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강수지 기자] 화요일 오후 7시. 다섯 손가락이 바빠진다. 아니, 열 손가락이 바쁘다.

두 손은 바삐 움직이느라 분주하지만 얼굴에는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온다. 여기저기서 웃느라 손가락이 꼬인다.

걱정, 근심 없이 그저 학교에 놀러온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같다. 이 모든 건 맑고 순수한 농아인 아이들의 영향이리라.

2018년 12월 11일 화요일 저녁, 따뜻했던 신한카드의 수어 동호회 활동 모습이다.

 

신한카드, 금융업계 최초 수어 상담 센터를 만들다

신한카드는 금융업계 최초로 지난 2012년 농아인 고객을 위한 수어(수화) 상담 센터를 만들었다.

문동권 경영기획그룹 그룹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신한카드와 수어의 만남. 올해로 8년째다.

신한카드의 수어 동호회는 수어 상담 센터에 비해 역사가 길지 않다.

서동빈 차장이 지난 2017년 6월 설립한 ‘작은손가락’이라는 이름의 수어 동호회.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작은손가락을 만든 서동빈 차장은 “지난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 때 청각장애인을 위해 무대에 올라온 수어통역사를 보고 수어 동호회를 설립하게 됐다”며 “당시 수어통역사가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피아노 건반을 치는 모습부터 기타를 치는 모습 등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날의 감명으로 직장 동료들과 함께 수어를 익히고 싶은 생각이 들어 행동으로 옮겼다는 서동빈 차장.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손가락은 화요일 저녁 7시면 25명의 멤버들과 함께 긍정과 베풂의 에너지를 서로 공유한다. 심지어 멤버 중에는 멀리 대전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직원도 있다.

작은손가락은 회사 내에서 관심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화요일 저녁 7시라는 모임 시간에 따른 부담감으로 관심도가 실제 가입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인사 몇 마디로 시작한 ‘수어’가 안겨준 대상의 기적

윤초희(8년 차) 강사와 동호회장인 박성용 과장을 주축으로 모인 수어 동호회 멤버들. 이들의 모습은 조용하고 차분할 줄만 알았던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잘 되지 않는 동작 하나하나에도 서로 관심을 가져주며 웃어주는, 따뜻하면서도 활기찬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이었다.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이렇게 수어를 시작한 그들은 지난 2017년 9월 9일 제12회 서울특별시 수어문화제에 참가해 대상을 받기도 했다.

작은손가락 멤버 조유희 씨(16년 차)는 “처음에는 수어로 겨우 인사 몇 마디만 가능했기에 청각장애인들의 축제인 수어문화제에 참석해 잘할 수 있을지 막연했다”면서도 “연습을 거듭할수록 욕심이 생겼고, 각자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모여 공연을 완성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대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서로 배려하면서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려고 애썼던 연습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며 “대상을 탄 뒤 서로가 서로에게 박수를 치며 고생했다고 말하던 우리의 작은 기적의 씨앗은 곧 작은손가락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고등학교 특별 활동으로 수어를 처음 접하게 됐으나 폐강돼 지속적으로 배우지 못했다던 조유희 씨. 그 아쉬움으로 선택한 작은손가락 동호회가 그에게 배움에서 더 나아가 특별한 경험까지 하게 해준 것이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작은손가락의 멤버가 된 김정수(16년 차) 씨도 대상을 탔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는 “매순간이 늘 인상적이지만 수어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룬 업적인 수어문화축제 대상 수상은 정말 특별했다”고 회상했다.

 

작은손가락, 농아인 금융 교육에 앞장

작은손가락은 2017년 12월 21일에는 제14회 전국농아인 체육대회를 지원했으며, 2018년 4월 14일에는 서울농학교 과학의날 기념 드론 조립 행사를 진행했다. 또 같은 해 10월 24일에는 서울 농학교에서 금융 교육을 진행했다.

수어 동호회 모임 시간, 멤버들에게 최선을 다해 즐겁게 수어를 가르치는 윤초희 강사.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그는 “과거 농아인을 상대로 한 금융사기가 있었다”며 “이들의 금융 교육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작은손가락 멤버들은 농아인의 금융 교육을 위해 밤새 직접 수어 연기를 진행해 동영상을 찍어 교육 자료를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농아인들을 위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진행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신한카드에 입사했다는 윤초희 강사의 열정이 뜨겁다.

윤초희 강사는 수어통역과를 졸업한 뒤 신한카드에서 수어 상담 업무를 맡고 있다. 2014년에는 모바일 수어 상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후 2015년에는 박상수 차장과 함께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어디서든 농아인들이 수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윤초의 강사는 “문화제에 참가했을 당시 상을 받은 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직접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했던 청각장애인들”이라며 “무대 앞에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20분 동안 무릎을 꿇고 있던 내 모습을 보고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다가와 마음을 표현해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들이 가르쳐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작은손가락은 수어문화제에 함께 참가해 인연이 된 농아인들과 가끔 동호회 활동을 함께 하기도 한다. 이들은 직원들의 수어 배움을 돕고, 직원들은 이들과 수어로 대화하며 실전 체험을 경험한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고 돕고자 하는 진심이 통해서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작은손가락 멤버들은 그들을 통해 그들의 세상 이야기도 듣는다. 우리가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누린 것들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것들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예를 들면 우리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때 자유롭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가 없다. 보고 싶은 영화가 국내 영화라면 자막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한국 영화에 자막을 넣는 것을 꺼리고 있다. 왜냐하면 잘 안 팔리기 때문이다.

농아인들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농아인협회에 신청을 해, 상영 결정이 되면 정해진 날짜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영화관을 찾아가 영화를 봐야 한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누렸던 것들을 그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그들과 함께 수어 공부를 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상처받고 스스로 감내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실제 일부 농아인의 경우는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으며, 말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지만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는 이들마저도 입을 닫게 만들고 있다는 현실.

박성용 동호회장은 “올해에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더 많이 할 것”이라며 “특히 더 많은 직원들과 함께 더 많은 농아인 학생들에게 금융을 교육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따뜻한 금융을 실천하는 신한카드는 수어동호회가 행사를 진행하거나 대회에 나가는 등에 있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