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지난 9일 반포동에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반포주공1단지 3주구는 이미 7일 HDC현대산업개발의 재건축 사업 우선협정대상자지위를 박탈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여기에 사건이 하나 더 얹혔다. 양쪽으로 갈라진 조합원들은 서로가 금고를 훔쳐간다며 나무라고, 이른바 ‘용역’이 등장해 위력을 행사했다는 소식이었다.

뒤늦게 달려갔을 때는 이미 사태가 멎어있었지만 조합원 사무실은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기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 서로의 억울한 이야기, 상대방의 불법 행위들을 쉴 새 없이 털어놓았다.

사연인즉 이랬다. 현대산업개발과의 계약 파기 여부를 두고 조합원 총 1622명 중 857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총회가 열렸다. 그 가운데 745명이 파기에 찬성했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계약 파기를 반대하는 입장의 조합원들은 서면 결의서를 확인하자며 조합 사무실 금고를 열어보자고 주장했다. 실제로 10일 사무실 CCTV에 조합장이 금고를 열어 무언가 작업을 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파기 반대 측 조합원들은 해당 내용을 모두가 볼 수 있게 공표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지 않겠냐며 역설했다.

반대로 조합장을 위시한 파기 찬성론자들은 1차 경쟁 입찰 시 현산 측이 제안한 내용과 1차·2차 수의계약 당시 제시한 혜택이 갈수록 줄어든다며 파기의 당위성과 절차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혁신안’이라는 이름의 정체모를 시공계획이 껴드는가 하면, 계약이행보증서, 시공보증서도 윤색됐다는 내용이었다. 점차 상황이 실거주민에게 불리해지도록 전개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내놓은 고육지책이라는 듯 들렸다.

한 술 더 떠 현대산업개발은 십수명의 직원을 사무실에 파견했고, 그중 덩치 큰 직원들은 건물 입구에 떡하니 서 출입을 막았다. 그들이 소위 ‘용역’이든 아니든 이는 물리적 위협이었다. 건설현장에 으레 등장하는 과거의 악습이 반복되는 모습이었다. 조합사무실 앞 골목, 상가 카페는 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조합원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도중에도 그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모골이 송연했다.

물론 기업으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산이 유튜브에 게재한 ‘혁신안’ 홍보영상은 조합이 제기한 대안설계의 문제는 통상적으로 허용돼 온 부분이고, 공사비 상향의 가능성은 현산 측이 부담하겠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현대산업개발은 임시 총회의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효력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7일 기각됐다.

결국 경찰이 온 이후에야 사태는 진정되는 듯했지만, 서면결의서가 담긴 금고를 두고 한쪽은 ‘내용을 확인하자’, 다른 한쪽은 ‘훼손의 위험이 있다’면서 그럴 수 없다면서 대치를 계속했다.

그 한가운데를 비집고 들어간 기자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양측 모두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추고 있었고, 어느 쪽에도 동조하기 어려웠다. 어느 진영의 조합원이든 자기 이익을 챙기고 보호하겠다는 권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본 광경은 한 진영은 상가 조합원이 다수를 점하고, 한 진영은 주민이 다수를 점하는 등 사안에 따라 뚜렷하게 이권이 나뉘는 모습이었다.

어줍지 않은 양비론을 펼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사태가 여기에 이른 데에는 모두의 크고 작은 지분이 있다. 결국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 하는 구조에 갇히게 됐다는 것이다. 그 유불리 때문에 조합원 사이에 갈등이 싹트고, 당장 재건축 추진도 늦춰지면서 공동의 이익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기업은 신뢰를 깎는 행위를 반복하다 약 8087억원의 수주를 놓쳤고, 당일 주식 매매가도 2000원가량 하락했다. 향후 수익성에 악영향을 끼칠 줄 몰랐을까? 왜 이 양상은 해를 두고 반복되는 것일까? 기자 역시 건조하게 기사를 완성할 뿐이지만, 영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이런 행태를 보인 재건축 사업지는 한두 군데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무탈하게 끝마친 사업지를 꼽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결국 많은 생채기만 남긴 채 그들은 반포동 터전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상투적이지만 대화와 절차를 강조하고 싶다. 소통 없이 곪다가 지쳐버린 재건축 사업지도 서울 시내엔 수두룩하다. 또한 정관과 절차는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사업을 마무리 짓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상투적인 만큼 기본에 충실했으면 한다. 요만큼의 고지에 서고자 이를 스스로 어기는 행태가 초래할 결과는 극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