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의 탄생> 그레그 스타인메츠 지음, 노승영 옮김, 부키 펴냄

 

[이코노믹리뷰=최혜빈 기자] ‘유럽의 역사를 바꾸고 자본주의의 토대를 놓은’ 자본가 야코프 푸거에 대한 책. 그는 군소 가문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부상, 가톨릭교회의 대금업 금지 철폐, 면죄부 판매와 종교개혁, 한자동맹의 붕괴, 복식 부기의 전파, 경제 강국의 판도 변화,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 격화 등 15~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들을 모두 겪었다. 유럽은 이 시기를 통해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했고, 야코프 푸거는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중소 규모의 직물 매매를 가업으로 물려받았고, 투자에 가까운 채권 방식의 대출을 통해 유럽 최고의 부를 쌓았다. 푸거는 무역이 활발해지고 전쟁이 빈발하던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가치가 높은 권리가 은과 구리 광산의 채굴권과 소유권임을 감지했다. 막대한 규모의 돈을 빌려야 하는 처지에 있었던 지기스문트 대공에게 돈을 빌려주고, 상환 시까지 지기스문트가 통치하던 유럽 최대의 은광 도시 슈바츠의 모든 수입을 갖기로 했다. 푸거는 이 방법으로 막대한 은을 확보했고 이는 여유 자금이 되었다.

그는 여유 자금을 가지고 당시 리스크가 높지만 그만한 잠재수익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던 구리 산업에 뛰어들었다. 이탈리아·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를 잇는 아르놀트슈타인을 매입해 당시 가장 큰 구리 가공 공장을 지었다. 그리고 막시밀리안이 독일 상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평화 조약을 체결하자 헝가리로 가서 구리 광산을 매입했다. 구리를 통해 부를 축적한 그를 견제하는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푸거는 신학자들을 동원했으며 교황 레오 10세를 직접 움직이기까지 했다. 또한 황제 선거에 자금을 대면서 인쇄기 통제권을 획득했고 그는 언론의 자유를 손에 넣었다. 이외에도 그는 베네치아에서 습득한 복식 부기를 개량해 이를 알프스 이북에서 활용했고, 이른바 ‘푸거 뉴스레터’라고 불리는 정보망을 구축하기도 했다. 푸거는 유럽이 격동의 시대를 겪던 때에 세계 최대의 부를 쌓았던 인물이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근대 초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