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 교수신문에서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언론과 사람들에게 많은 화재가 됩니다. 전국 대학교수님들의 설문조사로 선택되기에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조망하는데 활용됩니다. 작년말 선정된 사자성어는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의 임중도원(任重道遠)입니다. 이에 대한 언론과 대중들의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쏟아졌습니다. 이렇듯 사자성어는 단 네 글자로 여러 생각과 다양한 반응을 만들어 냅니다.

최근 사자성어가 아니지만 사자성어처럼 익히 알려진 네 글자가 있습니다. 내로남불. 간단하게 말하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신조어로 많이 알고 있지만 90년대 정치권에서 활용된 꽤 오랜 역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현재 언론과 온라인 여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며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서두에 이야기했듯 '내로남불'은 사자성어가 아닙니다. '나'의 대명사 우리말 '내', 영어 로맨스(romance)의 '로(ro)', 남이나 나의 다른 사람을 나타내는 우리말 명사 '남', 그리고 한자어 명사 불륜(不倫)의 '불(不)'이 결합되어 있는 네 글자입니다. 일반적 고사성어가 아닌 한글, 영어, 한자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으로 탄생한 보기 드문 글로벌 신조어입니다.

항간에 내로남불 이슈가 증가된 이유 중 하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 변화입니다. 인터넷이 정보 공유의 장에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변화했고 모바일 환경의 SNS를 통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일상화되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사라지지 않고 흔적을 남기게 되었고 누구나 나의 과거 커뮤니케이션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이는 곳 한 번 공유된 언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환경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가장 좋은 해법은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업 CEO 입장에선 불가능한 해법입니다. 가장 완벽한 해법이 될 수 있지만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는 CEO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말을 하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나의 커뮤니케이션이 관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의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오프라인, 온라인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공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규정해야 합니다. 온라인을 통한 사적 커뮤니케이션 영역이라 판단되는 부분도 관리되어야 합니다. 본능적 커뮤니케이션을 배제해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잠시라도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생각할 자유는 무궁무진 보장될 수 있지만 말할 자유는 내가 콘트롤 해야 합니다. 고객과 대중은 내가 콘트롤 할 수 없지만 나는 내가 콘트롤 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이런 원칙을 두고 자기 검열(自己檢閱)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민주주의 시대에 자기 검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사람들의 관점과 상식의 기준이 매번 바뀌는 시대입니다. 과거에 SNS에 무심코 올렸던 글이 지금 상황에선 부적절한 글이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기업 CEO는 고객과 시장의 기대에 부합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합니다. 때문에 고객과 대중의 상식과 눈높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온라인에 글을 올리기 전에 한 번 더 그 기준에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일정 기간을 기준으로 과거에 내가 했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도 다시 한번 복기해 보는 것도 권고 드립니다. 지금이 맞고 그때는 틀릴 가능성은 항상 존재합니다.

최근 내로남불 이슈는 대부분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영역에서 발생합니다. 내로남불을 주장하는 한쪽은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 그 도덕적 우월감을 기반으로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라 평가하는 패턴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온라인에서 이른바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변모했습니다. 특히 영향력이 큰 인물일수록 더 크게 조명되고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만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을 일컫는 이 말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해당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와 더불어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언제든지 내로남불 이슈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내로남불 영역에선 현대인 모두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로남불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특정 개인과 기업에 대한 이슈는 논리와 이성적 판단보다 대부분 호불호(好不好)의 영역입니다. 큰 사회적 이슈들은 사안별로 각기 다른 판단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많은 온라인 대중은 확신과 맹신을 쉽게 표출합니다. 시간을 투여해 심오한 판단을 하는 것이 어렵거나 귀찮고 이분법적 판단을 하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로남불형 CEO가 되지 않기 위해선 좋은 사람(Good Man)이 되어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실수 없이 완벽하게 처신할 수 없으며 다양한 진실과 대중의 오해로 내로남불 이슈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과응보나 사필귀정으로 평가받지 않고 한두 번 잘못을 저질러도 비난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소위 ‘까방권’을 획득할 수 있는 명성을 쌓아 가야 합니다. 그것이 현실적 솔루션보다는 항상 우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