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세포는 암이 처음 시작된 원발 종양(primary tumor)에서 혈관 또는 림프관을 통해 전이를 시작한다. 그중에서 림프관으로 나온 암세포는 첫 번째 만나는 림프절(종양배수림프절)에 도달해 자라나기 시작한다. 림프절은 지방이 많은 조직이라는 특징이 있는데, 연구진은 담즙산이 림프절에 도달한 암세포 핵의 비타민D 수용체(VDR)의 활성화를 유도하며, 그 결과 전사인자 YAP이 활성화돼 지방산 산화를 증가시키고 림프절 전이를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밝혔다. 결과적으로 암세포는 성공적인 림프절로의 전이를 위해 지방산을 연료로 삼는 것이다. 암세포의 림프절 전이 과정 모식도. 출처=기초과학연구원(IBS)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암환자의 사망은 대부분 다른 장기로 암이 전이되는 것이 원인이다. 암은 림프관을 통해 가까운 주변 림프절로 전이되고, 혈관을 통해 간이나 폐 같은 멀리 떨어진 장기로 전이된다. 림프절로의 암 전이 여부는 암환자의 생존 기간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예후 인자이자 추후 치료 방향을 설정할 때 매우 필수적인 지표다.

림프절로의 전이는 타 장기로의 전이보다 먼저 진행된다고 알려졌다. 최근 암 조기 치료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림프절로의 전이 억제 여부가 항암과 암 예방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항으로 강조되는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백혈구를 비롯, 면역세포가 가득 차 있는 림프절(Lymph node)에서 암세포가 증식하는 기전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 주목된다.

암세포, 면역 강한 림프절에선 포도당에서 ‘지방산’으로 에너지원 바꿔 전이

기초과학연구원(IBS)은 8일 고규영 혈관 연구단 단장(KAIST 의과학대학원 특훈교수) 연구진이 암세포가 림프절로 전이하기 위해 지방산을 핵심연료로 활용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피부암인 흑색종과 유방암 모델 생쥐를 이용해 림프절에 도달한 암세포가 지방산을 에너지로 삼아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대사(Metabolism)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림프절은 각종 림프구와 백혈구가 포함돼 있는 면역기관의 일종으로 림프관으로 서로 연결된 동그란 형태의 조직이다. 대사는 생물체가 생명 유지를 위해 진행하는 합성, 분해, 조절 등의 과정이다.

▲ 그림 A는 일반 림프절에서 흑생종 암세포가 전이되는 단계별 과정을 촬영한 형광현미경 사진이다. 연구진은 미세전이 림프절과 거대전이 림프절에서 각각 암세포를 분리해 처음 종양이 시작된 원발종양 암세포와 비교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지방산 대사 관련 유전자가 전이된 림프절에서 더욱 활성화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지방산 산화 억제제(Etomoxir)를 실험군에 투여하자 대조군에 비해 암세포의 림프절 전이(이미지 속 검은 부분이 암세포(흑색종))가 획기적으로 감소함을 확인했다(그림B). 림프절 전이의 단계와 지방산 산화 억제제에 의한 림프절 전이 억제 효과. 출처=기초과학연구원(IBS)

이번 연구는 폐나 간 등 장기로의 전이에 집중하던 기존의 암 연구와는 다른 접근법으로 면역기관인 림프절에 도달한 암세포의 생존전략을 규명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암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암의 림프절 전이 정도는 암 환자의 생존율을 예측하고, 치료 방향을 설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암의 림프절 전이 과정과 기전 등 암세포가 어떻게 각종 면역세포가 있는 림프절에서 생존하는지는 지금까지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논문의 제 1저자인 이충근 종양내과 전문의(박사)는 “쉽게 말해, 암세포가 포도당을 주 에너지원으로 활용해 전이한다는 것으로 대개 알려졌지만, 림프절에서는 포도당도 활용하지만 주로 지방산을 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도록 대사가 바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계적 원인 규명으로 치료제 개발 타겟 3개 발견

기존연구에서는 대부분의 암세포는 포도당을 주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연구진은 RNA 분석과 동물실험으로 림프절에 도달한 암세포는 지방산을 주 에너지원으로 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연구진이 조직별로 대사물질을 분석한 결과, 림프절이 다른 조직에 비해 지방산이 풍족한 환경이며, 림프절에 도달한 암세포는 지방산을 에너지원으로 쓰게끔 물질대사를 변화시키는 것을 확인했다.

확인된 사실에 따라 연구진이 흑색종과 유방암 모델 생쥐에 지방산 대사를 억제하는 지방산 산화억제제(Etomoxir)를 주입하자 림프절 전이가 억제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암세포가 더 이상 연료를 태울 수 없어 전이가 진행되지 않는 셈이다.

▲ 연구진은 림프절에 전이된 흑생종(그림A)과 유방암(그림B) 모델 생쥐의 암세포를 형광염색법을 이용해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두 이미지 모두에서 YAP 전사인자(진한 녹색)가 활성화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암세포의 림프절 전이에 있어서의 전사인자 YAP의 역할. 출처=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 관계자는 “림프절에 도달해 자라는 암세포에서 YAP 전사인자가 활성화돼 있음을 발견해 YAP 전사인자가 암세포의 지방산 산화를 조절하는 인자임을 확인했다”면서 “암세포 내 YAP 전사인자의 발현을 억제하자 암의 림프절 전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관찰했다”고 설명했다.

전사는 DNA에 적혀 있는 유전정보를 유전자 발현에 관여하는 mRNA로 옮기는 과정이다. 전사인자는 특정 유전자의 전사 조절 부위 DNA에 특이적으로 결합해 해당 유전자의 전사를 활성화시키거나 억제하는 전사 조절 단백질이다. YAP 전사인자는 조직 항상성, 장기 크기와 재생, 종양 발생에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알려진 전사인자다.

연구진은 더 나아가 YAP 전사인자가 어떤 신호를 받고 림프절로 전이된 암세포에서 활성화되는지 알아봤다. 대사체를 분석한 결과, 그동안 지방의 소화와 관련 있다고 알려진 담즙산(Bile acid) 성분들이 림프절에 전이된 암세포에만 특이적으로 축적된 것을 발견했다. 이에 연구진은 세포 실험으로 담즙산 성분이 신호전달물질로 작용해 핵 안의 비타민 D수용체(VDR)를 활성화시켜 전사인자 YAP를 활성화시키는 과정을 규명했다.

연구진이 단계적으로 원인을 밝힌 것은 치료제를 개발할 때 억제할 타겟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림프절 속에서 암 증식을 막기 위해서 지방산 산화억제제, YAP 발현 억제, 담즙산 억제 등 세 방법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충근 종양내과 전문의(박사)는 “이번 연구는 암 전이의 첫 관문인 림프절에서 암세포가 대사를 변화시켜 지방산을 주 에너지원으로 쓴다는 현상과 그 기전을 처음으로 밝혔다”면서 “이후 림프절 전이를 표적으로 삼는 차세대 항암제 개발에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근 전문의는 또 “해당 연구는 동물실험에서 암세포가 림프절에서 지방산을 주 에너지원으로 활용, 전이한다는 기전을 규명한 것이다”면서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비만과 암의 연관성 등은 추가로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IBS는 이번 연구 성과가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IF 41.058) 온라인판에 게재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