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정부와 기업이 2028년까지 연간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4개와 협력회사 50곳을 이주시는 반도체 클러스터 프로젝트가 조성지역을 두고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용인시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지역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자 구미시가 크게 반발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산업적 특성에 맞고, 지역균형개발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신의 한 수는 부재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섯 개 지자체 “뜨거운 경쟁”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가 들어설 유력한 지역은 경기도 이천과 용인 및 충북 청주와 충남 천안, 경북 구미 등 다섯 곳이 점쳐진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희비를 가를 핵심 플레이어가 SK하이닉스인 관계로, SK하이닉스 공장 인근의 지역이 자연스럽게 유력 후보지로 부상했다는 후문이다.

가장 유력한 곳은 용인이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인근이기 때문에 50여개의 협력사들이 위치하기에 편하며 SK하이닉스가 위치한 이천과도 가깝다. 또 인천공항과 가깝다는 지리적 강점이 있다. 여기에 신안성변전소 등 전력시설과 용수 인프라가 탄탄하기 때문에 반도체 클러스터의 입지로 손색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SK하이닉스를 중심에 두고 봐도 용인이 유리하다. SK하이닉스는 청주를 중심으로 낸드플레시 생산에 돌입하면서 이천에 연구개발을, 용인에 D램을 중심으로 라인업을 꾸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유로 14일 업계에서는 용인이 반도체 클럿 최종 부지로 낙점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다만 산업부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부지를 공정하게 결정할 것”이라면서 “확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선 긋기와 별도로 용인의 약점도 있다. 수도권 공장총량제 문제다. 수도권의 공장 건축면적을 제한하는 제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경기도는 이미 공장총량제를 충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2006년 파주 LG디스플레이 사례를 들어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제기되지만, 현 상황에서 정부의 이와 관련된 행보는 확인된 바 없다.

다른 지자체의 불만도 리스크다. 특히 국내를 대표하는 산업단지를 자처했으나 최근 주요 제조사들이 빠져나간 구미의 반발이 거세다. 구미는 14일 용인이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로 확정됐다는 주장이 나오자 즉각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구미는 부지 무상제공, 특별 인센티브까지 거론하며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에 사화를 걸었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13일 국회까지 방문해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확보의 필요성을 알리기도 했다. 국가공단 100만 평 특별제공을 비롯해 분양가 인하 및 업종확대 등 파격적인 정책을 연이어 내놨다. SK하이닉스에 대한 직접적인 설득에도 가장 열정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지역 주축 제조사들이 대부분 떠나는 상황에서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이 강하다. 대기업 제조사 등 계열사들을 비롯해 전자, IT등 자동차 전장품 관련 중소기업이 300여 곳이 포진한 것도 강점이다.

경북도의회는 최근 반도체 클러스터의 구미 유치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경북도의회 이종열 기획경제부위원장은 "반도체 특화클러스터 지역 유치를 위해 의회 차원의 지원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집행부에서 이 사업 유치를 위한 지원방안을 담은 조례 제·개정 등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천도 부지 유치에 전사적으로 나서고 있다. 용인과 비슷하게 수도권에 위치했으며, SK하이닉스 연구개발 인프라가 풍부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유치 시민연대 출범식을 가질 정도로 열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만 수도권 공장총량제가 약점이다.

비 수도권 지역으로는 천안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천안은 천안 성환읍 일원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 이전용지(419만㎡)를 경쟁 부지로 제안하며 적극적인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등 반도체 연계사업이 발달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각자의 시너지 효과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구본영 천안시장은 “자연재해 발생 대비와 지역 균형발전 등을 위해 천안이 최적지”라면서 “신규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입지는 단순히 경제적 논리에 따른 수도권 지역보다 자연재해 대비와 지역 발전을 위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 시장은 또 “서울 등 수도권 인구 2000만 명과 공장 등이 이용하는 물은 팔당댐 수계에만 의존하고 있다”라면서 “수도권 집중화는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자연재해에 큰 문제”라며 경기도 지역 후보군들을 견제하기도 했다.

천안시의회는 11일 오전 천안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천안은 수도권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고 수도권 전철, 고속철도, 경부고속도로, 건설 예정인 제2경부고속도로 등 전국 어디서나 접근성이 우수한 도로와 교통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며 "13개 대학과 전국 최고 수준의 산·학·연 클러스터 구축 등으로 인재 확보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청주는 SK하이닉스 청주 공장의 존재감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충청북도는 청주가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선정에 떨어질 경우 SK하이닉스의 청주 공장, 즉 M15 라인의 증축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음성혁신도시의 융·복합 타운에 이미 반도체 특화가 지정 고시된 점도 우군이다.

충북 청주시의회 경제환경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정부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은 SK하이닉스 공장이 있는 청주시의 신산업단지 청사진"이라며 "청주는 SK하이닉스 협력업체 160여 곳이 있고 대·중소기업 협력과 지역상생의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꼽힌다”고 주장했다.

어떻게든 결론 나와야 하는데...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의 가장 큰 요인은 인프라다. 당장 세정작업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주변에 물이 많아야 한다는 것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 ICT인프라연구소 강봉식 부소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공장은 하루 평균 7만톤의 용수를 사용한다”면서 “주변에 풍부한 산업용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풍부한 전력 인프라와 인근 공장과의 시너지, 나아가 연계산업의 시너지 효과도 고려되어야 한다.

인재수급도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 부소장은 “반도체는 최첨단 기술 집약사업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훌륭한 인재들이 필수”라면서 “미국의 아마존이 제2본사를 설립하며 가장 고민한 것이 바로 인재의 수급”이라고 말했다. 강 부소장은 “인재들이 머물기 좋고 인재들을 확보하기 편리한 곳은 수도권”이라면서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는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지역균형발전도 중요한 부지 선정 요소라는 주장도 있다. 남기석 한국G&A 컨설팅 대표는 “수도권 공장총량제 등을 고려하면 경기도는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가 될 요인이 낮다”면서 “각 연계산업과의 시너지를 고려하면서 큰 틀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염두에 둔 정책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