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그냥 이렇게 헤어지면 서운하지 않을까요? 저 멀리 울릉도에서 이 곳 마곡까지 전국의 사업장에서 조촐하게 이별 의식을 치르면 어떨까요? 그러나 접었습니다. 이별은 ‘쿨’ 해야 하니까요...(중략)...별도의 퇴임식 같은 건 없습니다. 이 편지로 여러분들과 마지막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 편지에 마침표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변화와 성공이 마침표가 될 것입니다”

2019년 그룹 임원인사 발표에서 갑작스럽게 임직원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어떤 리더였을까.   

이웅열 회장은 1956년 4월 18일 서울 출생, 올해 나이로 63세다.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자녀 1남 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동찬 명예회장의 다음을 이어 그룹을 이끌어갈 후계자로 지명됐고 코오롱의 해외지사(뉴욕 지사(1985년 2월), 도쿄 지사(1986년 2월))에서 근무하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후 1987년 코오롱 상무이사, 1989년 그룹기획조정실장을 거쳤고 1996년 1월 그룹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웅열 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맞았고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이 회장은 26개 계열사를 15개로 줄이고 부채비율을 대폭 낮추는 대대적 구조조정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코오롱메트생명보험, 코오롱전자, 한국화낙, 그리고 신세기통신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코오롱은 스위스 보스턴투자은행과 BMW로부터 각각 5000만달러, 2000만달러 외자를 도입했다. 이 외에 광고회사 한인기획의 분리와 여러 계열사들을 하나의 회사로 합치는 합병 등으로 경영 구조를 정리했다.  

이후 그는 ‘원 앤 온리(One & Only)’를 경영의 방침으로 정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상품이나 기술, 지역을 선점해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을 경영에 접목시켰다. 

경쟁력 있는 신기술에 대한 이 회장의 관심은 차세대 소재인 투명 폴리이미드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폴리이미드는 수없이 접었다 폈다를 반복해도 본래의 형태가 훼손되지 않는 특수섬유 소재다. 이웅열 회장은 2006년부터 투명폴리이미드의 독자 개발에 착수했고 이후 약 10여년의 연구 끝에 2016년 세계 최초로 투명폴리이미드 개발에 성공했다.  2018년 4월에는 세계 최초로 양산 라인을 준공했다.

▲ 삼성전자의 차세대 스마트폰 폴더블 디스플레이에는 코오롱의 특수소재 투명폴리이미드가 활용된다. 출처= 유튜브

2018년 11월 삼성전자가 접었다 펼 수 있는 ‘폴더블 스마트폰’의 출시를 예고하면서 이 기기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인 투명 폴리이미드를 생산하는 코오롱의 합성섬유제조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추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로 거론되고 있다.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시장 규모는 향후 5년 내에 1조원, 관련 시장은 4조원까지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세계 최초의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 ‘인보사’는 이웅열 회장이 약 20년 동안 공을 들여 얻어낸 성과다. 

코오롱그룹의 바이오·제약부문 코오롱생명과학의 자회사인 신약 개발업체 코오롱티슈진은 2018년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인보사에 대한 ‘임상시료 사용 허가(CMC)’를 받았다. 이에 따라 코오롱티슈진은 미국에서 102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50개 이상 기관에서 약 3년 동안 인보사의 임상실험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이 잘 마쳐지면 2023년부터는 미국에서 시판될 수 있을 전망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지난 7월 중국의 차이나 라이프 메디컬 센트레와 중국 하이난성에 2300억원 규모의 인보사를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 19일에는 일본과 인보사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이 수출의 계약 규모는 약 6677억원(약 5억9100만 달러)로 알려졌다. 이 밖에 홍콩, 몽골,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도 코오롱생명과학을 통한 인보사 공급이 확정됐다.

그러나 그의 재임기간 공적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14년 2월 코오롱이 운영하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에서 열린 부산외국어대 신입생 환영회 도중 강당 지붕이 무너져 10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이웅열 모든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사재를 털어 피해자들에게 전달하는 대처를 했다. 

코오롱은 지난 2009년 지주사 중심의 경영 체계를 구축했는데 이후의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으면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수차례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 코오롱은 이명박 정권과 유착된 특혜 논란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이자 전 새누리당 이상득 의원은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코오롱 사장,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코오롱상사의 사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코오롱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전 의원의 여러 최측근 인사들은 모두 코오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고리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이상득 전 의원은 코오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과 이상득 전 의원이 고향 선후배 사이로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에 이명박 정부와 코오롱의 유착 의혹은 아직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웅열 회장의 갑작스러운 퇴진에는 이명박 정권과 연결된 관계로 현 정권의 견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기도 했다.  

일련의 기록들로 이웅열 회장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평가가 공존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는 그룹이 직면한 위기를 과감한 결단으로 돌파한 인물이자 임직원들을 진심으로 아낀 인덕으로 존경을 받았다. 다른 대기업 총수들에 비해 비교적 빠른 그의 퇴진과 조용한 마무리는 재계에 많은 메시지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