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가가 배럴당 40달러에서 45달러에서 계속 머물 경우, 에너지 부문의 고용과 기업 투자는 상당한 압박을 느끼게 될 것이다. 휘발유 가격의 하락이 오늘날 미국 경제에 양날의 칼임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출처= Daily Express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사우디 아라비아를 향해 지금보다 더 낮은 유가를 유지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최근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맹주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감산은 물론 수출량 감축 발언을 연이어 하며 국제유가를 단기간에 급등시키고 있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기대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너지 업체들이 울상을 짓고 있는 저유가에 대해 유독 강력하게 방향성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유가 하락에 따른 경제의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을 살펴보면 트럼프의 의도를 짐작할수 있게 된다. 

유가 하락은 자동차의 연료 탱크를 가득 채우려는 운전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지만, 지난 2014-2016년 석유 파동 당시 에너지 가격이 폭락하면서 현대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원유가 배럴당 26 달러로 추락하면서 수십만 명의 석유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었고, 수십 개의 에너지 회사가 파산했다. 기업 투자는 크게 위축됐고 에너지 회사의 주가가 폭락하며 월가는 대혼란을 겪었다.

2019년의 큰 위험 중 하나는 미국 경제가 다시 비슷한 고통을 다시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가는 9일(현지시간), 미중 무역협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50달러를 회복했지만, 지난 연말 무렵 42달러 선까지 떨어지며 지난 3개월 동안 40% 넘게 폭락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가 더 낮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미국의 유가는 9일 미중 무역협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50달러를 회복했지만, 지난 연말 무렵 42달러 선까지 떨어지며 지난 3개월 동안 40% 넘게 폭락했다.   그래프= 블룸버그 캡처

미국은 2014-2016년 석유 파동을 겪은 이후 더 큰 에너지 국가가 되었다. 이른 바 셰일 혁명에 힘입어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최근 1973년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추월했다. 그러나 유가가 계속 떨어진다면, 텍사스, 노스다코타, 오클라호마 같은 에너지 주의 일자리 증가는 다시 반전될 수 있다.

유가정보서비스社(Oil Price Information Service, OPIS)의 톰 클로자 에너지 분석팀장은 “유가가 지금처럼 계속 하락한다면 우리는 많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가 급락의 영향

유가 하락은 미국 경제에서 더 이상 호재만은 아니다. 미국은 에너지의 가장 큰 소비국이자 최대석유 생산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컨설팅 회사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Pantheon Macroeconomics)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이안 셰퍼드슨은 고객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대통령이 유가 하락을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새해 첫 날 올린 트위터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두 번이나 저유가의 이점을 강조했다.

그는 트위터에 “유가가 올해에 계속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현상이지요! 유가가 이렇게 낮게 떨어지는 게 단지 우연이라고 생각합니까?(자신이 영향력을 미쳤다는 의미로 해석됨). 저유가는 또 다른 세금 인하와 같습니다!”고 썼다.

올해에도 유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그의 지적은 맞다. 미국자동차협회(American Automobile Association, AAA)에 따르면 지난 주 일반(regular)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2.25달러로 한달 전(2.47달러)와 1년 전(2.49달러)에 비해 10% 가량 낮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텍사스, 오하이오, 미주리 주를 포함한 9개 주에 사는 사람들은 갤런 당 평균 2달러 미만의 가격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애널리스트들은 휴일 시즌 운전 주행이 비교적 많은 기간이 끝나는데다 악천후로 인해 사람들이 자동차 운행을 줄이면서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사우디의 감산 움직임과 미중 무역협상 기대로 국제 유가는 연초 들어 반등하고 있지만) OPIS의 클로자 애널리스트는 2019년 휘발유 가격은 평균 갤런 당 약 2.55달러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평균 가격은 2.72달러였다.

이것은 최근 주식 시장의 폭락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미국 운전자들에게는 분명 좋은 소식이다. 애널리스트들은 휘발유 가격의 하락이 이번 연말 연시 쇼핑 시즌에 6년 만의 기록적인 매출을 촉발한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금융컨설팅업체 아메리프라이즈 파이낸셜(Ameriprise Financial)의 러셀 프라이스 이코노미스트는 "휘발유 가격은 미국 소비자들의 심리를 선행적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휘발유 가격의 하락(또는 상승)이 주머니 사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저소득층 가구의 경우 더욱 그렇다. 아메리프라이즈는 1년 동안 휘발유 평균 가격이 10% 오르면 약 140억 달러(15조 7000억원)의 소비 위축이 일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 애널리스트들은 휘발유 가격의 하락이 지난 연말 연시 쇼핑 시즌에 6년 만의 기록적인 매출을 촉발한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출처= The Corner

유가에 '죽고 사는' 주변 산업들

이제 유가 하락의 부정적 측면을 보자. 셰일 오일의 생산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미국 경제에서 에너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 가격이 폭락하면 에너지 회사들은 지출을 동결해 다른 부문에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

판테온의 셰퍼드슨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2014-2016년 석유 파동 당시 석유 산업의 투자 지출은 1490억 달러(167조원)나 감소했다. 유가 하락이 소비자들에게는 좋았지만 전체적인 영향은 중립적이지 않았다. 금융, 운송, 장비 제조업체들을 포함한, 석유 산업에 의존하는 모든 부문에서의 투자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셰퍼드슨은 2014-2016년 석유 파동으로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14년에 0.3% 포인트, 2015년에 0.2% 포인트 떨어졌다고 추정했다.

텍사스에는 이미 심각한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텍사스의 퍼미언 분지(Permian Basin)는 이제세계 최대 유전의 한 곳으로 변해 버렸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이 지난 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석유 및 가스가 주를 이루는 텍사스주의 제조업 생산지수는 지난 12월, 2016년 8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앨러스 연준 조사에서 한 기계 제조 회사의 대표는 "우리는 석유 가격에 따라 죽고 산다"며 "이곳의 유전들이 부진하면 우리 같은 제조업의 주문도 즉시 줄어든다."고 말했다.

수백만 개의 일자리

석유 산업은 텍사스, 콜로라도, 노스 다코타 같은 주의 주요 고용주다.

미국 석유 연구소(American Petroleum Institute)는 석유 및 가스 산업이 전국적으로 1030만 개의 미국 일자리를 지원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아마도 플라스틱, 화학, 수송, 트럭 운송, 주유소와 같은 관련 산업을 모두 망라한 숫자일 것이다.  

2014-2016년파동 시 미국 석유 생산은 큰 타격을 입었지만, 유가가 다시 회복되고 기업들이 더 효율적으로 채굴 방법을 찾아냄에 따라 빠르게 최고치를 회복했다. 사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이뤄낸 일자리 창출 공약 이행은 바로 이런 에너지 주(州)들에서의 일자리 증가 덕분이었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오클라호마주의 실업률은 2016년 11월 4.1%에서 지난해 11월 3.3%로 떨어졌다. 퍼미안 분지의 본산인 뉴멕시코주 역시 같은 기간 실업률이 6%에서 4.6%로 감소했다. 그리고 텍사스주에서는 36만 5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늘어났다.

"만약 유가가 배럴당 40달러에서 45달러에서 계속 머물 경우, 에너지 부문의 고용과 기업 투자는 상당한 압박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그것이 휘발유 가격의 하락이 오늘날 미국 경제에 양날의 칼임을 새삼 상기시켜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