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융안정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 핵심은 미국 기업 부채다. 연준은 미국 금융시장의 차입금으로 인해 자산가격이 크게 부풀려진 상태이며 기업들의 신용상태가 더 나빠졌다고 지적했다.

연준은 보고서에서 금리 인상이 증시에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해외 경기 둔화와 시장 변동성을 두고 미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몇 차례나 더 인상할지 단서를 제시하지 못했다.

대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한 행사에서 미국의 기준금리가 중립 수준 바로 밑까지 올라왔다는 말미를 내놨다. 지난 10월 언급한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과 대비하는 모습이다.

기업 부채 취약성 가중

28일 연준은 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기업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차입 수준을 유지, 의존하고 있다”면서 “투자자들 역시 점점 더 위험한 기업 부채를 사들이고 있다. 이는 미국 경제에 가장 취약한 점”이라고 밝혔다.

금융안정보고서는 미국 금리 인상과 신흥국 경제 불안, 글로벌 주가 폭락 등 금융시장 불안 요인이 커지는 가운데 금융시스템의 잠재적 리스크를 평가하고 정리한 보고서다.

연준은 “현재 자산 가격이 오른 상태는 역사적 범위보다 높다”면서 “무역 갈등이 커진 데다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확대되고 있다. 이밖에 다른 충격들은 위험 자산에 대한 수요를 전반적으로 줄이는 요소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미국 기업이 위기를 맞으면 자산 수준 저하 폭이 상당히 클 전망이다. 자산 수준이 내려가면 기업들이 펀딩을 받는 일은 어려워지게 된다. 높은 수준의 부채는 경제가 돌아선다면 수익률을 좇아 온 투자자들이 레버리지(차입투자) 대출과 정크 본드의 가격 문제로 가파른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다. 연준은 보고서에서 역사적으로 높은 레버리지는 경기 침체로 인한 재정 위기와 기업의 긴축과 연관되어 있다면서 기업 부채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시사했다. 이에 따라 연준은 매년 두 차례 금융안정보고서를 공표할 예정이다.

반면 금융기관이 역사상 가장 높은 부채를 잘 대처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연준은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들은 부채로 인한 충격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상태”라면서 “국내총생산(GDP) 증가와 함께 소비자 대출은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유동화 대출 투자자는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방에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최근 미국 은행의 수익성은 개선되고 있다. 은행권의 올해 1~3분기 순이자마진 평균은 3.45%로 201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연준은 이외에 월스트리트 중개인과 딜러 간 레버리지가 2008년 금융위기 이전보다 훨씬 낮고, 미국 보험회사 재무건전성은 적정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 미국 신용시장 GDP 대비 부채비율. 자료=FED

급격한 성장과 이면

연준은 미국의 부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내리면서도, 경제는 2005년 이후 가장 빠르게 성장할 준비가 됐다고 봤다. 2019년 중반 경제 성장 수준이 가장 빠를 것으로 전망했다. 연준은 지난 48년 이후 가장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은 목표치인 2%에 근접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경기 확장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지난 9년간 이어온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내년에도 유지할 계획이다.

다만 성장 이면에는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이 문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연준은 진단했다. 최근 글로벌 대형투자기관들이 고수익을 제시하지만, 위험도가 아주 높은 CLO를 앞다퉈 사들이고 있다.

CLO는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에 대한 은행의 대출채권을 묶어 이를 담보로 발행하는 ABS(자산유동화증권)의 일종이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의 근원인 CDO와 CDS(신용부도스와프) 등 증권화 자산과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 은행들이 주거래 기업 가운데 신용등급이 ‘BBB’급 이하인 기업을 풀로 구성한 후 이들 기업에 나가는 대출채권을 담보로 한 증권을 발행하는 식이다. 앞서 캐나다 정부 연기금(CPP)은 2억8500만달러의 CLO 투자계획을 밝혔다.

연준은 “수용 가능한 레버리지 대출로 간주하는 기준이 악화한 상태에서 CLO 발급 속도는 올해 상반기 710억달러에 이르고 있다”면서 “추후 CLO 시장을 지속해서 관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주요 CLO 투자 총 수익 추이. 자료=블룸버그

연준은 헤지펀드가 또 다른 잠재적 위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월가 펀드매니저들은 지난 2년간 레버리지를 크게 늘려오고 있고, 일부 업계 차입금 의존도는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에 이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레버리지가 헤지 펀드 수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지만, 리스크로 인해 펀드 매매 가능성이 커지면 자산 하락률도 급격히 커진다.

미국 주택시장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연준은 “금융위기 원인이었던 주택담보 대출은 충분한 담보로 뒷받침되고 있다”면서 “부동산 가격이 다소 상승했지만 최근 몇 달 사이 인상 폭이 둔화했다”고 말했다. 연준은 이어 "대출 기관이 위험 가중 자산의 2.5%까지 추가 자본을 배정한다면 경제 상황이 악화하더라도 부동산 대출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무부가 발표한 10월 신규주택판매는 54만4000채다. 판매가격(중간치)은 30만9700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1% 줄었다. 전월과 비교하면 8.9% 감소했다. 2년 7개월 내 최저치다. 상무부는 대출금리 상승 등으로 주택경기 감속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 헤지펀드 밀집도 추이. 자료=골드만삭스

금리는 중립금리 바로 밑

연준은 보고서를 통해 미국 금리 인상의 제약 요소를 언급했다. 연준은 금리 인상이 뉴욕증시에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준은 “시장이 연준의 정책을 예측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는 일어날 수 있다”면서 “이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 금융 시장 변동성을 높이는 요소다. 단계적인 금리인상으로 경제가 순조로운 궤도를 유지토록 하면서 리스크 균형에 초점을 맞출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 무역 압박이 심화할 경우 주가가 급격히 추락할 수 있으며,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의 주가는 실적 전망에 비해 다소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파월 의장은 금융안정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이날 뉴욕 ‘이코노믹 클럽’에서의 강연에서 “금리는 역사적 수준에서는 아직 낮고, 여전히 경제에 대한 중립적 수준에 대한 폭넓은 추정치보다 바로 밑에 있다”고 말했다.

현 금리(2.00~2.25%)가 중립수준의 범위 '바로 아래'(just below)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9월 중립금리의 범위는 2.5~3.5%로 추정된 바 있다. 중립금리는 경기를 확장하지도 위축시키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를 말한다. 이러한 발언은 지난 10월 밝힌 파월 의장의 발언과 대조한다. 당시 파월 의장은 기준금리가 중립 수준까지 가려면 꽤 멀었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또 “미리 정해진 정책은 없다(no prest policy path)”며 “데이터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에 매우 긴밀하게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보고서에는 단기적으로 무역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유럽 연합 (EU) 철수, EU와의 예산 분쟁, 일부 신흥 시장 국의 높은 부채 수준 등의 잠재적 리스크 요인을 지적했다. 연준은 무역 긴장이 고조되면 중국에 금융 난기류가 생겨 미국으로 흘러 들어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연준은 “아시아 국가의 경제 성장은 수년간 급격한 신용 성장을 거듭하면서 둔화하고 있다”면서 “아시아 지역 금융 기관은 잠재적인 대출 손실에 더 노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