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초부터 자동차와 금융, IT와 소매 등 주요 업종 전반에 걸쳐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감원과 이익 전망 하향 조정이 꼬리를 물고 있다.    출처= The Economic Times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지난해 11월, GM의 메리 바라 최고경영자(CEO)가 북미 5개 공장 폐쇄와 전세계 사업장에서 15%의 인원을 감축하겠다는 파격적 구조조정안을 내놓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가 GM에 베푼 것을 잊고 있다”며 비난했고,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해당 지역 정치인들이 줄줄이 GM을 찾아 공장 폐쇄 철회를 요구했지만 메리 바라 CEO의 의지는 확고했다. 구조조정 결정은 애당초부터 정치적 결정이 아닌 회사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었기 때문이다.   

GM의 구조조정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2009년 GM의 파산 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GM은 이미 북미에서 1만 8000명의 희망퇴직 모집을 시작했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은 자동차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새해 벽두부터 업종을 불문하고 감원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미국 민간 우주개발기업 스페이스X에서부터 헤지펀드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경기 둔화와 신사업에 따른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연초부터 자동차와 금융, IT와 소매 등 주요 업종 전반에 걸쳐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감원과 이익 전망 하향 조정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한 관세 전면전과 이에 따른 중국의 성장 둔화, 여기에 널뛰기를 연출하는 금융시장까지 구조적 악재가 맞물린 데 따른 후폭풍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는 자동차 산업은 향후 5년 동안 과거 50년 보다 더 큰 변화를 맞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World Economic Forum

변화의 길목에 선 자동차 업계 - ’카마겟돈’의 공포   

자동차 업계는 성장 둔화에 따른 선제적 구조조정과 신사업 개척 경쟁에서 가장 민감한 산업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위시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요 부진과 디젤 규제, 전기차·자율주행차·승차공유로의 패러다임 변화에 자동차 업계가 긴장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자동차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전통적 자동차 회사의 앞날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일 프라운호퍼 노동경제연구소는 2030년까지 독일에서만 엔진과 변속기 생산과 관련된 기술 인력의 3분의 1(7만 5000여명)이 실직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폴크스바겐 최고전략책임자인 미하엘 요스트는 "2040년쯤이면 세계 어느 자동차 회사도 더 이상 내연기관차를 판매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GM에 이어 미국 포드자동차도 유럽 공장 15곳에서 수천 명을 감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재규어랜드로버도 직원 4500명을 줄이기로 했다. 닛산은 멕시코에서 1000명을 감원하고 폴크스바겐은 독일에서만 7000명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2018년 역대 최고치의 영업 이익이 예상되지만, 도요다 아키오 CEO는 '위기 경영'을 선언하고 지난 1일 임원을 55명에서 23명으로 줄였다. 상무·부장·차장 등을 '간부'라는 직급으로 통폐합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지각변동에 대비,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이 같은 구조조정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현지시간) "자동차 업계에 '카마겟돈(car-mageddon)' 공포가 커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 골드만 삭스는 무역 전쟁의 다음 피해자는 스타벅스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출처= Pinterest

무역 전쟁의 직격탄 먼저 맞은 희생자들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 하향 조정의 배경에는 중국의 성장 둔화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 3일 애플이 지난해 4분기 매출액 전망치를 앞서 하향 조정하며 큰 파문이 일어났지만, 골드만 삭스는 스타벅스가 애플의 뒤를 이은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스타벅스는 이미 지난 해에 조직구조 개편을 위해 350명의 사무직 직원을 포함해, 전세계 인력의5%를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명품 브랜드와 유통 업체도 중국의 경기 둔화에 따른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 티파니(Tiffany)와 루이뷔통(Louis Vuitton)의 모기업 LVMH이 중국 현지 매출 둔화를 경고했고, 메이시스(Mcay‘s)와 콜스(Kohl’s)도 무역전쟁의 파장으로 지난해 연말 쇼핑시즌 매출이 기대치에 못 미쳤다고 밝혔다.

경기 영향을 많이 타는 운송업과 소매업에서도 구조조정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아메리칸에어라인과 델타항공, 페덱스는 각각 지난해 4분기 실적 전망치를 낮추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페덱스의 프레드 스미스 CEO는 “미·중 무역갈등이 여러 어려움 중 가장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다’(Darkening Sky)며 세계 경제의 올해 성장률이 2%대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무역량 및 산업 생산 감소, 급증한 부채 등이 기업 생존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IT, 금융권도 인력 감원 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출처= The Business Times

IT에서 금융업까지 확산되는 감원 바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미국의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도 지난 12일(현지시간) 감원을 결정했다.

스페이스X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매우 어려웠지만 반드시 필요한 결정이었다. 행성간 위성을 쏘고 우주 기반 인터넷을 하려면 스페이스X는 더 군살 없는 회사가 돼야 한다. 우리 팀의 재능 있고 분투하는 일부 구성원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감원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스페이스X는 많은 투자금을 화성 탐사나 유인 우주선 개발 등에 쓰고 있다. 스페이스X는 최근 인류를 달과 화성으로 실어나를 유인 우주선 '스타십(Starship)'을 처음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한편,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11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감원 한파가 매섭게 불고 있다고 전했다. 총 3조달러(3350조억원) 규모의 글로벌 헤지펀드 시장에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아예 문을 닫는 헤지펀드들도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이 지수나 자산바스켓을 추종하는 저수익 패시브 펀드로 몰리고 있는 가운데, 금융산업 전반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기술로 대체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또한 글로벌 금융 중심지인 영국 런던에 자리잡은 헤지펀드들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앞두고 채용 속도를 늦추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블랙록(BlackRock)은 지난 10일, 총 인력의 3%인 500명을 감원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2016년 이후 최대 규모다. 블랙록은 이날부터 구조조정이 시작됐으며 향후 몇 주간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블랙록은 사업 일부를 단순화하고, 기술 상품, 비유동적인 대안 투자와 은퇴상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이번 인원 감축으로 절감된 자금을 재투자할 방침이다.

블랙록은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투자자들의 선호도가 바뀌고 있으며 우리가 운영하는 생태계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변화를 통해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성장 기회에 지속해서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투자은행 모간스탠리도 수익이 저조한 채권, 주식, 리서치 부문에서 감원을 진행 중이고, 대규모 퀀트 펀드(Quant Fund) 업체인 AQR 캐피탈 매니지먼트(AQR Capital Management) 역시 최근 실적 부진에 따른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대형 수탁은행 스테이트스트리트(StateStreet)도 최근 고위급 경영진을 15% 감축하는 수순에 돌입했다.

스페인 최대 은행 방코산탄데르(Banco Santander)도 총 직원의 11%인 1400명의 인력을 감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스페인의 카익사방크(CaixaBank)도 감원 협상을 위해 노조와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본 노무라증권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손실을 상쇄하기 위해 유럽에서 추가 감원에 나설 예정이다.

▲ 다국적기업들이 미·중 무역전쟁, 신흥국 침체 지속 등 갈수록 악화하는 글로벌 경기에 대비해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출처= Ikea

경쟁력 강화 위해 선제적 대응하는 기업도   

스웨덴 가구기업 이케아(IKEA)도 오는 2020년까지 75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케아는 전 세계 30개국에 367개 매장을 지녔으며 직원 수는 16만명에 달한다. 다만 이케아는 “보다 심플하고 효과적·효율적인 사업운영을 위한 것”이라며 “감원은 전 세계에서 실시하지만 매장 근무 인력이나 배송 부문은 대상이 아니다”고 설명하고, 디지털 환경 기반 구축을 위해 향후 2년간 1만 1500명을 채용하고 약 30개의 신규 매장 오픈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의 다국적 화학·제약기업 ‘바이엘(Bayer)’도 지난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 세계 직원의 10%인 1만 2000명을 감원하고 핵심부문 외 동물 건강제품 사업 부문과 자외선 차단제 코퍼톤, 풋케어 제품인 닥터숄 등의 사업부문과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는 등 대대적 구조조정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바이엘의 감원 규모는 전 세계 바이엘 직원 11만 8200명의 약 10%에 해당한다. 몬산토와 합병으로 종자 사업부문에서 4100명이 감원되는 것을 비롯해 일반 기업운영 및 지원 기능, 비즈니스 서비스 등의 부문에서 5500~6000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베르너 바우만 바이엘 회장은 “이번 구조조정은 제약, 소비자 건강, 종자 사업 등 핵심 사업부문에 더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엘은 이번 구조조정으로 당장 44억 유로(5조 6000억 원)의 비용부담이 발생하지만 2022년 이후 매년 26억 유로의 비용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WSJ은 다국적기업들이 미·중 무역전쟁, 신흥국 침체 지속 등 갈수록 악화하는 글로벌 경기에 대비해 선제 대응에 나섰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