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지만 제작방식의 차이로 각각 다르게 성장하다가, 3D 애니메이션 기술 덕분에 다시 하나로 합쳐진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과정을 살펴볼수록 무한한 상상력을 마치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3D 애니메이션 기법은 기존 영화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게 한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칼럼에서는 3D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야기할 때 영화보다 더 밀접하며 우리들에게 친숙한 이름을 하나 더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바로 ‘게임氏’입니다!

게임(Game)이란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행위자들이 일정한 전략을 가지고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벌이는 행위를 말합니다. 사실 게임의 역사는 고대 선사시대부터 있지만 그러기엔 이야기의 범위가 너무 넓어지므로, 보다 범위를 좁혀서 3D 애니메이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비디오 게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비디오 게임의 역사는 컴퓨터 역사와 비슷하게 1950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물론 그때는 연구의 일부로 실험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1970년대 버튼과 조이스틱을 사용하는 게임 전용 콘솔기기들이 나오면서 점차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1990년대에 와서는 데스크톱 컴퓨터의 발전에 힘입어 일상 속으로 파고듭니다. 2000년대 이후 네트워크 연결과 2010년 모바일 기기에서 게임이 구현됨에 따라 이제는 누구나 어디서에서나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인기 덕분에 다양한 게임이 있지만 게임이라고 하면 대부분 ‘비디오 게임’을 떠올립니다. 이렇게 비디오 게임이 다른 게임보다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필자는 하드웨어를 활용한 즉각적인 반응,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무한한 확장성, 상상력을 자극하는 화려한 이미지, 이렇게 3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3가지의 컴퓨터를 통해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됩니다.

게임 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이번 칼럼의 제목을 애니메이션氏의 형제라고 소개했는데요, 비디오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형제라고 소개한 이유도 바로 3D 애니메이션 기법 때문입니다. 초기 비디오 게임은 네모난 화면도트가 보이는 2D 기법으로 구현되었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게임들은 3D 기법으로 구현됩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영화의 표현기법을 무한하게 확장시켜준 3D 기법과 게임에서 화려한 영상을 보여주는 3D 기법은 다른 방식으로 구현합니다. 영화 속의 3D 기법은 이미 정해진 이야기와 카메라 연출로 완성된 변하지 않는 영상이라면, 게임 속의 3D 기법은 플레이어의 조작에 따라 반응해 그 순간 만들어진 실시간 영상입니다. 필자는 여기서 ‘실시간(Real Time)’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잠시 애니메이션이 움직이는 원리를 설명하겠습니다. 앞서 4번째 칼럼에서 ‘잔상효과’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는 빛으로 들어온 이미지가 시신경을 세포를 자극한 후 세포가 원상태로 돌아가기 전에 또 다른 이미지가 시신경을 자극함으로써 계속 이미지가 연결되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보통 이렇게 구현하기 위해 영화는 1초에 24장의 이미지를, TV는 30장의 이미지를 순차적으로 보여줍니다. 즉 1분의 영상을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1800장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생각만 해도 엄청난 작업이지요. 2D 기법은 모든 이미지를 직접 그리고 색을 칠해서 만듭니다. 이 제작 방식은 근대적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윈저 멕케이(Winsor McCay)의 <리틀네모>가 나온 1911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여기에 혁명적인 변화를 끼친 작품이 모든 것을 3D 기법으로 완성한 픽사(Pixar) 스튜디오의 <토이 스토리>(1995)입니다.

3D 기법은 캐릭터나 배경을 컴퓨터 속에서 형상으로 만드는 ‘모델링(Modeling)’ 작업 후 움직임을 준 다음 ‘렌더링(Rendering)’이란 과정을 거치면서 한 장 한 장 풍부한 이미지의 그림을 컴퓨터가 만들어 냅니다. 실무적인 입장에서 한 장면에 필요한 제작과정을 보면 3D 기법이 좀 더 해야 할 공정이 많습니다. 하지만 모델링과 배경은 얼마든지 재사용이 가능하므로 그 다음 장면부터는 이미 완성된 캐릭터 움직임만 주면 됩니다. 이때부터 3D 기법은 월등하게 빠른 속도로 작업이 진행됩니다. 속도뿐 아니라 많은 작업자들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3D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를 통해 디테일한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도 2D 기법보다 뛰어납니다. 움직임을 부여한 다음 렌더링을 거쳐 완성된 이미지는 2D 기법보다 훨씬 풍부합니다. 이는 모두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덕분입니다.

필자는 1996년에 당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3D 애니메이션을 독학해 투니버스에 입사했습니다. 그때는 모델링과 움직임 작업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마지막 렌더링 시간도 아주 많이 필요했습니다. 심지어 한 장을 렌더링하는 시간이 30분이 걸린 적도 있으니까요. 15초의 짧은 투니버스 채널 로고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900장의 이미지가 필요하므로 한 장을 5분 만에 렌더링한다고 해도 75시간이 필요합니다. 필자가 실시간을 강조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약 20년 동안 컴퓨터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이제는 1초에 30장 이상의 이미지를 렌더링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즘 게임이 구현하는 화려한 실시간 3D 애니메이션을 보면, 예전 밤새도록 5초 정도의 영상을 렌더링하던 컴퓨터가 생각나면서 그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이제 겨우 게임氏의 3가지 특징 중 화려한 이미지 부분만 이야기했네요. 아쉽지만 다양한 하드웨어와 무한한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게임氏를 알아갈수록 형님뻘인 애니메이션氏의 새로운 면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애니메이션氏는 매력적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