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신경정신과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한다. 혼자 원치 않는 유학을 다녀 왔는지 잔뜩 산만하고 불안 증세를 보이는 어느 고등학생부터 삶에 잔뜩 찌들어 지쳐 보이는 30대 초중반의 또래 직장인, 무언가 부부간의 문제로 상담과 처방을 원하는 듯한 중년 남녀까지. 대기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그래, 난 그리 대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라고 느끼는 순간도 종종 생기곤 한다. 아마 그들도 날 보며 같은 생각을 하겠지.

4월쯤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어느덧 반 년이 지났다. 상태를 인정하지 못한 게 1년쯤, 운동과 간단한 상담으로 극복해보겠다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 게 또 1년쯤이었으니, 돌이켜보면 이 병은 꽤나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진단명은 비정형 우울증. 결과를 듣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그리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요즘의 청춘이 많이 겪는 질병’이라는 식의 내용을 마주하곤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내 삶이 좀 평탄하긴 했지’하며.

얼마 전부터 운영 중인 독서 관련 유튜브 촬영을 위해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 오래 전 보았던 어느 철학자의 글을 다시 읽었다. 제목은 <피로사회>. 한국인이지만 독일에 거주하며 독일어로 글을 쓰는, 그래서 늘 번역자가 따로 있는 독특한 저자, 한병철 교수의 책을 말이다.

이 책에서 한병철 교수는 내 병에 관한, 조금 더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는 것 같다. 그가 말하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성과사회’에 해당한다. 이전의 시대가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연속성 안에서 ‘무엇무엇을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규율사회였다면, 지금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그래서 구태여 누군가 나서서 규율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다그치고 채찍질하며 가열찬 경쟁으로 내몰아 버리는 사회라는 말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는 스스로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며, 이로 인해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문제는 ‘완성’이 없다는 점이다. 자기착취적인 이른바 ‘자기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나, 한계를 두지 않은 탓에 지속적인 미성취 단계에 머문다는 것. 결국 우울증은 ‘무언가를 할 수 없을 때 생기는 것’이며, 이것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쯤 되면 이런 광고도 하나쯤 떠오르지 않나.

Nothing is Impossible(불가능은 없다)!

<피로사회>는 성과사회를 극복할 대안으로 근본적 피로를 제시한다. 성과와 효율을 맹목하는 곳에서 쌓이는 피로는 타인과의 분열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이런 인간적 유대의 결핍은 우울함을 가중시키며 스스로를 소진시키게 된다. 근본적 피로란 이런 피로에 맞서는 피로이자 유대감을 회복시키는 피로이다. 책에서는 성과와 효율의 원리를 벗어난 유희활동을 예로 든다. 마치 아이들의 놀이와 같은 행동들 말이다.

내 병을 비로소 인정한 4월부터 난 내 방식대로 놀았다. 가장 좋아하는 책 읽기 취미를 살려 유튜브를 시작했고,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매일 방을 꾸미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달리기 하는 취미를 들였고, 때때로 글을 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때때로 기쁘다.

여전히 난 매주 한 번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하고 약을 받는다. 용량을 조금 줄이기도 하고, 힘든 때는 복용 횟수를 아침과 저녁으로 늘리기도 한다. 이 병을 그리 긍정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다. 지독하게 아프고 힘들었으니까.

그렇지만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싶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얻은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다음주는 미세먼지가 걷혀 좋아하는 달리기를 매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