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지난 2014년 IFA 2014가 열린 독일 베를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나란히 기어S와 G워치R을 공개한 상태에서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졌다. 스마트워치는 시계의 정체성을 담아내야 할까? 아니면 전혀 새로운 전자기기의 정체성을 담아내야 할까?

당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마케팅팀장인 이영희 부사장은 "시계가 아니라 스마트 기기"라고 규정했다. 시계의 종주국으로 평가받는 스위스의 기술력이 튼튼한 내구력과 뛰어난 디자인이라는 심미적 강점을 가졌다면 기어S는 첨단 기술력이 시계의 형태로 스며들었다고 본 셈이다. 기어S에 통화 기능을 부여하는 등 전통적인 시계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기술 스펙트럼을 확보한 이유다. LG전자의 생각은 달랐다. LG전자는 당시 G워치R로 스마트 기기가 아니라 진짜 시계를 표방했다고 설명하며 그 정체성을 전통적인 시계에서 찾았다. G워치R이 당시로는 파격적인 둥근 디자인을 차용하고 음성 기능을 포함하지 않은 배경으로 풀이된다.

두 회사의 스마트워치 접근법이 달랐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하나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강력한 ICT 전자 제품군을 통해 시장 장악력을 높이고 있는 삼성전자는 스마트워치가 전통적인 시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스마트워치로 평가되는 점이 유리했고, LG전자는 그 반대의 이유로 '전통적인 시계'라는 전장에서 스마트워치 시장 쟁탈전에 나서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동기와 과정과는 별개로, 두 기업의 스마트워치 접근법 중 현재 가장 상식에 가까운 방식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 접근하면, 자율주행차와 전통 자동차의 상관관계에 대한 의문에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스마트워치 전성시대 "드디어 열린다"

불과 1, 2년전 웨어러블 시장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한때 포스트 스마트폰의 유력한 후보자로 여겨지던 스마트워치가 동력을 얻지 못하며 저가의 스마트밴드 중심의 시장만 발달했기 때문이다. 반전은 애플이 시작했다. 애플워치가 전격 발표되며 글로벌 웨어러블 시장의 패권이 조금씩 스마트워치 시장으로 수렴됐기 때문이다. 현재 애플워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시계다. 당연히 글로벌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애플워치4까지 출시되며 시장 장악력은 점점 커지는 중이다.

전반적인 시장의 흐름도 고무적이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글로벌 웨어러블 시장은 2021년 2억2230만대의 출하량을 기록해 연 평균 18.4%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여기서 저가의 스마트밴드는 2017년 무려 39.8%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나 2021년 21.5%로 줄어들고, 2017년 27.9%의 점유율을 기록하던 스마트워치는 같은 기간 32.1%의 점유율 확대가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내년 글로벌 웨어러블 출고량은 올해와 비교해 25.8% 늘어난 2억2500만대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고객들은 웨어러블에 기꺼이 420억달러를 지불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트너의 선임 디렉터인 알란 안틴(Alan Antin)은 “현재 스마트워치 시장은 애플워치의 비교적 안정적이고 높은 평균판매단가(ASP)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는 글로벌 웨어러블 시장의 확대를 고가의 스마트워치가 견인하는 장면도 고무적이다. 가트너에 따르면 내년 무려 162억달러가 스마트워치 구입에 사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2020년에는 히어러블이 가세해 전체 웨어러블 시장은 1억6800만대의 출하량이 예상되며 2022년 글로벌 스마트워치 시장 출하량은 1억1500만대가 예상된다.

애플워치의 위세에 힘입어 북미 시장에서는 이미 스마트워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이마케터에 따르면 내년 미국 18세 이상 미국인 2870만명이 스마트워치를 사용할 것으로 봤다.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되는 수치며 이마케터는 인터넷 사용자 20% 이상이 내년 스마트밴드와 스마트워치를 포함한 착용형 기기를 사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 헬스 기능에 힘입어 55세 이상 800만명의 미국인도 스마트워치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웨어러블, 스마트워치 시장도 확장일로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쳰잔산업연구원(前瞻产业研究院)에 따르면, 중국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서 스마트밴드 점유율은 50.2%로 가장 높았으며 스마트워치가 41.4%로 뒤를 이었다. 두 점유율 합은 91.6%에 이른다. 중국 웨어러블 시장은 현지 제조사들의 낮은 가격과 빠른 신제품 출시 주기로 확장되고 있다. 샤오미의 후아미가 올해 28.1%의 점유율로 1위를 지키고 있으나 화웨이 등 스마트밴드는 물론 스마트워치로 무장한 도전자에게 밀리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후아미가 최근 스포츠에 방점을 찍은 어메이즈핏을 출시하고, 화웨이가 화웨이워치2를 출시한 배경이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쳰잔산업연구원(前瞻产业研究院)에 따르면, 2017년 중국의 건강 및 스포츠 웨어러블 기기 시장규모는 약 155억위안을 기록, 2023년에는 300억위안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된다. 자연스럽게 건강에 관심이 많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다.

각 제조사들의 신제품도 속속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애플이 애플워치를 출시한 가운데 삼성전자는 올해 브랜드 통합의 개념으로 기존 기어 대신 갤럭시워치를 출시했다. 갤럭시워치는 472mAh의 대용량 배터리와 스마트워치 전용 칩셋을 탑재했으며 트레킹, 수면 관리 등 다양한 기능을 탑재했다.

▲ 갤럭시워치가 공개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LG전자는 16일 LG Watch W7(LG 워치 W7)을 출시했다. 초소형 아날로그 기어박스를 탑재해 실제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본체에는 스테인리스스틸을 적용해 탄탄한 내구성과 정갈한 아름다움을 모두 갖췄다. 땀, 물 등 습기에 강하고 쉽게 변색되지 않아 야외 활동에 적합한 러버 스트랩을 기본으로 장착했다. 또 일반 시곗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고객은 가죽이나 메탈로 시곗줄을 바꿔서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글의 Wear OS by Google을 탑재해 빠르고 안정적인 스마트 기능을 구현하며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동해 전화, 문자, 카톡 등 다양한 알림 확인은 물론, 운동량을 측정하는 구글 피트니스(Google Fit)도 사용할 수 있다. 가속도, 지자기, 자이로, 압력 등을 알 수 있는 센서들을 탑재했고 시곗바늘을 활용한 스톱워치, 타이머, 나침반, 고도계, 기압계 등 다양한 부가 기능도 적용됐다. 이 외에도 샤오미와 화웨이, 핏빗 등 기존의 웨어러블 강자들도 속속 새로운 스마트워치를 출시하고 있다.

전통적인 시계 업체들도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구글과 협력하는 태그호이어는 최근 해상도 326ppi의 아몰레드(AMOLED) 스크린을 지원하는 모듈러41을 공개했다. 루이비통은 구글과 퀄컴의 손을 잡고 땅부르 호라이즌 커넥티드를 내놨고 아르마니, 몽블랑 등 유수의 패선업체들도 스마트워치 시장에 참전했다.

내년 5G 상용화가 시작되면 스마트워치의 '쓰임새'에도 많은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스마트 헬스 기능을 중심으로 중년층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편 피트니스와 트레킹을 넘어서는 다양한 기능성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이커머스와 연결된 간편결제 기능과 스마트 글래스, 스마트 의류 등 고차원의 웨어러블 기술력도 자연스럽게 연계될 조짐이다. 5G가 활성화되면 스마트워치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 전략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최근 스마트워치가 스마트폰과 완전히 분리, 단독 디바이스로 여겨지며 5G라는 불꽃을 만나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 LG전자도 새로운 스마트워치를 공개했다. 출처=LG전자

"시계의 정체성을 담아 전자기기로"

현재 스마트워치 시장의 흐름은 전통적인 시계의 정체성을 최대한 담아내면서 전가기기의 강점을 자랑하는 형태로 굳어지고 있다. 2014년 IFA 2014로 돌아가면 삼성전자보다 LG전자의 접근방식이 최근의 흐름에 더 부합된다. 즉 스마트워치는 시계를 안정적으로 알려주던 전통적인 시계의 감성에서 출발해 ICT 기기로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작은 전통적인 시계다.

삼성전자의 스마트워치 발전사가 굴곡을 맞이한 대목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특유의 디바이스 경쟁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글로벌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LG전자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는 한편 꾸준히 5위권에 이름을 올렸으나, 삼성전자는 한 때 스마트워치를 출시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리브랜딩까지 감행했다. 스마트워치에 접근하며 새로운 전자기기로 봤기 때문에 소위 스텝이 꼬인 셈이다.

삼성전자가 2017년 3월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되는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 2017’에 참가한 행간도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바젤월드는 시계 월드컵이라 불리는 곳이다. 세계 시계 브랜드와 바이어 그리고 15만 명의 시계 애호가들이 한데 모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 박람회로 여겨진다. 삼성전자는 바젤월드에 참가하며 스마트워치가 전통적인 시계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LG전자가 LG Watch W7를 출시하며 아날로그 기술의 강점을 자랑한 이유이자, 많은 스마트워치 제조사들이 개성에 맞게 시계끈을 교체할 수 있도록 만든 배경이다.

▲ 삼성전자는 바젤월드에 참여한 바 있다. 출처=삼성전자

스마트워치가 웨어러블 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장면은 자율주행차를 둘러싼 업계의 궁금증에도 일부 힌트를 줄 전망이다.

현재 다양한 기업들의 자율주행차 기술이 공개되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자동차 특유의 정체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자율주행차는 뚜렷한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심지어 "자율주행차는 운전의 맛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요구를 담아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스마트워치 시장의 흐름을 보면, 처음부터 스마트워치를 단독 전자기기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시계에서 ICT 기술의 사용자 경험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 이유로 자율주행차도 자동차 특유의 정체성을 가져가는 선에서 조금씩 전자기기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경향으로 굳어갈 것이 확실해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율주행차의 ICT 플랫폼적 역할이 강해질 것이라는 점도 스마트워치의 최근 트렌드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