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식을 모르면 PT하지 마라> 이용찬 지음, 마일스톤 펴냄.

광고계의 살아있는 전설 이용찬이 30여년 쌓아 올린 PT 노하우를 쏟아냈다. 일종의 프레젠테이션 실전 지침서다. 서술 방식은 육성 강의록처럼 생생하고 명료하며 과할 정도로 단호하다. 내용은 충분히 일반화가 될 정도로 유용하여 마음 속 깊이 꽂힌다. 심 봉사 눈을 뜨게 한 용궁의 개안초(開眼草)처럼 큰 깨우침일 수도 있다. 제안서 작업에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고도 PT 현장에서 영문도 모른 채 탈락의 쓴 잔을 마셔본 이들에겐 특히 그럴 것이다.

저자는 캠페인성 광고의 새 지평을 열었다. 초코파이 ‘정(情)’, 솔표 우황 청심원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스피드 011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SK그룹 ‘OK! SK’, ‘발효과학 딤채’ ‘튀기지 않은 감자칩, 예감’ 등 모두가 알고 있는 캠페인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저자는 캠페인을 수주할 때의 프레젠테이션으로도 유명했다. 별명이 ‘PT 동방불패’였다. 저자는 책에서 “PT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지론을 펼친다. 그가 정리한 ‘마음을 움직이는 공식’이 ‘P=OR²’이다. PT에는 Originality(독창성) ,Relevance(연관성), Reversal(반전) 3요소가 필요하단 뜻이다.

이 가운데 반전의 경우 15초 안에, 또는 말 한 마디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청중은 머리로 생각할 틈 없이 마음이 먼저 움직이게 된다. “딤채는 김치냉장고가 아닙니다/ 발효과학입니다”, “초코파이는 과자가 아닙니다/ 정입니다”, “8시 뉴스는 8시에 하는 뉴스가 아닙니다/ 1시간 빠른 뉴스입니다” 저자의 반전 문구는 지금도 우리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프랑스혁명 200주년이 되는 1989년 리노베이션을 통해 등장한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I.M.Pei)가 만든 반전 PT의 성과물이었다. 그는 설계공모전 심사위원들 앞에서 “루브르는 박물관이 아닙니다/수천 년간 죽은 자들의 유물을 보관하는 거대한 무덤입니다/유물들이 무덤에서 현실 세계로 나오려면 부활의 상징이 필요합니다/바로 피라미드입니다/피라미드를 통해 유물들이 부활하여 전 세계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리 피라미드는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란 클로징 아이디어로 PT를 마무리했다. 이 충격적 재해석에 심사위원들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생각했고, 결국 그의 디자인이 채택됐다. 만약 “루브르에는 고대 이집트 유물들이 많으니 이집트를 상징하는 피라미드를 디자인 모티브로 합시다”라고 PT를 했다면 심사위원들은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했을 것이다.

저자는 PT에서 ‘인사말’ 순서처럼 되어 있는 오프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오프닝은 곧 클로징’이라며 남들이 사족처럼 여기는 오프닝으로도 충분히 듣는 이의 마음을 열 수 있다고 말한다. 책 속에는 인간의 여러 감정 가운데 ‘분노’를 자극한 흥미로운 오프닝 사례가 소개돼 있다.

저자가 진주햄 PT에 나섰을 당시 햄 소시지 시장을 독식하던 진주햄은 롯데햄의 거센 도전에 밀려 매출이 반토막났다. 광고와 마케팅이 소용없었다. PT는 경남 양산의 본사에서 열렸다. 저자는 회장과 임원들 앞에서 이런 오프닝 멘트를 날렸다. “진주햄 매출이 왜 절반으로 줄었을까요? 롯데햄 때문일까요?” 회의장에 정적이 감돌았다. “천만에요, 롯데햄 때문이 아닙니다. 회장님 때문입니다.” 순간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저희가 서울의 슈퍼마켓, 구멍가게 1만5000곳을 조사했습니다. 롯데햄 있는 곳에는 진주햄이 없고, 진주햄 있는 데는 반드시 롯데햄이 있었습니다. 중산층 동네에는 롯데햄만 있었고, 진주햄은 주로 달동네에 깔려 있더군요.” 회의장은 이제 분노의 도가니였다. “서울이 초토화된 이유는 회장님이 여기 양산에만 계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회장님, 일 년에 몇 번이나 서울에 오십니까?” 임원들이 발표자를 향해 증오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광고를 하는 것은 돈다발을 허공에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일단 전국 매장의 입점 상태부터 점검하십시오.”

‘분노의 오프닝’ 일주일 후 계약을 수주했다고 한다. 무턱대고 따라 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