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리 마티스가 병상에 누워 가위로 색종이를 자르는 모습. 마티스는 이 작업을 "가위로 그림 그리기"라고 불렀다. 출처=소더비 홈페이지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그동안 학자들은 ‘블루존’(장수마을)을 연구하여 100세 장수법을 내놓았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규칙적 운동, 단란한 가족, 금연·금주, 낙천적 성격, 지중해식 식이요법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 110세 이상 생존한 수퍼센티네리언(supercentenarian)들의 장수 비법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잔 루이즈 칼망 할머니는 1875년 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나 122세를 살았다. 어린 시절 ‘에펠탑’이라는 볼썽 사나운 철골구조물이 파리 한복판에 건축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포목점에 ‘빈센트 반 고흐’라는 꾀죄죄하고 괴팍한 미술가가 드나들었던 것도 기억한다.

그녀가 90세 때 동네 변호사와 체결한 부동산매매계약은 유명하다. 당시 할머니에게는 남편도, 후손도 없었다. 이를 간파한 40대 변호사는 “할머니가 죽는 날까지 매월 50만원씩 지급할테니 사후에 부동산 소유권을 넘겨달라”고 제안했다. 그런데, 계약체결 후 할머니는 32년을 더 살았다. 변호사가 사망하고도 2년 더 생존했다. 그 결과 변호사와 그 유족은 할머니에게 부동산 가치의 2배 이상을 지불해야 했다. 칼망 할머니는 기네스북 공식 세계 최장수 노인이었다.

칼망 할머니가 밝힌 생활 습관은 와인, 초콜릿 그리고 하루 두 개비 담배였다. 할머니는 20세때부터 117세까지 97년간 흡연했다. 90세가 넘어서도 자전거를 탔지만, 열심히 운동한 것은 아니었다.

네덜란드의 헨드리케 반 안델 시퍼 할머니는 116세까지 생존했다. 112세때 실시한 종합인지검사에서 70대 노인의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정도로 정정했다. 할머니가 밝힌 장수비결은 술과 청어회, 하루 한잔의 오렌지 주스였다. 할머니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채식을 하거나 식사량 조절을 한 적도 없었다. 노화방지 약도 챙겨먹은 일이 없다. 117세를 기록한 이탈리아 엠마 모라노는 날계란과 브랜디를 추천했다. 116세로 미국 내 최고령자였던 수잔나 무샤트 존스는 매일 기름진 베이컨 네 조각 이상을 먹었다.

미국의 저명한 노인정신의학 전문의 마크 아그로닌 박사는 신간 <노인은 없다>(한스미디어)에서 “장수를 보장하는 확실한 비책이나 타고난 유전성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장수에만 신경쓰지 말고 나이 듦에 따라 생기는 지혜, 회복탄력성, 창의성을 잘 챙기라”고 조언한다.

그에 의하면, 노년에는 전에 없던 통찰력이 생긴다. 젊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꺼려했던 방식을 새롭게 탐색할 수 있게 된다. 잠재되어 있는 다양한 해법을 모색하는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가 창조성의 핵심인데, 이런 확산적 사고는 노년에 더욱 강화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책에는 노년 창조성의 대표적 사례로 20세기 야수파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가 소개된다. 마티스는 말년에 병환으로 붓 작업이 불가능해지자 컷아웃(cutout) 방식의 창의적 화풍을 개발했다. 채색된 종이를 가위로 오린 뒤 조수에게 지시해 캔버스에 배치하도록 했다. 병상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린 마티스는 나이 듦의 가치를 이렇게 표현했다. “젊었을 때에도 지금과 같은 작업을 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그때는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