중반의 점유율을 확보, TSMC와 대적할 체력을 만들 수 있다. 100조원에 육박하는 삼성전자의 현금 보유고도 이러한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일각에서는 중국 SMIC도 GF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본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에 따라 중국 기업의 GF 인수 가능성은 현실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SK하이닉스도 한 칼 있다
알 나흐얀 왕세제는 삼성전자는 물론 SK하이닉스에도 면담 요청을 한 것으로 26일 확인된다.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 영역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으며, 역시 파운드리 사업부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플랜B가 필요하기 때문에, GF 인수는 가능한 시나리오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 2016년 11월 UAE를 방문해 현지 국부펀드인 MDP와 석유회사 MP 최고경영진 등을 만나는 등 중동 스킨십에 나선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재계에서는 오히려 SK와 UAE를 비롯한 중동의 연결고리가 강하다는 반증으로도 보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SK하이닉스의 GP 인수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카드라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