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성은 기자] 우리는 먹을거리 천국에 살고 있다. 집 밖에만 나가도 식당과 편의점이 즐비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근처 대형마트나 시장에서 장을 봐 먹을거리를 잔뜩 사온다. 또 밤에 출출하면 스마트폰 몇 번의 터치로 치킨과 족발 등 야식을 간편하게 배달해서 먹는다.

내가 산 음식이나 식품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내 입까지 오는지 궁금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땅, 깨끗한 바다에서 난 훌륭한 재료로 안전하면서 위생적인 시설에서 만들어졌으면 좋겠는데, 사실 확인할 길은 없다. 물론 원산지 표시제와 생산이력추적제가 도입된 지 한참 됐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뱃속 탈만 안 나면 되지’하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그러다가 지난해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달걀부터 시작해 최근 풀무원 푸드머스의 초코케이크, 대상 청정원 통조림 햄 세균검출 등 내 건강에 조금이라도 ‘위협’을 끼칠 수 있는 소식들을 접하면, 식품안전에 대한 불신감이 다시금 커질 수밖에 없다. 분명 내 주변에 먹을거리는 차고 넘치는데, 아이러니하게 마음 놓고 믿을 만한 먹을거리는 점점 더 없어지는 느낌만 든다.

식품안전문제와 소비자 불신은 비단 우리만의 일이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다. 이웃나라인 중국의 경우 과거 멜라민 분유 파동부터 가짜계란·가짜쇠고기 등 우리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식품선진국인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서도 식품안전성 문제는 헤드라인 뉴스거리로 자주 보도되고 있다.

이처럼 식품안전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은 식품을 생산·가공하고 유통하는 업체들에게 놓인 가장 큰 위기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해외 식품유통업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블록체인(Block Chain)’이다.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핵심기술로 꼽히는 블록체인은 중앙기구가 거래정보를 일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여러 곳으로 분산해 동시 저장하는 기술이다. 블록이란 참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진 거래정보를 저장한 덩어리(단위)다. 일정한 간격으로 그 사이에 이뤄진 거래를 기록한 새로운 블록이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생성되는데, 이렇게 블록과 블록 사이에 연결된 거래의 전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집합체가 바로 블록체인이다.

사실 우리는 ‘블록체인’ 하면 가장 먼저 비트코인 같은 가상통화로 일확천금을 벌었다는 뉴스를 떠올릴 텐데, 블록체인은 단순히 가상통화 수단을 넘어 이미 해외에서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식품 유통방식을 혁신할 수 있는 핵심기술로 활용하고 있다.

월마트(Walmart)·까르푸(Carrefour) 등 미국의 식품유통기업들은 IT기업인 IBM과 손잡고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식품이력추적 네트워크인 ‘IBM 푸드트러스트(Food Trust)’에 참여했다.

푸드트러스트는 농가와 공급업체, 유통·판매업체 등 각 주체들이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 이뤄지는 수확·재료공급·거래·위생안전·부정물 혼입 여부·포장처리와 같은 정보를 블록체인망에 입력하면서 다른 주체가 기록한 정보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소비자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나 QR코드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접속해 궁금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즉시 얻을 수 있다. 특히 월마트가 시범적으로 푸드트러스트 기술을 판매하는 망고에 적용해봤는데, 기술 도입 전에는 식품이력추적을 하는 데 6일 이상 소요됐지만 기술 도입 후 단 2.2초 만에 모든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최대 규모의 유통업체인 알버트하인(Albert Heijn)은 지난 9월 판매하는 오렌지주스를 대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시범 도입했고, 먹을거리 불신국이라는 불명예를 가진 중국의 축산업계는 닭 사육의 전 과정을 추적·관리하는 블록체인 솔루션을 조만간 적용한다고 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식품안전문제 발생 시 원인파악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하고, 상황이 확산되는 것을 신속히 차단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해외 식품유통업계가 발 빠르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는 식품안전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주의하고 노력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식품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혁신적인 대안을 찾는 데 다소 소홀해 보인다. 블록체인 기술이 완벽한 대안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소비자 신뢰를 얻기 위한 시도로서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게 우리 식품유통업계도 혁신적인 대안으로 식품안전에 불안감을 갖는 소비자의 신뢰를 되찾는 노력을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