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친구들과의 몇 모임에서 신년 약속을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여러 건이 ‘남쪽 기행’으로 정해졌습니다.

멀리는 여수, 해남, 가까이는 문경, 군산. 그렇게 남쪽을 얘기하고 정한 것은

뭐 깊은 뜻이 아니라, 일단 따듯하고, 먹거리나 볼거리가 비교적 풍부해서

정하게 되었습니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그렇게 멀리 떠나야,

중간에 도망가는 친구가 없다는 점도 반영되었습니다.

문득 집에 내 침대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그림이 생각났습니다. ‘코루소의 로마식 저택 창가에 서 있는 괴테’

이십여 년 전 프랑크푸르트 출장길에 들른 괴테하우스에서 사온 것입니다.

18세기 괴테가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중 하나이리라 생각하는데,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 밖을 보는 모습에 끌렸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호기심을 많이 갖고 살자’는 의미에서 그걸 가까이에 두고 살아 왔습니다.

괴테는 그 남쪽 기행을 통해 남쪽의 따듯한 날씨, 음식, 사는 양식, 사람들에 감격하고,

그때까지 북쪽에서의 38년여 삶을 한탄했다고 합니다.

고1때 만나서 사십오년을 이어온 친구들 모임을 지난주 군산에서 가졌습니다.

근처 바닷가 풍경도 보았고, 일제 근대화 시절의 골목이나 건물도 가보았습니다.

예쁜 이름의 군산 장미동이 감출 장(藏), 쌀 미(米)로 일제 강점기 수탈된 쌀의 곳간이었다는 아픈 역사도 알게 되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함께 하는 추억 여행이 되었습니다.

마침 우리가 점심을 했던 식당 근처에 장례식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최근 있었던

예인의 장례식 풍경 얘기를 입담 좋은 식당 주인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발인 전날 져녁에 예인 영정 앞에 고인과 함께 했던 젊은 춤꾼들이 모여서,

장구 치고 소리도 내면서 한바탕 잔치로 추모했다고 합니다. 바로 1월 초순에 세상을 떠난

민살풀이 춤의 대가 장금도(91) 예인의 얘기입니다. 민살풀이 춤 이라니 생소하지요?

수건을 들지 않은 채 소매와 손끝으로 추면서, 손은 머리위로 넘어가지 않고,

어깨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크지 않은 동작으로 추는 우리 전통 춤을 말합니다.

춤도 생소하지만 그녀의 존재도 내게는 낯설었습니다.

그러나 춤판에서는 국내 유일의 민살풀이 춤 전승자로 많이 알려진 분였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녀의 기구한 인생 얘기에 솔깃해졌습니다.

궁핍한 집안 환경으로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권산 권번을 들어가야 했고,

거기서 기생으로 기·무·악을 익히며 고단한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그 후에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 결혼, 과거를 숨기며 살게 되었답니다.

남편이나 자식들 알게 될까봐 그렇게 숨죽여 살았지만, 주변에서 제발 속에 담아 두지 말고 사람들 앞에 나서보라는 권유에 다시 춤판에 서게 되었다지요.

그렇게 군산에서 제대로 서사도 있는 추억 여행을 하며 친구들과 약조를 했습니다.

우리 남은 인생 잘 살아서 죽을 때 남은 친구들이 영정 앞에서

예인이 받았던 잔치 형식의 이별 식으로 아쉬움 없이 친구를 보내자고.

그러기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친구들끼리 더 스며들고, 더 쏘다니자고 말이지요.

이 겨울, 남쪽이 나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