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아이콘 이서현(45) 사장이 삼성물산을 떠났다. 이는 이 전 사장의 사장 취임 4년 만이자 단독 사장으로 선임된 지 3년 만이다. 패션부문의 실적 정체가 사퇴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삼성그룹의 안주인 이 전 사장의 어머니 홍라희씨(73)의 뒤를 이어 문화·복지 사업에 주력할 것이란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업계 관심은 패션부문에 쏠리고 있다. 국내 패션산업이 정체시기인데다 삼성물산 패션부문도 ‘삼성’의 이름값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링과 바이오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회사의 움직임에 미뤄 보면 패션사업의 철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아이콘 이서현(45) 사장이 삼성물산을 떠난다. 이는 이 전 사장의 사장 취임 4년 만이자 단독 사장으로 선임된 지 3년 만이다. 패션부문의 실적 정체가 사퇴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이 전 사장의 어머니 홍라희씨(73)의 전철을 밟아 문화·복지 사업에 주력할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출처= 삼성물산

11일 재계와 업계 등에 따르면, 이서현 전 사장이 복지재단 이사장에 선임됐다는 발표에서 ‘전(前)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으로 언급되면서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경영에서 물러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아직 삼성물산 차원서 인사가 나거나 공식적인 언급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향후 그룹인사를 기다려봐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이 전 사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동생이다. 서울예고,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해 패션에 큰 관심을 가진 여성경영인으로 유명하다.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해 2005년 제일모직 패션부문 기획담당 상무, 2009년 제일모직·제일기획 전무 2010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을 역임했다. 2014년부터 제일모직과 합병한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일선에 나섰다.

2015년 말 통합 상성물산이 출범한 이후 정기 사장단 인사를 통해 겸직 중인 제일기획 경영기획담당에서 물러나고 삼성패션의 단독 사장 자리에 취임해 그룹의 패션사업을 단독으로 이끌어왔다.

이 전 사장은 단독 사장 취임 3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 시장은 삼성패션 사자에서 물러나 내년 1월 1일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신설되는 리움미술관 운영위원회의 운영위원장으로도 위촉됐다.

부진한 실적이 원인?

이 전 사장은 2015년 12월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에 선임돼 ‘원톱’ 지위에 올라 진두지휘했지만 그간 성과가 부진했다. 올해 3분기 패션부문 매출은 389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 증가했다. 그러나 영업손실은 50억원이 더 늘어난 18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물산의 건설·상사 부문에서 각각 2040억원, 38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과 대조적이다.

영업적자 규모가 2015년 89억원, 2016년 452억원까지 확대된 패션부문은 지난해 부실사업을 정리하면서 32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삼성물산 측은 올해 4분기 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어 1~3분기 부진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삼성물산 패션부문 매출 및 영업이익.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 전 사장은 2020년 연매출 10조원 달성을 전망했지만 현실은 2조원대 벽도 넘지 못했다.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에잇세컨즈’가 실패한 것이 주효했다. 이 전 사장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관여해 2012년 론칭한 브랜드다. 2016년 9월 중국 상하이에 플래그십 매장을 열며 중국 진출을 염두했지만 해외 SPA 브랜드와의 차별화에 실패하면서 경쟁에서 밀렸다. 중국 등에 쌓이 재고 물량을 돈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에 달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 브랜드 라이선스는 가치가 높아 패션부문 정리시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면서 "패션업계가 정체돼 있기 때문에 각 패션·유통 사들은 브랜드 론칭 보다는 해외 브랜드를 유통하고 판매하는 것이 수익성이 더 높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패션부문의 매각에 대해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구조가 정리된 후에 논의돼야 할 사항으로 아직은 얘기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업계는 삼성물산의 사업 구조조정 그 과정에서 부진한 패션사업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물산은 끊임없이 사업 구조조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건설부문과 상사, 패션, 식음료와 레저 등 자체사업의 성장 기대가 크지 않다. 현재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과 계열사인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생명 등의 지분으로 얻는 배당수익에 실적을 크게 의존하고 있다.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삼성물산이 자체사업에서 수익성을 높이고 다른 계열사와의 역할을 정리하려면 비주력 사업을 중단하고 인력을 줄이는 등 효율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EPC 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 신설, 서초사옥 매각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패션부문 매각설은 아직 지배구조 문제가 남아 있어 여러가지 설이 관측되고 있다.

▲ 삼성물산 사업부문별 매출 비중.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어머니 홍라희씨 뒤이어 삼성 '안주인'되나

재계에 따르면 이서현 이사장 본인이 사업보다는 사회공헌사업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온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아동복지에 관심이 컸기에 청소년과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공헌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는 후문이다. 이 이사장은 리움미술관의 발전을 위한 주요 사항을 논의할 '운영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으로도 위촉됐다. 이 자리는 홍라희씨가 그룹의 안주인 자리 역할을 하던 곳으로 사실상 그룹의 안주인 자리를 물려받는 것으로 볼 수 이다. 

업계 따르면, 예원학교-서울예고-뉴욕 파슨즈 디자인스쿨을 졸업한 이 이사장(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의 학력과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의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적인 영감과 폭넓은 해외인맥을 미술관 운영에도 투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슬하에 1남3녀를 둔 이 전 사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가정에 전념면서 현재 배우자가 없는 오빠를 보좌하지 않겠느냐는 또 다른 관측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감리 착수 등을 놓고 삼성물산이 시끄러운 점도 인사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0일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적으로 분식회계를 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또 분식회계 사건 후폭풍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슈로 연결돼 금융감독원의 삼성물산 감리로까지 이어질지에도 관심이 쏠려 있다. 삼성 측은 삼성물산 4개 사업 부문인 건설과 상사, 리조트, 패션은 각자 대표이사가 다르고 별도 경영을 하고 있어 삼성물산이 감리를 받더라도 합병과 무관한 패션부문은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이 전 사장의 거취를 논의한 곳이 어딘지도 관심거리다. 미래전략실 해체 후 인사는 전자 계열사는 삼성전자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 )에서, 비전자제조 계열사는 삼성물산  EPC 경쟁력강화 TF 에서, 금융 계열사는 금융경쟁력제고 TF 에서 각각 집행한다. 이 전 사장의 거취는  결국 오너 일가 문제로 외부 도움 없이 가족끼리 상의해 결론내렸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