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관심이 무역 긴장 고조와 금리 추가 인상에 쏠리면서 국제 유가는 연중 최저치로 떨어졌다.    출처= OilPric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2014년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던 유가가 계속 추락하고 있다.

지난 10월 초에 75달러까지 치솟았던 북미 유가 벤치마크인 서부 텍사스 중유 가격은 이후 30% 이상 하락했다. 국제 유가 표준인 브렌트 원유도 유사한 하락세(24.5%)를 보였다. 20일(현지시간) 유가는 하루 낙폭으로 근래 최대치인 7% 하락해 년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4년 산업 대란을 연상시키는 최근의 유가 급락은, 석유 수출이 국가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OPEC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11일 유가 하락을 막기위해 하루 50만 배럴을 감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가 나온 다음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사우디와 OPEC 국가들이 원유 생산량을 줄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유가는 충분한 공급을 바탕으로 더 낮아져야 합니다!”

애널리스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급이 OPEC이 과연 (배짱 좋게) 감산을 단행할 지에 대한의문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유가가 진정되는 추세를 부추긴 것이라고 말한다. 뉴욕타임스(NYT)가 20일(현지시간) 최근의 유가 하락 이유와 향후 전망을 보도했다.

유가는 왜 폭락했을까

NYT는 최근 몇 달 동안 석유 시장의 초점이 급격히 이동했다고 지적했다. OPEC과 러시아를 포함한 주요 산유국들이 지난 6월에 비엔나에 모였을 때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앞으로 유가가 계속 오를 것인지, 그에 따른 공급은 적절한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란 제재를 재개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으로 가장 큰 산유국 중 한 곳의 석유 생산이 시장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생산량을 제한해 온 사우디와 그 외 산유국들은 지난 여름 유가가 계속 상승하자 소비자들의 우려를 덜어주고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 감산 한도를 해제했다. 그러나 지나친 우려였을까. 전 세계의 관심은, 이란 문제보다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과 금리 인상이 세계 경제 성장과 석유 수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더 쏠렸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석유 생산이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했다. 리비아 같은 나라는 전쟁을 치르면서도 생산량을 늘렸고, 경제난에 허덕이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도 예상보다 잘 유지되었다. 전 세계 저장 탱크에 남아 있는 석유의 양이 다시 증가하면서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이다.

▲ 20일(현지시간) 유가는 하루 낙폭으로 근래 최대치인 7% 하락했다.    그래프= 뉴욕타임스(NYT)

이란 제재가 미친 영향은

미국의 이란 제재는 분석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이란의 생산량에 영향을 덜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처음부터 우려가 너무 과장되었을 수도 있다.

이란산 석유를 사는 기업들에게 처벌을 가하겠다는 조치가 11월 5일 발효되었다. 많은 바이어들은 제재 전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 이란의 석유 수출은 약간 줄었을 뿐이다. 실제로 OPEC은 이란의 10월 석유 생산량이 전월에 비해 4.5% 감소한 330만 배럴을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이란 제재의 효과가 미미했던 이유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 이란의 최대 고객 국가들에게 수입 금지를 일시적으로 면제해 주었기 때문이다. 석유 거래상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그런 조치로 이란 석유 수출 감소가 예상보다 적었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리서치 회사 우드 매킨지(Wood Mackenzie)의 호마윤 팔락샤히 이란 전문 애널리스트는 "예상 보다 많은 국가들에 면제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시장이 상당히 놀랐다"고 말했다.

팔락샤히 애널리스트는 이미 이란산 원유 구입을 중단했던 일본과 한국에 대해서까지 면제를 허용한 것은 특히 충격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 정부의 이란 제재는 미국의 우선 순위가 이란을 압박하기 보다는 미국 소비자들을 위해 유가를 낮추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그 전략은 제대로 먹힌 것 같다. 미국자동차협회(American Automobile Association, AAA)에 따르면 20일 미국의 일반 휘발유 가격은 2.61 달러로 전월의 2.85달러에 비해 10% 이상 하락했다.

앞으로 유가는 어떻게 될까

애널리스트들은 12월 초 OPEC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들이 회동하면 유가 인상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하루에 약 100만 배럴(전세계 공급량의1%)의 감산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가 이 규모를 줄이자고 제안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OPEC과 기타 산유국들은 사우디의 주장으로 결국 올해 생산량을 2017년 평균 생산량에 비해 하루 70만배럴 가까이 늘렸다.

고통을 혼자 감당하지 않으려는 사우디 아라비아로서는, 러시아나 이라크 같은 나라에게 감축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애널리스트들은 지적한다. 어쩌면 사우디는 트럼프 행정부의 유가 인하 압력과 국가 수익 증대라는 경제적 요청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러시아와 이라크 같은 나라들은 감산에 합의하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이익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RBC 캐피털 마켓(RBC Capital Markets)의 헬리마 크로프트 애널리스트는 "푸틴은 2016년 11월에 그랬던 것처럼, 국내 재정 상태를 고려해 결국 OPEC 회원국들과 뜻을 같이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몇 달 전에도 사우디는 러시아나 다른 생산국들과 함께 감산을 조율함으로써 가격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사우디와 그 석유 동맹국들은 꾸준히 생산을 늘리는 미국의 셰일 가스 생산자들로 인해 다시 한번 압박을 받는 불편한 상황에 처해 있다.

에너지 컨설팅 회사 FGE의 제임스 데이비스 애널리스트는 "그들은 이제 유가 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다시 모이게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