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화웨이와 ZTE 장비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중 무역전쟁이 대외적으로 화해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두 수퍼파워의 신경전은 더욱 증폭되는 분위기다.

행정명령은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에 발동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동맹국들 사이에서 반(反) 화웨이 정서도 빠르게 번지는 가운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웨이 장비를 사용한 LG유플러스에도 불똥이 튈 전망이다.

궁지에 몰린 화웨이 “출구가 없다”

로이터 통신은 26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나 ZTE 등 중국 업체의 장비를 금지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와 ZTE 등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판단 아래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행정명령은 이르면 내년 1월 발동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행정명령에 화웨이나 ZTE를 직접적으로 명시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로이터는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와 ZTE를 정조준할 것으로 해석했다.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동원해 사실상 화웨이에 대한 압박수위를 최고수준으로 올릴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는 미중 무역전쟁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최초 미중 두 나라가 서로를 향한 관세폭탄을 던지기 직전, 런청페이 화웨이 회장은 사내 메일을 통해 “쓸데없는 반미감정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등 몸을 사리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한 상태에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화웨이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보복에 나설 경우 중국은 물론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화웨이는 미국에게 가장 쉬운 타깃이 된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올해 초, 미국의 타깃은 우선 ZTE였다. ZTE는 지난 2017년 3월 이란과 북한에 대한 수출 금지령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미국은 4월 16일 ZTE를 대상으로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발표하며 압박했고, 그 여파로 ZTE는 크게 휘청였다. 지난 5월 9일 홍콩증권거래소에 ‘회사의 영업활동이 중단됐다’는 자료를 보낼 정도로 존립을 위협받았다.

ZTE 사태는 몇 차례 변곡점을 돌아 간신히 봉합수순에 이르렀으나, 다음은 화웨이가 타깃이 됐다. 중국의 ICT 기술굴기 중심에 화웨이가 있고, 화웨이를 꺾지 않으면 시진핑 중국 국가 수석이 지향하는 ‘중국몽’을 부술 수 없다는 미국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유착하고 있다는 주장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런청페이 화웨이 회장은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이며, 그는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의 딸과 결혼했다. 화웨이의 성장에 중국 정부의 도움이 있었다는 말까지 파다한 가운데, 화웨이가 비상장 기업으로 활동하는 것도 중국 정부의 입김을 숨기려는 의도된 전략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소위 백도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유착을 넘어, 아예 중국 정부의 데이터 탈취 선봉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논리다. 화웨이는 반박하고 있다. 화웨이는 최근 “현재 전 세계 주요이동통신사, 포춘(Fortune) 500대 기업 및 170여 개 이상 국가의 고객과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화웨이는 철저한 사이버 보안 제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문제 제기 받은 사안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화웨이가 반발하고 있으나 분위기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1월23일 미국 정부가 우방국을 대상으로 중국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WSJ>는 “미국이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동맹국가 관계자들과 통신사 경영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며 “화웨이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들에서 통신 개발 지원을 늘릴 계획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무역전쟁 극적인 화해무드...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의 파도속에서 화훼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커졌으나, 두 수퍼파워가 지난 1일 G20 회담을 기점으로 90일간의 화해를 공식화하며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G20 회의가 열렸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성명을 발표해 “미국과 중국은 90일 동안 지식재산권 보호와 비관세장벽, 사이버 침입, 절도 등 문제에 대한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협상에 나설 것”이라면서 지난 9월24일부터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고 있던 관세율 10%를 내년 1월 1일 25%로 인상하려던 계획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에 이르며 중국의 반발로 무산된 퀄컴의 NXP 인수 재추진설이 탄력을 받는 등, 모처럼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미국의 요청을 받은 캐나다 정부가 현지에 체류하고 있던 런청페이 화웨이 회장의 딸인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전격 체포하며 사태는 급반전을 맞았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9일(현지시간) 언론을 통해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체포는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중국은 캐나다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한편 애플 기기를 쓰는 직원을 대상으로 승진을 보류하는 등 반미감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멍 부회장은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여전은 계속됐다. 미국은 물론 미국의 우방국까지 하나, 둘 화웨이 장비 채택을 꺼리며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내년 1월 행정명령까지 발동되면 미중 무역전쟁의 90일 휴전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미국이 화웨이를 겨냥한 이유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화웨이와 중국 정부 유착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기술 굴기를 좌초시키는 한편 미국의 ICT 제일주의를 키우기 위한 전략이 엿보인다. 특히 5G 시대가 도래하며 LTE 시대부터 몸집을 불린 화웨이는 미국 입장에서 최고경계대상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가 계속되는 이유다.

행정명령 여파 어떨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웨이와 ZTE를 겨냥한 행정명령에 서명할 경우 중국은 물론 미국의 피해도 피할 수 없다는 평가다. ZTE 제재가 단행되던 당시 미국 기업인 퀄컴이 장비 수급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했던 사례처럼, 미국과 중국 기업의 교류 금지는 중국은 물론 미국 기업에게도 타격이 될 전망이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미국의 승리가 점쳐진다. 미국은 우방국들과 함께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반면, 중국은 사실상 홀로 전투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범 중화권 기업들이 뭉쳐 미국과 그 우방국에 대항하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현실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화웨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커질수록 국내 통신사인 LG유플러스의 입지도 곤란해질 전망이다. LG유플러스는 5G 정국에서 유일하게 화웨이 장비를 사용했으며, 다른 통신사 대비 많은 기지국 숫자를 채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이 화웨이 고문으로 이동하는 한편, 화웨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스마트폰을 출시할 당시 LG유플러스와 협력한 사례도 있다. 미국이 화웨이 백도어 논란을 증폭시키며 압박수위를 높일 경우 LG유플러스도 곤란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