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현대차가 동남아에서 차량공유 시장 개척에 나선다. 전기차 모델 코나 일렉트릭이 선봉에 섰다. 동남아에서 전기차를 활용해 차량 호출 서비스를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현대차의 차량공유 시장 진출에는 ‘후발주자’ 꼬리표가 붙는다. 한국 경제를 견인해온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태동은 이미 시작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늦은 결정을 국내 사정 때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많다. 차량공유 시장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25만 택시기사 편에 가깝다. 대기업은 서로 견제를 한다. 이들은 시선은 해외로 돌려졌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 먹거리를 찾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미 앞서나간 기업들의 차량공유 시장 성장세는 만만치 않다.

▲ 카헤일링 업체 그랩의 코나EV 차량. 사진=현대자동차

3100억원짜리 차량공유 첫발

16일 현대차는 동남아시아 카헤일링 기업 그랩과 코나EV를 활용한 카헤일링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동남아판 우버’로 알려진 그랩은 앞서 현대·기아차가 총 2억7500만달러를 투자한 회사다. 투자규모는 현대차그룹이 외부업체에 투자한 액수 중 가장 큰 금액이다.

현대차는 이번 서비스 론칭을 위해 코나EV를 그랩에 공급했다. 그랩은 이를 포함해 연내 총 200대의 코나EV를 구매한다는 계획이다. 코나EV 20대는 모두 그랩 소속의 운전자에게 배치 완료됐다.

차량공유 시장에서 코나EV의 강점은 ‘충전’이다. 그랩 드라이버들의 일일 평균 운행거리는 200~300km다. 코나EV는 1회 충전으로 400km 이상 달릴 수 있다. 급속 충전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면 30분 이내에 80%까지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충전 소요시간도 적은 데다 내연기관 차량 대비 유류비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다.

그랩은 일반 내연기관 차량의 하루 대여금액과 크게 차이가 없는 80싱가포르달러(약 6만6000원)로 책정했다. 그랩 운전자는 그랩 측으로부터 코나EV를 빌려 현지 고객에게 카헤일링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남긴다.

서비스 안착을 위해 전력 공급업체인 싱가포르 파워(Singapore Power) 그룹도 협력에 나선다. 싱가포르 파워는 그랩 드라이버들이 전기차 충전소에서 30% 저렴하게 차량 충전을 받도록 만들 전망이다.

3사는 시범 프로젝트를 통해 충전 인프라, 주행 거리, 운전자 및 탑승객 만족도 등을 면밀히 분석해 이번 전기차 카헤일링 서비스의 확대 가능성과 사업성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향후 전기차 활용 차량 호출 서비스를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요 국가로 확대할 방침이다.

▲ 사진=그랩

그랩의 투자와 정부 방침

그랩은 중국 디디추싱, 미국 우버에 이어 규모 면에서 세계 3위 업체다. 그랩은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 지역을 휩쓸고 있다. 2014년 설립 이후 누적 25억건의 운행을 기록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다. 현재 그랩은 동남아 지역에서 카헤일링 서비스뿐만 아니라 음식 배달, 모바일 결제, 금융 서비스 등으로 사업분야를 확대하는 중이다.

그랩이 다각도로 사업영역을 넓힐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동남아시아 차량 공유경제 시장은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이다. 2017년 기준 하루 평균 모빌리티 서비스 이용은 약 460만건이다. 선진시장인 미국의 500만건에 견줄만한 규모다.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앤드설리번은 동남아 차량 공유 시장이 2021년이면 279억달러(약 3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동남아 지역 정부는 차량공유에 대해 장려하는 분위기다. 싱가포르 정부의 경우 시민들의 불편사항을 1순위로 여긴다. 차량공유 서비스를 규제하기보다는 수요 기반형 서비스로 인정해 장려하는 편이다.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서비스에 자극받은 택시회사들이 배차서비스 앱을 개발하고 있다.

동남아 정부는 전기차 사업 지원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친환경과 차량공유의 경제성을 고려해서다. 동남아 주요 국가들은 전기차에 대한 세금 감면과 충전 인프라 구축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대중교통 실증사업 추진 등 과감한 친환경차 보급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동남아 전기차 수요가 내년 2400여 대 수준에서 2025년 34만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기아차가 역대급 투자를 단행해 그랩과 손을 잡았지만, 그랩은 나라와 업종과 관계없이 다양한 투자를 받고 있다. 싱가포르와 중국의 국부펀드, 미국 타이거펀드 등 대형 헤지펀드부터 완성차 업체 중에는 일본 토요타와 혼다가 그랩에 투자했다. 토요타는 소프트뱅크와 협력해 향후 그랩에 자율주행차까지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정보기술(IT) 서비스업체 중에서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일본 소프트뱅크, 중국 디디추싱 등도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한국 기업은 SK, 네이버, 미래에셋 등이 모두 그랩에 투자했다.

▲ 지난해 10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카카오 카풀 반대 3차 집회'에서 전국택시노조 등 택시 4개 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임형택 기자

뒤늦은 출발, 뒤엉킨 국내 속사정

그랩을 포함한 자율주행업체들의 위상은 하늘을 찌른다. 미국 우버는 65개국 600여개 도시에서 사용되고 있다. 카풀 서비스 ‘우버풀’, 프리미엄 자동차 호출 서비스‘우버 블랙’, 자전거와 오토바이 등으로 음식배달을 대신해 주는 ‘우버 이츠’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소비자의 편리를 제고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가 해외 플랫폼의 자국 진입을 막으면서 디디추싱이 급격히 성장했다. 디디추싱 서비스 가입자는 약 4억5000만명이다. 하루 평균 2500만명이 사용한다. 그랩 역시 8개국 500여개 도시에서 서비스하며 동남아 전체에 차량공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랩은 지난해 6월 개시한 '시리즈 H단계' 투자의 목표 금액을 기존 30억달러에서 최근 50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그만큼 성장 여력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업계는 이러한 글로벌 차량공유 상황을 놓고 현대차는 ‘후발주자’라고 칭하기도 한다. 물론 현대차가 공유차 플랫폼 구축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7년 차량공유 스타트업 ‘럭시’에 50억원을 투자했으나, 택시업계가 불매운동에 나서면서 6개월 만에 모든 지분을 매각했다. 이후 그랩에 투자를 단행했지만 100억달러 가까이 투자한 소프트뱅크와 비교하면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가 그랩에 투자한 목적이 전기차 공급처 확보를 위한 조처라는 시각도 있다.

현대차의 해외진출 선택이 국내 속사정 때문이라는 의견도 힘을 받고 있다. 한국에선 차량공유 서비스가 불법이다. 자율주행차의 공공 도로 시험 운행도 제한돼 있다. 되레 25만 택시기사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은 승차 공유 금지·규제 관련 3개 법안을 통과시킬 기세다. 카카오는 카풀 시범 서비스를 중단했고, 택시업계는 시범 서비스가 아니라 사업 자체를 접겠다는 확답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속사정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기업의 전장산업 진출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80억달러에 하만을 인수해 전장사업 진출을 꾀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추가로 회사를 인수할 기미도 없다. LG는 전장산업에 힘을 쏟고 있지만 LG그룹 내 자동차 전장을 맡는 VC사업본부는 2013년 신설된 이후 지난해 3분기까지 적자다. 3분기 영업적자는 429억원으로 전 분기와 비교해 100억원 늘었다.

미래 산업으로 분류되는 공유경제에 참여 중인 업체들의 고민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차량공유 플랫폼 개발업체 고위 관계자는 “국내 운송시장이 8조원이 넘는데 해외 기업들이 호시탐탐 들어올 기회만 노리고 있다”면서 “차량공유 시장 골든타임이 지금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지만, 리프트가 자율주행까지 내세운 차량공유 서비스 등 글로벌로 눈을 돌린다면 이미 늦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