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가짜가 많다. 그 가짜들은 자신들이 진짜인 척을 한다. 그러면서 진짜가 나타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늘 주변을 살피면서 자신이 인정하는 진짜를 경계한다. 만약 나타나면 그들을 향해 일갈한다. 자신이 진짜라고 우기면서 말이다.

직장 생활 또는 더 넓게 비즈니스 세계 속 진짜와 가짜는 실제 존재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세상은 ‘상대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상대성이 누군가에게는 큰 벽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만약 이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지속적인 성장을 통한 생존이 불가하다. 이미 자신은 관련 업계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았다고 착각을 할 것이고,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을 멈출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편협한 관점이 자신의 밥줄을 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갇힌다. 자신의 생각에 갇혀서 자신을 찾지 않는 이들을 원망한다.

여기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김 모 씨. 그는 한 업계, 직장, 유관 직무를 맴돌면서 십 수년을 근무했다. 회사에서 여러 차례 우수 사원으로 뽑힌 적도 있고, 새로운 사업을 벌일 때마다 회사에서 자신에게 그런 기회를 주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회사 안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자신이 맡았던 일이 좋은 결과를 냈던 것만으로는, 사내에서도 관련 업계에서도 그를 전문가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회사는 알았지만, 업계를 몰랐다. 아니 회사 밖 생리를 잘 몰랐다.

그는 높은 수준의 학위도 없었을 뿐더러, 제대로 된 리더의 경험도 없기에 사내에서는 그럭저럭 이상을 자랑했지만 회사 밖으로 나온 지금은 여타의 한 직장에 오래도록 근무한 성실한 舊직장인일 뿐이었다.

사실 그 모든 것이 우연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른바 승승장구, 손을 대는 일마다, 자신이 포함되어 했던 일마다 잘되었기 때문에 그는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그가 했던 일들이 전부 혼자 한 줄 착각했다. 왜? 그 모든 좋은 결과가 자기로 인해 나타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니던 직장을 떠나고 나서 그는 더 이상 ‘전문가 행세’를 하지 못한다. 소위 다른 물에서 놀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직장인이 아니다. 표면상으로는 무직이다. 겉으로는 그저 나이든 배 나온 아저씨에 불과했다. 여러모로 어필 가능했던 매력 대부분이 사라진 껍데기를 뺀 자신만의 진짜 알맹이로 그가 만나는 대다수를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를 나와서 겪는 딜레마이자 스트레스의 원흉이다. 특히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회사를 다녔던 이들이 주요 대상이다. 분명 재직 중에는 많은 이들이 자기를 찾고, 우러러 보면서 영원히 내 옆에 있을 줄 알았지만, 그 지위가 사라진 이후에는 더 이상 찾지 않는 것이다.

위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다. 4년 전 필자의 이야기다.

혈혈단신으로 나와서 무언가 해보기 위해 나왔지만, 막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당황스럽고,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제일 먼저 이런 무능력한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형 전문가를 만들었던 회사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필자는 우물 안 개구리가 맞았다. 그저 높은 수준의 월급을 받으면서 그 값을 제대로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 안에서는 분명 진짜였고, 이를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 결실로 좋은 결과들을 하나둘 만들어 냈고, 여러 형태로 인정받으면서 점차 성장해온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필자의 착각인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 다른 모습으로 자리매김해야 함을 알게 된 이후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꾸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이직스쿨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고 하던 것도 그 시기와 맞물렸다. 나와 다른 사람은 어떤 고민을 안고 있으며, 그들은 어떤 전문가가 돼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지 말이다. 이 내용은 그 과정 속에서 얻은 것이다.

직장 퇴직 시기가 점차 빨라지면서 많은 이들이 더욱 이른 시기에 고민 중이다. 직장인, 나름 먹고 살 만하게 되면서 그 이후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그 고민은 회사를 나와서도 유사한 경제적, 사회적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달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 한 가지 인정해야 한다. 과거 속 영광은 그저 ‘왕년에’ 있었던 일일 뿐이다. 직장은 직장이고, 그 안에서 내가 보여줬던 좋은 모습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일정 부분 회사가 만들어 준 것이었고, 그 영광을 회사와 내가 나눠서 누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영광을 재연 또는 유지하기보다는 새로운 형태로 구현하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그래서 첫째, 직장을 덜컥 그만두기보다는 충분한 방향 검토를 통해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보는 것이다. 단, 그 일을 오래도록 즐길 수 있는 생각과 체질 및 체력이 남아있을 때의 이야기다.

둘째, 자신의 활동 반경을 정확하게 알고 이를 통해 영역 확장을 시도하는 것이다. 직장 경험은 그저 사회생활 속 경험 중 일부일 뿐이다. 자신의 신분이 바뀌면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알아서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신청하면 쉽게 나오는 명함도 그 안의 정확한 명칭, 주소, 로고 등 어디 하나 쉽게 만들어지는 법이 없다. 만약, 독립해서 저 많은 것을 결정하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거쳐야 한다. 이직, 독립, 창업,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는 것이다.

셋째, 나에게 등 돌린 사람들을 이해하고 겸손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과 일을 하거나 어울리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존경할 만한 가치 또는 그만의 매력이 존재해야 하는데, 일의 경우에는 그것이 일의 영역과 구간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마케팅이라고 할지라도 당연히 하던 업계, 영역, 수준 등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마케팅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오래된 학자의 말을 성급하게 빌리거나 하는 등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잘은 모르지만, 또는 제 짧은 경험으로는”이라는 말을 꼭 붙여서 하는 편이다.

넷째, 전관예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막 나온 이들, 그들이 조직의 어느 자리까지 올랐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큰 조직을 나왔다고 한들, 그들의 조직은 급격한 성장세를 겪은 것이 아닌, 어쩌면 정체 또는 퇴행의 시기일지 모른다.

이 시기의 조직은 안정되어 있으며, 끊임없이 보수적으로 판단한다. 그 판단의 주체는 높은 이들의 몫이고, 그 자리를 거쳤다고 한들 내 관점은 이전 조직 속의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그들에게 모험적 시도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한 그런 자리를 거친 이들은 가장 최상위 포식층이다. 결국 그 위치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다시 내려와서 그들과 함께 연대하여, 여러 일을 해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굳어진 몸이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마지막 다섯째, 순수함을 기반으로 호기심을 잃지 않고, 그것이 생활 속의 유연함으로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도 노력 중이지만, 필자는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그래서 늘 따져보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팩트가 아닌 논리이고, 그 논리가 얼마나 절대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위의 내용이 내가 가짜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다. 물론 어렵다. 그리고 쉼이 없기 때문에 힘들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내 안에 쌓이는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진짜이기를 바란다. 진실을 다루거나 또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이 진짜이자, 전문가라고 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 누군가에게 인식되고 싶다. 그런데 진짜가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 노력은 직장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이 지금의 직장 생활을 더욱 행복하게 해줄 원동력이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