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의 상용화 여부는 게임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인공지능(AI) 등을 테스트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게임산업은 미래지향적이라 할 수 있다.

여전히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게임산업은 국내 수출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e스포츠, 스트리밍, 클라우드 등 파생 영역을 감안하면 향후 확장 규모는 감히 헤아릴 수 없다.

한국은 자본과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다. 아이디어와 기술력만이 유일한 무기다.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쌓여가는 시기인 만큼 게임산업에 대한 재해석과 체계적 육성 전략은 필수다.

 

[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GTA 시리즈로 유명한 락스타게임즈가 ‘레드데드리뎀션2’를 지난 10월 26일 내놨다. 2010년 ‘레드데드리뎀션’이 출시된 후 8년 만에 선보인 후속작이다.

출시 전부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이유는 ‘명성’이다. 레드데드리뎀션 자체의 재미는 물론 완성도 높은 오픈월드 게임을 만드는 락스타게임즈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출시 후 호평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불편한 조작감, 초반 전개의 지루함 등은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레드데드리뎀션2는 유저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출시 3일 만에 8000억원이 넘는 매출이 이를 방증한다. 혹평을 덮을 만한 사실적 표현과 빠져드는 스토리텔링에 “고티(GOTY: Game Of The Year) 예약”이라는 말도 나온다.

 

특유의 느릿한 진행도 유저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최근 출시되는 게임들이 ‘한 판’에 집중하고 액티브하다는 점과 비교하면 이러한 트렌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왜 락스타게임즈는 이러한 게임을 만드는 것일까. 자신감 때문에 ‘My Way’를 외치는 것일까. 여기서 되돌아봐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여부다.

 

주 52시간제의 명(明)과 암(暗)

최근 게임업계에서는 주 52시간제로 신작게임 출시가 늦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통상 신작 출시를 앞두고 특근과 야근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판박이처럼 ‘양산형’ 게임을 찍어내는 입장에선 분명 큰 타격이다.

근무시간으로 따지면 레드데드리뎀션2는 그 명성만큼이나 압도적이다. 댄 하우저 락스타게임즈 공동대표는 “레드데드리뎀션2를 개발하는 동안 직원들이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했다”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업계 종사자들의 성토는 물론 유저들의 차가운 시선도 이어졌다. 과도한 노동력 투입이 근절돼야 한다는 인식은 알게 모르게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발성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흐름이다.

결국 많은 게임을 단기간에 출시하기 어려워지는 환경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오래’ 개발하고 ‘더 오래’ 유저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주 5일 근무에 이어 주 52시간제 도입은 여가시간 증가로 이어진다. 일(Work) 외에 여타 활동을 즐길 시간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게임도 ‘즐길 거리’ 중 하나라는 점에서 유저들의 체류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단편적으로 보면 주 52시간제는 단기적으로 게임업계에 악재라 할 수 있지만 여가시간 증가에 따른 유저수와 게임 이용시간 증가는 호재다. 게임사가 어떤 게임을 만드는지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다는 뜻이다.

레드데드리뎀션2가 스토리 기반 싱글 플레이보다 멀티 플레이에 공을 들이고 있는 점도 이해되는 대목이다. ‘느림’이 ‘충분히 즐겨야 한다’는 목적에 있다면 레드데드리뎀션2에 대한 일부 혹평은 결국 장점으로 승화될 수 있다.

 

국경 없는 콘텐츠 ‘GAME’

음악,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는 각 지역 정서가 반영된다. 해당 국가의 문화를 이해한다면 받아들이는 느낌은 더욱 크다. 문제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게임은 콘텐츠 중에서도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 최근 한글화된 게임들이 다수 출시되고 있지만 이전에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게임을 즐기는 이유는 재미 때문이다. 게임도 언어가 뒷받침된다면 재미는 배가 되지만 인터랙티브 요소(유저가 캐릭터를 직접 움직이고 상황에 반응) 덕분에 여타 콘텐츠 대비 반감은 크게 낮은 수준이다.

전통적인 제조업과는 달리 국제 경기에 민감하지도 않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 꾸준한 수익창출이 가능하다. 여타 콘텐츠와 달리 사후 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게임산업은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풍부한 게임소재를 기반으로 한 고부가가치의 지식집약적 서비스다. 재고자산이 없어 원자재 가격상승 등의 영향도 제한적이다.

여타 콘텐츠(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등과 연계성이 높다는 것도 특징이다. ‘잘 키운 게임’ 하나가 한 나라의 문화를 통째로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여는 셈이다.

한국은 자본이나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다. 오로지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게임산업 육성이 적합한 이유다. 또 게임은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AI(인공지능) 등 신기술을 테스트하기에 적합하다. 가상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만큼 위험성도 적다.

모두가 ‘4차산업’을 외치지만 그 효용성은 게임의 흥행 결과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수출을 통한 외화벌이도 중요하지만 게임의 발전을 통해 미래유망산업도 가늠할 수 있다. 규제의 틀과 과거의 좋지 못한 인식 속에 갇혀있는 게임을 다시 바라볼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