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회사에서 당신에게 이런 제안이 들어 왔다. 당신의 동료가 몇 개월의 병가를 마치고 돌아올 예정인데, 그녀(혹은 그)의 복직 대신 보너스를 받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 동료의 휴직에도 회사와 다른 동료들 모두 별다른 공백을 느끼지 못한 것 같으니, 차라리 그 금액의 일부를 남은 사람들과 당신에게 보너스로 지급하고 복귀는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만약 당신이 ‘보너스를 받지 않고 동료의 복귀를 선택하겠다’는 결정을 했다면 다음과 같은 가정을 덧붙여 보자. 하나, 당신은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돈과 늘어나는 빚으로 허덕이고 있으며, 둘, 이번에 지급되는 보너스를 받지 않으면 당장 이번 달에 갚아야 할 빚의 일부를 연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 어떤가 지금도 당신은 처음과 같은 선택을 하겠는가?

반대의 경우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하나, 보너스가 당신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당장의 생활을 바꿀 정도는 아니며, 둘, 당신의 동료는 만약 복직하지 못할 경우 당장 이번달부터 생활고에 허덕여야 할 상황이라는 가정을 덧붙여보자는 것. 어떤가. 지금도 처음과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이런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딜레마의 맞은편, 즉 복직을 앞둔 ‘동료’의 시선으로 주어진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오랜 우울증 치료 후 복직을 앞둔 산드라에게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심지어 이미 2대 14라는 투표 결과로 그녀에게 해고 통보가 내려진 상황. 하지만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제보가 들어와 월요일 아침에 재투표가 결정되었을 뿐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 마음을 돌리기 위해 동료를 찾아갈 때마다 그녀는 개개인의 어려움과 죄책감, 좌절과 희망을 마주하게 된다.

<내일을 위한 시간> 속 동료들, 그리고 글의 서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철학에서는 ‘실험 도덕철학’이라는 분과를 통해 연구하고 있다. 실험 도덕철학이란 ‘인간 사회와 동물 사회에 통용되는 도덕 규범의 근원을 탐구하고 이 규범들의 가치를 성찰하는 학문’이다. 다양한 실험 사례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은 사고실험이다. 사고실험이란 도덕에 관한 당황스러움을 유발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허구의 이야기를 말한다. 짧고, 간단하고, 도식적이며, 도덕적 성찰에 유용하도록 해당 요소들을 조작 가능한 것이 특징. 앞서 동료의 복직과 보너스라는 선택지가 주어지고, 선택에 따라 요소를 조작해 또다른 선택을 확인하는 것이 이런 사고실험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그리고 유명한 사고 실험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쓴 책 <국가>에 등장한다. 이른바 ‘기게스의 반지’인데 내용은 대강 이렇다. 어느 날 기게스라는 사람이 기이한 반지를 얻게 된다. 이 반지는 손가락에 끼고 조금 돌리면 반지를 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이른바 ‘투명 반지’이다. 착한 목동에 불과했던 기게스는 반지의 힘을 이용해서 국왕을 죽이고 왕비를 부인으로 삼아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다. (참고로 톨긴의 <반지의 제왕>은 이 기게스의 반지에서 모티브를 얻어 쓰여진 작품이다.) 이 일화를 통해 플라톤은 제한되지 않은 비밀스러운 힘을 얻게 되면 어떤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부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밖에도 촌각을 다투는 중한 부상자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경솔한 보행자 한 명을 죽이는 행위는 바람직한지를 묻는 실험, 정원 초과의 구명보트에서 나치 전범과 수 십 명의 사람을 살린 강아지 중 누구를 먼저 바다에 빠뜨릴지를 묻는 실험 등 철학자들은 다양한 사고실험을 통해 우리를 윤리적 딜레마로 몰아 넣는다.

<내일을 위한 시간>의 마지막 순간, 산드라는 결국 8대 8이라는 결과로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리고 결과를 마주한 뒤 그녀는 남편에게 ‘나 행복해’라고 말한다. 그녀가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석은 다양하겠지만, 문득 이 글을 쓰며 이것이 우리가 마주하는 윤리적 혹은 도덕적 상황이 반드시 하나의 결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은유적 표현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똑같은 조건이 주어졌음에도 자신의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감정을 경험한 우리와 그녀의 동료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