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K-뷰티가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16년부터 몰아닥친 사드 위기 2년 사이, 중국시장에서의 한국화장품의 위상이 글로벌 브랜드와 중국 현지 브랜드 사이에서 '애매하게 끼인 브랜드'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국내 화장품 업체는 2016년만 해도 중국시장 점유율이 30%를 넘기며 미국과 유럽 브랜드의 뒤를 쫓았지만 지난해 19.5%로 감소했다. 이에 국내 뷰티 기업들은 중국 사업이 난관에 부딪치자 온라인 몰 쪽으로 유통 채널을 강화하는 등 다른 해외시장 돌파구를 모색하며 중동에 속속 진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K뷰티 중국 법인 매출 추이. 출처=금감원

중국서 설자리 잃어가는 ‘K-뷰티’
한때 K-뷰티의 황금기였던 중국 화장품 시장이 급속도로 식고 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확장을 했던 국내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들이 단독매장을 축소하거나 매장을 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감은 3분기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아모레퍼시픽의 3분기 영업이익은 847억으로 36%나 감소했다.

글로벌 뷰티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명동으로 직접 기자가 나가 본 결과, 화장품을 구경하기 위해 매장 입구조차 들어가기 어려웠던 옛날과는 달리 한산한 모습이었다. 명동의 한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관계자는 “이전에는 화장품을 사러 오는 중국인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줄이 매장 밖까지 길게 서있었다”면서 “현재는 그 정도는 아닌 수준이며, 특별한 신제품이 나오지 않는 이상 구매로 이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고 <이코노믹리뷰>에 설명했다.

▲ 2일 오후 명동의 한 매장에 사람이 없는 한가한 모습.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자연기자

K뷰티의 고전은 중국 내 매장 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130여개에 이르던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 더페이스샵의 중국 오프라인 매장이 지난 5월부로 모두 문을 닫았다. LG생활건강은 중국에서 H&B스토어가 급부상하자 더페이스샵을 네이처컬렉션으로 전환했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액이 194억원에 이르는 등 실적이 악화되어 매출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네이처리퍼블릭과 토니모리도 중국 내 현지 매장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70개의 브랜드숍을 운영했지만 현재 기준 58개로 감소했다. 토니모리 역시 70개 정도 있던 단독매장이 절반 가까운 30여개로 줄었다.

‘K-뷰티’ 왜 흔들릴까?
한국 업체들에 ‘기회의 땅’이었던 중국은 사드 사태를 맞으면서 ‘위기의 땅’으로 바뀌었다. 한국 화장품의 광고와 마케팅이 제한되던 사이, 중국의 로컬 브랜드가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중국의 로컬 화장품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뷰티 브랜드의 매출 하락은 당연한 결과였다. 중국은 코스맥스·한국콜마 등 기술력을 지닌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를 통해 품질이 개선된 제품을 내놓았다. 이러한 로컬 브랜드는 화장품 전문 매장의 확대 바람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중국 전국에 화장품 전문 매장은 약 15만 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왓슨스·세포라 같은 글로벌 H&B스토어 뿐 아니라 중국 화장품 업체 ‘자오란자런’도 커지고 있다. 자오란자런은 지난해 매장 수가 전국 1600여개로 2020년 1만개를 목표로 확장 중이다.

▲ 2일 오후 명동의 한 매장에 고객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자연기자

한류 브랜드를 훔치는 중국 산업도 한 몫 했다. 수출 제품이나 새로운 콘텐츠를 내놓더라도 중국 내 브랜드 장사꾼의 훼방에 국내 업체의 수출 사업이 크게 위축되는 것이다. 또한 지식재산 침해를 중국에 강력하게 비방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정부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다는 한계점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K-뷰티 산업에 있었던 혁신 제품들이 중국이 이미 다 베꼈다”면서 “이제 중국인들에게 한국 화장품은 신선감이 없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시장이 한류보다는 품질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서, 고가의 유럽 브랜드를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기 시작했다“면서 ”이제는 K-뷰티 시장이 예전만 못하다"고 말했다.

▲ 2일 오후 명동의 한 매장에는 2층 까지 고객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자연기자

‘포스트 차이나’는 중동?
국내 화장품 업체들이 중국에서 부진한 결과를 맺자 해외시장에 돌파구를 모색하며 중동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토니모리는 요르단의 2대 쇼핑몰로 꼽히는 암만 시티몰에 숍인숍 형태로 연내 입점할 예정이다.

앞서 토니모리는 2015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에 토니모리 1호점을 열면서 중동 시장에 첫 발을 들였다. 이후 제다와 리야드에 각각 2개, 5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아부다비의 알바틴 지역에서도 1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등 총 8개 매장이 있다. 2016년 9월부터 중동 세포라에도 입점하며 오만을 제외한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UAE)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에도 진출했다.

토니모리뿐 아니라 다른 업체들도 중동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올해 3월 아모레퍼시픽의 에뛰드하우스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1호점을 내며 중동에 첫 발을 디뎠고 이후에도 추가로 점포를 내며 중동 내 입지를 키워가고 있다.

지난 6월 네이처리퍼블릭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중심 번화가 최대 규모 쇼핑몰에 1호점을 열며 중동 진출을 알렸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사우디 현지 최대 유통 그룹인 ‘파와즈 알호카이르’와 파트너사 계약을 체결해 연내 5호점까지 입점 계약을 했다. 추후 소비 경쟁력이 있는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걸프협력회의 국가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이에 앞서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은 2006년 요르단에 매장을 내고 화장품 업계 최초로 중동에 진출했다. 현재 더페이스샵이 진출한 중동 현지 매장은 80여개다. 미샤 또한 현재 유통상을 통해 드럭스토어 입점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바레인, 이란,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5개국에 진출해 있다.

이처럼 국내 업체들이 중동에 진출한 것은 K-뷰티의 인기가 확산하고 있는 초기단계의 시장이고, 성장세도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 2일 오후 한 매장에서 히잡을 한 아랍계 여성이 화장품을 구매하고 나오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자연기자

코트라에 따르면 한국의 중동 화장품 수출 규모는 2008년 13만5000달러(약1억5000만원)에서 2016년 3582만달러(약404억원)으로 8년 동안 265배 이상 증가했다. 시장 조사 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주요 중동 뷰티 시장의 지난해 규모는 112억6240만달러(약12조6800억원)로 2012년 90억2430만달러(약10조1600억원) 대비 24.8% 증가했다. 매년 꾸준히 늘면서 2022년에는 117억8730만달러(약13조2700억원)로 작년 대비 4.6%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토니모리 관계자는 "중동 시장에서 K-뷰티가 확산되는 초기단계에 있다"면서 "중동 시장별로 화장품 등록 등의 규제가 까다로워 진입 장벽을 뚫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토니모리만의 독특한 제품 디자인 등을 통해 중동시장에서도 매력적인 상품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명동의 한 에뛰드하우스 관계자는 “최근 매장을 찾는 고객층이 중국인보다 아랍계 중동 고객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면서 “특히 향수와 화려한 색조 제품에 관심이 많다”고 <이코노믹리뷰>에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