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이른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상황이 매우 좋다'고 보기는 어폐가 있지만 업계 전반에서 "올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여럿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금 흐름이 원만하게 흘러가며 전체 생태계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업계호황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한편 그 스펙트럼을 넓히고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세밀한 핸들링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혈관에 피가 돌기 시작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14년 1조6393억원에 불과했던 스타트업 신규투자는 2017년 2조3803억원, 지난해 11월에는 3조1217억원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신규 투자붐이 일었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스타트업 신규투자 총액이 3조원 중반대에 이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2017년 투자가 이뤄진 스타트업이 1266개로 정점을 찍은 가운데 지난해 1254개로 잠시 주춤하고 있으나, 이 역시 전체적으로 보면 안정적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국내 경제가 주춤하는 가운데 일부 자금이 리스크는 크지만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스타트업 업계로 넘어왔다는 말이 나온다. 모테펀드 자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현 상황에서 VC도 발 빠른 행보를 거듭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VC업계 관계자는 "최근 신설된 VC들은 넉넉한 유보자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들이 올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상당한 금액이 추가로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스타트업 업계의 자금 흐름이 좋아진 이유로는 다양한 요인이 꼽히고 있다. 특히 유니콘이 대거 등장하며 업계 전체에 신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내 유니콘 스타트업은 쿠팡, 옐로모바일, 크래프톤, L&P코스메틱, 비바리퍼블리카, 우아한형제들 등 총 6개다.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유니콘이 300개를 넘기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이 80%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유니콘 비중은 아직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젠바디, 위메프 등 유력 유니콘 후보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업계의 기대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들은 기업가치 8000억원대를 유지하며 차기 유니콘을 넘보고 있고, 5000억원 이상의 유니콘 후보들도 여럿 보인다.

유니콘의 등장과 함께 전체 스타트업 업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강명우 ICT프레임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유니콘들이 많이 등장하며 성공신화를 쓰자 외부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기대감이 전체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달라진 스타트업 인수합병 분위기도 긍정적이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면 점령군을 내보내 스타트업 경영에 개입하고,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회사를 떠나며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되는 일이 많았다. SK텔레콤의 싸이월드 인수에 이은 파국이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최근에는 분위기가 변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도 스타트업 경영진의 독립적인 경영을 보장하는 분위기다. 이는 네이버와 카카오와 같은 ICT 기업은 물론 삼성전자처럼 전통의 제조 대기업도 동일하게 차용하는 방식이다. 점령군도 없고, 비빌 언덕만 생긴다.

인수합병 자체가 많아지는 점도 눈여겨 볼 포인트다. 네이버는 지난해 리멤버의 개발사 드라마앤컴퍼니, 수면개선용 웨어러블 디바이스 아모랩 등 다양한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했으며 카카오도 웨이팅 관리 서비스 나우버스킹을 비롯해 252억원을 투입, 카풀앱 럭시를 인수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500대 기업 중 분기보고서를 제출하는 245개 회사는 무려 53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의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도 플랫폼 활성화 측면에서는 고무적인 일이다. 삼성전자는 C랩을 가동하고 있으며 최근 미국에서 열린 CES 2019에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링크플로우와 모픽, 룰루랩은 현지에서 혁신상까지 받았다. 최근에는 SK하이닉스도 하이개라지(HiGarage)’ 출범식을 열어 스타트업 생태계에 집중하고 있다.

스타트업 자금 조달 통로가 다양해진 대목도 눈길을 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는 최근 누적 펀딩액 1000억원을 돌파했으며 지난해에만 3500여 프로젝트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리워드형과 투자형을 살펴보면 누적 펀딩액 1075억원 중 리워드형이 610억원, 투자형이 465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2018년 펀딩액은 리워드형 392억원, 투자형 209억원이 각각 모집 돼 601억원을 달성, 전년 대비 113% 성장했고 프로젝트 오픈건수는 리워드형 약 3300건, 투자형 약 170건이 각각 개설 돼 약 3500건 달성, 전년 대비 178% 성장했다.

15일부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올해부터 연간 최대 15억까지 투자형 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 제도가 탄력을 받으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 몰리는 자금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첫 사례도 나왔다. 와디즈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에 따른 증권 발행한도 확대의 첫 결실로 '그린플러드그 서울 2019' 프로젝트가 오픈 하루만에 8억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크라우드펀딩은 스타트업들의 자금 확보 통로를 다양화시키는 한편, 일종의 생태계 전략을 돕는 순기능도 가지고 있다. 펀딩에 나서는 순간 자동으로 홍보가 되며 브랜딩 가치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 자금 확보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가치다.

최근 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패밀리오피스도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의 우군이다. 이상록 너브 회장, 이민주 에이티파트너스 회장 등 패밀리오피스 수장들이 막대한 자본을 스타트업 업계에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노력도 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는 해외 송금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투자 제한 업종 지정을 유연하게 수정했으며 김관영 의원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금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해 핀테크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의미하는 바가 크다.

기존 금산법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을 지원하여 금융기관간의 건전한 경쟁을 촉진하고 금융업무의 효율성을 높여 금융산업의 균형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됐으나 최근에는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규제로 여겨졌다. 특히 대표적인 핀테크 사업인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와 기존 투자중개업을 구분하지 않아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에게 과도한 출자제한 등 불필요한 규제가 적용되어 핀테크 업계의 원망을 받았다.

개정안은 이러한 불합리함에 착안해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가 등록대상으로서 인가대상인 투자중개업자와 달리 물적·인적 요건이 다른 점, 기업결합 등에 따른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미미하다는 점에서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를 투자중개업자와 구분되는 금융업자로 분류하여 정의했다. 당장 자회사 설립 등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의 사업확장 가능성이 증대되고, 형평과 실질에 부합한 규제 정비로 핀테크 산업 성장의 촉진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이근주 사무국장은 “김관영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실현되면 핀테크 산업과 모험 자본시장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라고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의 중요한 축으로 상생을 거론하는 대목도 고무적이다. 문 대통령의 상생 의지는 4일 스타트업 현장 방문으로 이어진다. 제조 스타트업인 메이커 스페이스를 찾은 문 대통령은 현장에서 3D 프린터와 레이저 가공기 등을 직접 살펴보며 스타트업의 창의적인 혁신에 주목했다. 3D 프린터가 전통적인 제조 인프라와 ICT의 만남이라는 점도 문 대통령의 행보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나온다.

▲ 와디즈의 펀딩이 1000억원을 넘겼다. 출처=와디즈

리스크는 있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다양한 호재가 겹치며 모처럼 활력이 돌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은 멀다는 주장도 나온다.

투자의 큰 손인 모태펀드 문제가 있다. 국내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꾸려져야 하는 모태펀드는 국회 예산안 정국에서 2400억원으로 확정, 전년과 비교해 2100억원 줄어들었고 모태펀드 운용기관인 한국벤처투자는 강력한 투자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업계의 시름을 깊게 만들고 있다. 만약 모테펀드가 흔들리면 모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는 VC 업계도 얼어붙을 수 밖에 없다.

정부가 기본적인 지원정책에도 제대로 나서지 않으면서, 오히려 민간의 영역에 과도하게 뛰어들며 논란이 커지는 장면도 연출된다. 지원을 통해 판을 깔아줘야 할 정부나 지자체가 자기들의 원래 임무는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방치하면서, 민간의 영역에 맡겨 키워야 할 혁신 영역을 무리하게 틀어쥐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정치적인 공적을 쌓기위한 포석으로 혁신 영역이 희생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문화도 많이 달라졌으나, 여전히 갑질 공방이 벌어지는 대목도 우려스럽다. 한국NFC 사태 등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대기업이 가져가고 있다는 주장이 줄기차게 나오는 가운데 최근에는 패션 스타트업 브랜드 듀카이프와 대기업 한세엠케이 표절 공방도 격화되고 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는 것은 고무적이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커지는 것도 문제다. 특히 이미 검증된 스타트업으로만 자금이 몰리는 현상은 반드시 고쳐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나아가 대기업이 외국 스타트업에만 무리하게 집중하는 대목도 우려스럽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국내 9개 스타트업에 317억원을 투자하는 것에 그치며 실망감을 자아냈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하는 해외 스타트업 인수합병에 몰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영적 측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국내 스타트업의 저변 확대를 위해 업계가 공동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패밀리오피스가 스타트업 업계의 큰 손으로 부각되고 있으나, 족벌 경영체제의 부작용이 심해질 것이라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부의 규제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점점 나아지고 있으나 아직은 '멀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샌드박스 규제 등을 통해 문제를 풀어간다는 설명이지만 현장에서는 쉽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미래 스타트업 방향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많은 투자 유치를 받은 곳은 7572억원을 기록한 바이오 의료 스타트업이다. 6896억원을 기록한 ICT 서비스를 눌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의 바이오 의료 분야 규제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아산나눔재단과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디캠프,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공동으로 펴낸 ‘스타트업 코리아 디지털 헬스케어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헬스케어, 그리고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면서 국내에도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나 규제로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헬스케어 산업의 혁신은 디지털 헬스케어가 주도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누적투자액 Top100에 국내 스타트업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규제는 스타트업이 헬스케어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헬스케어 전문 벤처캐피털이나 엑셀러레이터들은 투자 대상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 적법성을 우선적으로 확인할 정도”라고 말했다.

▲ 바이오 헬스케어 시장에서 아직 한국의 존재감은 미비하다. 출처=보고서 갈무리

이어 보고서는“실제로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누적투자액 Top100 기업 중 63개는 국내에서 온전하게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 누적투자액 기준으로 보면 그 비중은 약 75%로 더욱 증가한다. 이처럼 국내 규제환경은 새로운 헬스케어 서비스와 제품을 개발하는 데 제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부분도 많다. 베트남 VN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최근 현지에 스타트업 열풍이 불고있으며, 신규 대졸자 75%가 스타트업 창업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초기 스타트업 실패율이 아직 높지만, 새로운 도전을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모델과 더불어 우리 사회 전체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