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 레인컴퍼니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기자에게는 배우 정지훈 보다는 가수 비(Rain)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대중을 사로잡으며 당대의 아이돌이었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연기에 도전하면서 음악과 연기를 병행하는 엔터테이너로 거듭났고 그의 행보는 우리나라에서 멈추지 않고 세계 최대 영화 시장인 헐리웃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는 ‘월드스타’가 됐다. 그런 그가 <알투비:리턴투베이스>(2012) 이후 약 7년 만에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으로관객들을 다시 찾아왔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해 약 20년을 버티고 견뎌 가요계와 영화계에 자신만의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이지만 “아직도 전 멀었어요”라면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그를 위해 배워야 할 것들도 많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과연 그가 앞으로 더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배우 정지훈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다. 

<자전차왕 엄복동>으로 7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소감은?

<자전차왕 엄복동>의 크랭크인은 지난해 3월 시작됐고요, 9월까지 약 7개월 동안 작업했습니다. 음...뭐랄까 조금 평범한 대답 같겠지만 힘들면서도 재미있었던 작업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영화로 우리나라의 관객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작업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정말, 열심히 자전거 탔습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촬영하는 작업이 매우 힘들었다는데.

몸을 만들면서 영화를 찍는 것은 자신이 있었어요. 조금 많이 지난 예전이긴 하지만 <닌자 어쌔신>을 찍을 때도 경험해 본 적이 있고요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운동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면서 하는 촬영 작업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완전한 오산이었습니다. 완벽한 ‘자전차 선수’가 되기 위해 실제 사이클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습니다. 아침 8시에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서 오후 6시까지 계속 탔어요. 이게 자전거라는 게 운동이나 여행을 목적으로 몇 시간씩 타는 거랑 계속 트랙을 도는 거랑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몸을 쓰는 작업이 자신 있는 저임에도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사이클 선수 분들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에요. 거기다가 저는 주연배우로서 연기도 해야 하니 자전거를 타면서 정신을 놓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대본을 거의 끼고 살았던 것 같아요. 주인공인 엄복동 선수의 극중 감정선을 수시로 체크하기 위해서 이기도 했고 연기의 집중력을 잊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죠. 아, 정말 열심히 했어요~ 

▲ ㅇ여화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주인공 엄복동 역을 맡은 배우 정지훈. 출처=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인물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집안 어르신들을 찾아갔다는데

엄복동 선생님에 대한 기록은 일제 강점기에 열린 자전차 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하셨다는 것 말고는 정확하게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았어요, 가공의 인물이라면 대략적으로 당시의 시대상혹은 비슷한 활동을 한 인물들을 찾아보고 캐릭터 연구를 하면 되는데 엄복동 선생님은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준비를 할 수도 없었구요. 그래서 선생님을 기억할 만한 연배의 집안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역사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선생님은 당시에 ‘국민적 영웅’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패배 의식에 젖어있는 조선인들에게 그야말로 한줄기 희망이셨던 거죠. 지금으로 따지면 박지성 선수나 손흥민 선수 정도 혹은 IMF시대의 박찬호 선수, 박세리 선수 정도이거나 어쩌면 그 이상이셨달까요. 그래서 그 분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선사했던 희망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 외로 극중 엄복동 선수에 대한 디테일은 저희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에 찍은 사진들을 보고 연구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 당시 서민들의 옷차림새나 구김살, 하얀 옷이 더렵혀져 있는 정도 그리고 당시의 물지게꾼들이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했던 습관 등등을 나름대로 최대한 자세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언론시사에서 영화를 처음 접하고 어땠는지, 노력한 흔적들이 많이 나왔는지.

시사회에서 영화의 스토리를 봤다기보다는 제가 주연배우에 맡는 역할을 해냈는가 그거 하나만 봤어요. 솔직히 이런 저런 행사 때문에 경황이 없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기도 했고요.그럼에도 확실히 스스로도 “참 열심히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집이 되지 않은 영상을 봤을 때에는 중요한 장면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에서는 더 재미있게 표현되거나 더 의미가 부여된 장면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연기는 뭐 아직도 많은 면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배우 이범수 씨를 많이 이해하게 됐다고.  

예전부터 워낙 범수 형의 팬이었고요 어린 시절 형의 연기를 보면서 자랐고요. 그런 형이 영화 제작자가 되고 저는 그 영화의 주연배우가 되니 느낌이 조금 묘하더라고요. 물론 범수 형은 저한테 어떤 것들이 힘들다 고민이다 이런 것을 잘 이야기하는 분은 아닌데요. 이번 영화 촬영에서 형이 얼마나 고민이 많은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범수 형은 연기에서 원래 극도의 디테일을 추구하는 분이에요. 이번에는 영화에 직접 출연하고 제작자로도 이름을 올렸으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요, 아마도 저도 지금 후배들의 음반을 제작하는 일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나 합니다. 

음악과 연기를 병행한다는 것이 버겁지는 않은지 

물론 이런 생각은 합니다. 언젠가는 둘 중 한 가지를 놓아야 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요. 그런데 저는 음악으로도 연기도로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이 아직은 버겁다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우선 연기로는 18살에 데뷔해 38살이 되기까지 약 20년 동안 연예계에 있었지만 제가 올곧게 연기만을 한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연차에 비해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못했고요. 누군가 저에게 제 스스로의 연기 역량에 대해 가끔 물으시는 때가 있는데요. 저는 역량이 어떻다라고 스스로를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이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 사진제공= 레인컴퍼니

음악으로는 그래요. 제가 한참 가수로 활동하던 시기의 팬들은 이제 30대 이상이나 혹은 4,50대가 되었거든요. 제가 하고자 하는 음악은 지금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이끄는 10대나 20대의 감성과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요. 그래서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해서 연기도 발전시키고 싶고요, 또 가능하면 예전의 제 팬들과 현재의 젊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음악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어린 친구들과 자주 소통한다고. 

요즘 부쩍 관심이 생긴 것이 어린 제작자들이 찍는 단편영화하고 클럽 음악이에요. 제가 연기를 처음 접했을 때랑 지금은 영상 콘텐츠의 제작이나 유통 환경이 많이 바뀌었죠. 순환도 소비도 더 빨라졌고요. 또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나이도 어려졌고요. 그래서 저는 단편영화를 찍는 학생들이나 젊은 아티스트들을 개인적으로 꽤 자주 만나요. 그들과 자꾸 대화하면서 저도 연기와 콘텐츠에 대한 최신의 트렌드를 배우는 거죠. 음악도 마찬가지에요. 요즘 시간이 날 때면 홍대의 클럽에 갈 때가 있는데요. 최근 그 동네에서는 어린 친구들이 직접 만든 음악들이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클럽에서 음악을 듣고 그 자리에 모이는 젊은 작곡가들을 자주 만나요. 조언도 듣고, 의견도 공유하고 혹은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끝으로 대중들에게 어떤 가수 혹은 배우로 기억에 남고 싶은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렸을 때에는 “비가 내리는 날에는 사람들이 저를 떠올렸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나네요. 뭐 지금 생각하면 오글거리는 표현이긴 하지만요. 저는 다른 거 없어요. 음악이든, 연기든 오랫동안 꾸준히 하고 싶어요. 젊은 시기에는 젊음의 매력으로 나이가 든 시기에는 그 나이에 맞는 매력으로 가능하면 오랜 기간 동안 팬 분들에게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롤 모델이라고 하면 안성기 선생님처럼 말이죠. 

<자전차왕 엄복동> 대박나시길 바란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