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영국은 1865년 빅토리아 여왕 시절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인 붉은 깃발법(적기법)을 제정한다. 증기 자동차의 등장에 따라 말을 끄는 마부들의 일거리가 줄었고, 이에 불만이 커지자 그들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평가다.

적기법은 한 대의 증기 자동차에 반드시 운전사와 기관원, 기수가 존재해야 하며 최고 속도는 6.4km/h, 시가지에서는 3.2km/h로 제한했다. 백미는 기수의 존재다. 기수는 증기 자동차의 55미터 앞에서 차를 선도하도록 했으며, 이는 증기 자동차가 마차보다 빠르게 달릴 수 없게 만들기 위함이다.

적기법은 무려 30년동안 지속되었고, 그 결과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급속도로 쇠퇴했다. 결국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첫 자동차 발명국임에도 그 주도권을 독일과 미국, 프랑스에 내주고 말았다.

▲ 적기법으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파탄났다. 출처=갈무리

'미스터 쓴소리'의 강력한 발언 눈길
카카오 모빌리티의 카풀 서비스가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공전하는 한편, 택시업계의 막무가내 전략으로 국내 모빌리티 전략 전체가 흔들리는 가운데 이재웅 쏘카 대표가 작심발언을 내놨다. 이 대표는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의 대응에 관한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비판하며 정부의 모빌리티 전략을 비판했다.

이에 앞서 홍 부총리는 모빌리티, 승차공유와 관련해 "승차공유와 관련해 택시업계와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면서 "이해가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실제 가동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대타협이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홍 부총리의 말에 담긴 기본적인 전제에 집중했다. 이 대표는 "공유경제, 원격진료와 관련해 이해 관계자 대타협이 우선이라고 한 말은 너무나 비상식적"이라면서 "이해 관계자 대타협이 아니라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이 대표는 이어 "이해 관계자와 혁신을 저지하겠다고 하는 이해 관계자를 모아놓고 어떤 대타협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건가?"라고 반문하며 "공유경제가 중요하다면 이름뿐인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아니라 진정한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나아가 모빌리티와 택시업계, 정부 여당이 모인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민의 목소리는 누가 대변하고 있고 어느 국민이 그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서 나온 결론을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이 대표는 "정부의 역할은 국민의 편익이 증진하는 혁신은 북돋우고 그 혁신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국민은 사회적 비용을 투입해서라도 업종전환을 하거나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라면서 "이해 관계자들끼리 타협을 하면 정부는 그것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것은 국민의 편익보다는 공무원들의 편익만을 생각한 무책임한 정책 추진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이재웅 대표의 SNS. 출처=갈무리

이재웅 대표의 발언은 홍 부총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한편, 그 수위도 상당히 높다는 평가다. 평소 강경한 발언으로 잘 알려진 이 대표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재웅 대표는 인터넷 업계에 논란이 발생할 경우 설화에 휘말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현재 두나무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석우 대표가 2015년 다음카카오 대표로 제직하던 시절 아동음란물 유포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를 받자 "뭔가 잘못한 게 있으면 당연히 세무조사를 받고 세금을 내야겠지만 다음과 다음카카오 세무조사는 왜 광우병 파동 3개월 뒤, 세월호 사건 두 달 뒤, 그리고 그게 마무리된 지 1년도 안 돼 메르스 발병후 세무조사를 실시할까"라는 말로 당시 검찰의 수사 타이밍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2017년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네이버를 압박할 당시에도 특유의 쓴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당시 김 위원장이 이해진 창업주를 네이버 총수로 지정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만나는 사람을 모두 화나게 하는 독재자 스타일의 최악의 최고경영자(CEO) 였으나 잡스는 미래를 봤고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잡스를 미워했지만 존경했다. 네이버 정도의 기업이 됐으면 미래를 보는 비전이 필요하지만, 잡스처럼 우리사회에 그런 걸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하자 이 대표는 즉각 "김상조 위원장이 지금까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고, 앞으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정부 도움 하나도 없이 한국과 일본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하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 이재웅 대표의 SNS. 출처=갈무리

이재웅 대표의 말...업계 '시원하다'
국내 ICT 인터넷 업계는 이 대표의 15일 발언을 두고 '속 시원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최소한 모빌리티와 관련된 현안에서 홍 부총리와 같은 상황인식은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2018년 초 럭시를 인수하며 카풀 서비스를 준비, 이를 택시의 보완재라고 설명한 바 있다. 나아가 택시업계와의 상생을 바탕으로 새로운 모빌리티 가능성까지 타진했다. 그러나 택시면허 시세가 떨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개인택시 기사들이 강력히 반발하기 시작했고, 높은 사납금과 살인적인 노동을 사실상 강요하고 있는 법인택시 회사들도 자기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질 낮은 택시 서비스 문제를 손바닥으로 가리며 카카오 죽이기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시민 대부분이 카풀 서비스를 원했고, 향후 우버와 디디추싱과 같은 글로벌 모빌리티 사업자들의 국내 시장 진출 가능성까지 제기되었으나 택시업계는 묻지마 반대로만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풀러스는 크게 휘청이다 최근에야 기사회생했으며, 한국판 우버로 불리던 차차 크리에이션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 여당이 마련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가동됐으나 현 상황에서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첫 회의부터 택시업계는 카풀 서비스의 당위성으로 지목된 질 낮은 서비스의 근원이자 자기들의 약점인 택시기사들의 처우개선과 관련된 현안은 논의하지 말자고 선을 그었으며, 이후 회의에서는 카풀 서비스에 자가용을 배제하자는 비상식적인 주장도 나왔다.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사실상 "따따블"을 외치던 택시합승을 아우르는 택시업계만의 말잔치로 전락하는 가운데 이 대표의 발언은 그 자체로 무거운 의미를 가진다. 현 정부 여당이 혁신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 혁신을 막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산적인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짬짜미'만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이해 관계자들의 대타협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홍 부총리의 발언이 더욱 아쉬운 이유다. 홍 부총리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진영을 원만하게 합의시키기 위해 사회적인 합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카풀 문제는 사회적으로 합의할 사안이 아니라 '어떻게 더 시너지를 끌어내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무작정 선물만 안겨주며 정치공학적인 접근만 취하는 것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자기들의 논리적 오류를 인지하게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홍 부총리의 발언은 사실상 전자에 가깝다.

홍 부총리의 인식에 따르면 영국의 적기법도 문제없고 원만한 사회적 대타협이다. 증기 자동차의 등장과 함께 마부들의 불만이 커졌고, 단순히 정치공학적인 접근으로 보면 '증기 자동차 앞에 기수가 서는 것' 정도는 원만한 문제해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대타협은 결국 역사의 반동으로 도출됐으며 이후 산업의 미래에 엄청난 후폭풍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