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시계와 달력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해와 별, 동물들의 변화를 통해서 절기와 시간을 예측하곤 했다.

우리 선조들은 양력으로는 3월 초 겨울잠을 자던 벌레와 개구리 등이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하면서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경칩이 오고, 얼어붙었던 대동강도 풀리면서 본격적으로 봄을 느끼게 된다면서 경칩을 농사의 중요한 시기로 여겼다.

유럽인들도 오랫동안 곰이나 오소리 등의 동물들이 동면에서 깨어나면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으로 여겼다.

미국에도 동물을 통해서 계절의 변화를 점치는 문화가 있는데, 바로 그라운드호그 데이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매 2월 2일에 봄이 언제 올지를 점치는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그라운드호그는 다람쥐과에 속하는 설치류로, 그라운드호그가 자신의 굴에서 나오면 봄이 오고 굴에서 나오지 않으면 겨울이 조금 더 지속된다고 여긴다.

그라운드호그 데이는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지역에 자리 잡은 독일 이민자들의 풍습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라운드호그가 2월 2일에 겨우내 자던 굴에서 나와서 쨍하게 맑은 날씨 속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 깜짝 놀라서 굴 속으로 다시 들어가 6주를 더 보내게 된다.

이 경우 겨울은 6주 더 지속되고, 만일 그라운드호그가 흐린 날씨 때문에 그림자를 보지 못해서 밖에서 머물면서 활동하면 봄이 바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겨울에는 태양의 높이가 낮아서 그림자가 길게 지고 여름이 될수록 태양이 높게 뜨면서 그림자의 길이가 짧아지기 때문에, 그라운드호그가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는 것을 봄이 다가왔다는 의미로 풀이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라운드호그로 봄이 오는 것을 점치는 기록은 1840년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라운드호그를 보고 봄이 오는지를 공식적으로 점치기 시작한 것은 1887년 필라델피아의 작은 타운인 펑수토니에서 시작됐으며, 이후부터 매년 사람들은 그라운드호그에게 봄이 올지를 점치는 행사를 하고 있다.

특히 펑수토니에서는 그라운드호그에서 펑수토니 필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지난 1887년부터 현재까지 매해 펑수토니 필이 봄이 오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평소 펑수토니는 인구 5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인데, 펑수토니 필이 아침 7시 25분에 자신의 집을 나와서 그림자가 생기는지 아닌지를 보는 그라운드호그 데이 아침에는,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4만명이 넘기도 한다.

특히 동명의 영화인 <그라운드호그 데이>(한국에서는 <사랑의 블랙홀>로 개봉)가 1993년 개봉하면서, 이전까지 2000명이었던 펜실베이니아 펑수토니에 그해에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고 점차 그 수가 늘어났다.

영화는 방송국의 기상캐스터인 빌 머레이가 프로듀서인 앤디 맥도웰과 펑수토니 마을에 그라운드호그 데이를 취재하러 출장을 왔다가, 시간이 무한 반복되는 블랙홀에 빠지게 된 사실을 깨달으면서 좌충우돌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별 볼 것 없는 조그마한 시골에 그라운드호그라는 동물을 보기 위해 출장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웠던 빌 머레이에게, 매일 아침 그라운드호그 데이가 다시 시작되면서 영화에서 그라운드호그 데이가 여러 차례 보여졌다.

이 영화의 흥행 덕분에 그라운드호그의 인지도는 크게 높아졌고 펑수토니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그라운드호그 데이가 널리 알려지면서 펑수토니가 아닌 각 지역의 동물원에서도 그라운드호그 데이에 봄을 점치는 행사를 한다. 2019년 2월 2일의 경우 펑수토니 필은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못해서 올해는 봄이 일찍 올 것을 예상했다.

뉴저지의 웨스트오렌지 터틀백 동물원에서도, 뉴욕 브루클린의 동물원에서도 이날 그라운드호그들이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못해서 올해 미국에 봄은 빨리 올 것으로 예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