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이 불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아마존과 구글 등 굳건하게만 보이던 실리콘밸리의 기업들도 3분기 불안한 실적을 기록했으며 글로벌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코스피는 29일 장중 2000선이 무너지며 22개원 만에 처음으로 최저치를 찍었고 국내 제조업은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수출 전선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보이던 메모리 반도체는 수퍼 사이클 종료 위기가 닥쳐오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골목상권은 붕괴되고 있고 택시기사들은 머리띠를 맸으며 자영업 폐업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겪은 전쟁과 혁명의 대부분은 경제위기에서 시작됐습니다. 소빙하기 시절 몽골제국이 중국을 침략했고 1차, 2차 세계대전도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우리가 수업 시간에 배운 기념비적인 혁명도 대부분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들'의 불만이 일차 원인이라는 것에 역사학자들도 입을 모읍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으나 높아지는 경제위기 속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향한 증오만 내비치며 헛발질만 거듭하는 중입니다.

 

절망이 깊어지고 있으나, 시대는 절망의 끝자락에도 한줄기 시대정신을 남겨두는 법입니다. 조선 말기 삼정의 문란과 세도정치의 폐혜로 망국의 징조가 번지던 순간 다산 정약용의 흠흠신서, 목민심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듯이 역사는 아무리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도 마지막 기회를 남겨두고는 합니다.

표철민 대표의 말
21세기 대한민국의 마지막 희망,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역시 ICT 기술의 발전에 의한 '진화'가 답입니다. 특히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당장 쟁쟁한 플레이어들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생태계 인프라를 가진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몇 남지 않은 분야 중 그나마 경쟁을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썩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암호화폐 공개는 무법의 지대에 놓였고 블록체인 산업은 아직 만개의 순간까지는 남아있는 시간이 길어 보입니다. 정부의 규제가 계속되는 사이 외국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속속 진입하며 시장의 불투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토큰 이코노미의 시작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내 중소형 거래소들 사이에서 소위 벌집계좌 개설은 '이야기 감'도 되지 않습니다.

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가 나섰습니다. 29일 표 대표는 서울 신라호텔에서 프레스 컨퍼런스를 열어 체인파트너스의 사업과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암호화폐 발행 경험이 없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토큰 경제 구조 설계와 크립토 펀드 연결을 비롯해 상장 등의 업무 전반을 대행하는 토크노미아, 이오스 전문 블록체인 엑설러레이터 이오시스, 투자자들이 참고할만한 컨텐츠를 제공하는 코인사이트, 이더리움 오프라인 결제를 제공하는 코인덕 등을 소개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표 대표는 자체 암호화폐 거래소 데이빗의 강점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국내 거래소들이 자체 지갑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을 들며 데이빗의 존재감을 키웠고, 엘릭서 기반 기술과 증권사 수준의 Socket API 제공도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 표철민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내용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표 대표의 태도였습니다. 표 대표는 프레스 컨퍼런스 내내 "도와주십시요"라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도와주십시요"라는 말은 프레스 컨퍼런스 자리에 모인 언론사에 한 말이겠지만, 넓게 보면 업계와 정부를 넘어 온 국민에게 보내는 일종의 SOS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표 대표는 "5년 내 데이빗이 글로벌 5위 거래소가 되겠다"면서 "앞으로 기관 투자자들의 투자가 단행되면 암호화폐 시장이 커질 것이며, 이 순간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표 대표는 발표 도중 목이 메었던지, 아니면 갑자기 기침이 나왔던지 간혹 발표를 끊고 침묵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발표 말미 "지금까지는 변호사들과 조심스럽게 논의를 하며 사업을 했지만, 이제는 불법만 아니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규제에 막힌 암호화폐, 블록체인 산업의 발전을 위해 과감한 승부를 걸겠다는 뜻입니다. "도와주십시요"라는 단말마가 유난히 뇌리에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 구태언 변호가 주최한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한 번 기회를 주자"
표 대표의 체인파트너스가 어느 정도의 기술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 어떤 파급력을 자랑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이 역시 검증되지 않았으며 단순히 표 대표와 체인파트너스를 위해 합당한 규제의 틀을 바꿔버릴 수도 없습니다. 몇몇 ICT 업계에서는 정부의 규제를 나쁘게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규제도 당연히 필요한 정당한 제동장치기 때문입니다.

다만 표 대표의 발표를 보며 저는 9월5일 광화문에서 열렸던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의 토론회가 생각났습니다. 구 변호사는 정부의 규제와 신사업의 도입을 두고 "혁신 사업이 등장하면 국민들은 당연히 모른다. 그리고 불안해한다. 그러다 보니 규제 일변도가 심해지는 것"이라면서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되면 이를 기반으로 사회가 관용의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현재 ICT 스타트업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치고는 지나치게 '나이브'한 방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라리 이러한 전제가 암호화폐는 물론 블록체인 전반에서 벌어지는 이슈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에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여지를 주면서 역시 최소한의 기회를 주고, 점차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파이를 키워나가는 겁니다. 정부는 언제나 제동을 걸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문제가 생기면 가차없이 제동을 걸면 됩니다.

암호화폐 거래소 지닉스는 29일 논란을 일으켰던 ZXG 크립토펀드 2호 상품 출시를 금지한다고 밝혔습니다. 금융 당국이 펀드를 두고 위법 소지가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당국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하며, 규제에 나선 당국의 행동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어차피 투자와 이에 따른 리스크가 병행한다면, 철저한 조건을 걸고 판을 제한적으로나 허용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정치와 경제가 너무 밀접한 구조입니다. 정치를 담당하는 당국자들은 모든 경제 정책을 정치와 관련시키다 보니 조금의 문제라도 생기면 기겁을 합니다. 이 지점을 넘어서야 합니다. 과감하게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당국자들을 '보호'하는 대책이 마련되면 상황이 좋아질까요? 오늘도 이렇게 세계는 변하고 있고, 우리는 여전히 고민중입니다.