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지하철 개찰구를 빠르게 벗어나 출구로 향하는데, 벽에 가까이 붙어 있던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지하철 패스 좀 사용할 수 있냐고 물어왔다.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던 터라 돈을 달라는 소리겠지 싶어서 지나치는 순간, 돈이 아니라 지하철 패스 좀 사용할 수 있냐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몇 발자국 뒤돌아 걸어가니 이 남자는 여전히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누군가 대신 패스를 기계에 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의 지하철 정액권이 30일간 사용 가능하지만 60회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제한이 있는 반면, 뉴욕의 지하철 정액권은 월 사용횟수의 규제가 없는 무제한 이용권이다.

뉴욕 정액권은 30일 이내에서는 무제한 사용이 가능한 데다 한국의 지하철이 승차할 때 카드를 찍고 하차할 때도 개찰구에서 카드를 찍는 것과 달리, 뉴욕의 지하철은 승차할 때만 돈을 내면 되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하차해서 집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대신 지하철 정액권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필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런 요청에 그다지 거부감 없이 대신 패스를 개찰구에 대준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년 이상의 사람들인 데다 본인에게는 어떠한 경제적 부담이나 피해가 가질 않으니 부탁하는 측도 도와주는 측도 부담이 없다.

한국의 지하철 월 정액권이 5만5000원(서울 전용)인 반면, 뉴욕의 월 정액권은 무려 121달러(한화 13만4000원)에 달하다 보니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이든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반면, 젊은 사람들은 개찰구 위를 뛰어서 무임승차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한국에서도 가끔 무임승차를 하기 위해 다른 사람 뒤에 바짝 붙어서 통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뉴욕에서는 개찰구를 뛰어넘거나 아니면 아예 정액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무임승차로 인해 뉴욕지하철인 MTA가 많은 손실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 해에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비용 손실은 9600만달러이며, 버스 무임승차로 인한 비용도 1억1900만달러에 달한다고 MTA 측은 추산하고 있다.

서울시 지하철은 노인, 장애인과 국가유공자에게 제공하는 무료탑승으로 인한 손실이 3679억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뉴욕은 무료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아닌데도 손실금액이 2000억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뉴욕 지하철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무임승차 건수만 무려 20만건이 넘는다고 한다. 이는 하루 뉴욕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3.5%에 해당하는 숫자다.

지하철 무임승차는 특히 지난해에 비해서 1%포인트나 상승했는데 이는 올해 초 뉴욕 검찰청이 지하철을 무임승차한 사람들에 대한 기소를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힌 후 더욱 늘어났다.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뉴욕 경찰도 무임승차를 하다가 적발된 사람을 체포하지 않겠다고 이번 여름부터 발표했다.

혹시 무임승차를 하는 것을 발견하면 소환장을 발부하고 법원에 가서 벌금을 내는 등으로 처리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무임승차와 같은 경범죄를 처리하는 데 인력을 쓰기보다는, 강도나 폭행 등의 강력범죄에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무임승차로 인한 체포는 기존 범죄 이력이 없거나 수배 중인 경우가 아니라면 이뤄지지 않아서 62%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MTA측은 무임승차에 대한 관대한 정책이 사람들을 더욱 무임승차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역무원들을 지하철 개찰구에 배치해 무임승차를 막겠다는 방안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MTA가 월 정액권을 현행 121달러에서 126달러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 당분간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